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개감미 Aug 25. 2021

반복되는 일상 속 즐거움

뉴스아님 미니 세번째

나는 지루한 걸 못참는다. 반복되는 것에 쉽게 지치고, 힘들어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선생님이나 약사가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을 종종 했었는데, 다른 건 모르겠고 선생님은 내가 제일 되기 싫은 직업 중 하나였다. 1반, 2반, 3반 돌아가면서 같은 과목을 똑같은 설명으로 적어도 3번 씩이나 반복해야된다는 것이 말도 안되게 힘들어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식당에 갈 때면 가끔씩 이런 생각을 했다. 가게 주인 분 혹은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맨날 같은 걸 만드시는데 얼마나 재미없고 힘드실까. 아주 얄팍하고 자기중심적이게도, 감히 안타까워한 것이다. 이 생각이 부끄러워진 건 작년 초, 집 앞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지금은 페스코 베지테리언(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으로 지내긴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기 전, 나는 일본식 덮밥을 파는 식당에서 반년정도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휴학을 시작하고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찾고 있었는데, 이사온 지 얼마 안되었을 때라 주변에 뭐가 있는 지 몰라서 알바몬 지도를 켜놓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가까운 곳의 한 식당을 발견하게 되었다. 'ㅇ 마을식당'. 마을식당이라는 정겨운 이름도 마음에 들었고, 네이버로 찾아보니 꼭 일본 드라마인 심야식당에 나오는 식당과 분위기가 비슷해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로 지원을 했고, 엄청 빠르게 답장이 왔다. 바로 다음날 면접을 본 뒤에 한 주 있다가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식당 일은 처음이라 서툴기도 하고, 일하는 시간대가 점심 피크 타임일 때라 손님이 많아 우왕좌왕 했었다. 하지만 사장님이 차근차근 알려주시고,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금세 적응하여 일하게 됐었다.



하루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가 한꺼번에 나가셔서 빈 그릇들을 치우고 있을 때였다. 여러 개 그릇을 쌓아서 주방으로 가지고 들어오는데, 어떤 분이 조금만 먹고 거의 다 남기셔서 음식물 쓰레기 봉지에 반찬과 남은 밥을 넣고 있었다. 사장님이 그걸 보시더니 음식이 입에 안맞으셨나 하고 걱정스러워 하며 다음에 그 테이블에 앉으셨던 손님을 기억해두셨다가 다시 오셨을 때 입에 맞으시냐며 거듭 여쭤보셨다. 또 한 번은 가게에 자주 찾아오시는 할아버지 두 분이 한창 바쁠 때 찾아오셨는데, 물건이 올려져있어서 비좁은 자리라 사람들이 잘 앉지 않는 자리도 괜찮다며 앉으시더니 주문하신 음식을 드시며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었다. 이때 사장님은 직접 만드신 음식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내시며 신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장님은, 어떤 날은 재료의 비율을 바꿔나가며 카레를 잔뜩 만들어 나에게 주시면서 어떤 카레가 더 맛있는 지 여쭤보셨고, 어떤 날은 백김치가 좋을 지 빨간김치가 좋을 지 계속 고민하셨고, 어떤 날은 식품연구원 일을 하다가 스타트업을 시작하신 단골 분이랑 쯔유를 어떻게 만들어야 맛있는 지에 대해서 한참을 얘기하셨다. 나는 어떻게 해야 더 맛있을 지 계속 연구하고, 어떻게 해야 손님들이 더 맛있게 식사를 할 지 반찬 하나도 열심히 고민하시는 사장님을 보며 식당 일을 하시는 분들은 마냥 힘들기만 할거라 생각했던 게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한 그릇 한 그릇에 애정을 담고, 손님들이 어떻게 해야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을 지 고민하고 정성을 쏟아붓는 일을 내 마음대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이라 치부해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면 일찌감치 들었어야하는 생각이긴 하다. 내가 카페 알바를 처음 시작했을 때가 재작년이었는데, 그 때도 매번 출근해서 같은 일을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친구, 언니, 동료분들이 다 너무 좋았고, 실수하면 같이 혼나고, 퇴근할 때 노을을 보며 같이 걸어가고,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수다를 떠는 등 일하는 순간순간이 재밌고 행복했었다. 점장님과 매니저님도 너무 재밌고 좋으신 분들이어서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흔한 카페 알바 로망과는 달리 그냥 엄청 바쁜 곳이라 힘들긴 했지만, 있는 재료들로 다른 메뉴도 만들어보고, 유자차 뚜껑에 그림도 그리고, 일주일 간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얘기하는 등 소소한 모든 일들이 정말 재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반복되는 건 무조건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 지 모르겠다.



이렇게 또 한번 다시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친한 친구가 작년 말부터 회기의 한 찻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찻집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면 항상 신나보였다. 딸기우유 홍보 이벤트를 자기가 기획했다든지, 양갱 신메뉴를 개발할 수도 있다고 한다든지, 일요일인데 출근해서 재료 준비를 하고 있다든지, 매 순간 그 찻집에서 하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애정이 넘쳐보였다. 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그 찻집 일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는 지 말해줄 때면, 나 또한 없던 에너지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 찻집의 인스타그램 계정도 팔로우했는데, 스토리에 팥을 쑤는 모습을 보여주며 맛있는 팥을 준비하고 있다던지, 신선한 딸기 우유가 기다리고 있다던지 하는 내용이 올라올 때면 뭔가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공간이 내 친구를 비롯한 찻집 사람들의 애정으로 가득차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일상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일을 할 지보다, 어떤 일상을 살고 싶은 지 생각한다. 일상은 반복이다. 하지만 매순간 달라지는 나 자신과 어떤 일을 향한 나의 애정이 그 일상에 녹아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지루한 반복이 아닌 반복 속 설렘을 온 몸으로 즐기는 일일 것이다. 이제는 깊은 반성과 경험으로 각자가 가진 일상 속 즐거움을 반복되고 지루한 일일 거라 치부해버리지 않는다. 되려 그 속에 각기 다른 어떤 즐거움이 있는 지 너무나도 궁금할 뿐이다.



#뉴스아님 #20210331

#뉴스아님 #미니 #세번째

작가의 이전글 참 새를 좋아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