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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감미 Jul 19. 2022

짧은 여행의 목표

여행은 삶의 방식을 흡수해오는 것

220714

2주 간의 짧은 여행이 끝이 났다.

사실 끝이 난지는 3일 째이지만 시차 적응인지 뭔지 밤이면 밤이라서, 낮에는 시차 탓을 하느라 종일 잤다.

오늘은 밖으로 몸을 끄집어내야만 하는 일정이 있어 억지로 억지로 나왔다.

여태 비가 주륵주륵 내리다가 오늘에야 딱 비가 그친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3일 동안 내가 한 짓은 바르샤바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옆자리였던, 25살 아무개씨의 번호를 물어보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한 것이다.

거듭 떠올리며 후회하다가, 미드 프렌즈를 보다가, 잠을 자다가, 이것을 72시간 넘게 지속했다.

유학계획서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는데 벌써 어제부터 우리 학교는 교환학생 모집을 시작했다.

뒤늦게 학교들을 리스트업 해보았고, 어제는 학교들을 찾아보느라 밤을 샜다.


파리 내 모든 공원엔 초록색 의자가 가득하다

여행의 목표은 두 가지였다.

‘아무 ‘짓’도 벌이지 않기’와 ‘살만한 곳인지 훑어보기’.


다음해 교환학생을 계획하고 있던 나는,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고 또 아예 눌러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었다.

그래서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잠깐 방문한 것을 제외하면 대략 1주일 조금 넘게 프랑스 파리를 돌아다녔다.


사실 첫번째 여행의 목표는 여행 끝무렵에 가서야 달성했다.

내 여행 일정은 5일 프랑스, 1일 벨기에, 3일 네덜란드, 그 후 다시 3일 프랑스에 머무는 일정이었다.

앞서 네덜란드 일정까지는 친구와 함께 했고, 우리는 끊임없이 돌아다녔다.

사실 휴식을 취할 시간은 늦잠으로 보내버리고, 썸머 타임으로 길어진 낮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일 사건 사고가 터져 (친구는 지갑을 잃어버리고, atm이 내 카드를 삼키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졌었다.) 명소를 한 군데만 방문해도 시간은 덥썩 덥썩 삼켜졌다.

그래서 프랑스로 홀로 돌아와 ‘무계획’을 계획으로 삼았고,

정말로 할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점심을 먹고 난 후 느닷없이 노트북을 꺼내 랩실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슬렁 어슬렁 센느강을 향해 걷다가

또 어슬렁 어슬렁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간 나는

구글맵에 가까운 공원을 찍고 버스에 올라탔다.


도착한 뤽상부르 공원Le Jardin du Luxembourg은 여백이 가득했다.

베르사유 정원에서 봤던, 네모네모 조리돌림을 당한 레고형 나무들이 마찬가지로 가득하기도 했지만

모든게 인공적인데, 여기서의 ‘인’을 맡고 있는 인간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움을 뽐내고 있는 형상이었다.

마치 자신의 자연스러움을 찾기 위해 자연을 비집고 들어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시에 난 공원의 공간감에 감동하여 바닥에 바로 드러눕고 싶은 심정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오면 바로 있는 뛸르히 공원


다음날에도 나는 공원에 갔다. 

작품보다 사람이 더 많은 듯한, 

<몽상가들>에서 주인공들이 거침없이 뛰는 공간은 상상도 못할 만큼 사람들로 가득찬 루브르 박물관을 지나 뛸르히Tuileries 공원에 갔다.


나는 이사벨, 메슈, 테오를 따라하는 대신

뤽상부르 공원에서 여기저기 널부러져 흩어져 있던 사람들을 따라했다.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 두 개를 내 허리가 편안한 길이에 맞춰 앞뒤로 놓고 그 위에 슬라임처럼 늘어졌다.

내 앞에 놓인 풍경을 구경하고, 책을 읽고, 눈을 감고 소리를 듣고 딴 생각을 마음껏 펼쳤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익어가는 살갗, 묵직히 굴러가는 시간들이 내 몸을 깊게 통과했던 건지

고작 1주일 남짓 있었던 프랑스에 향수를 느끼고 있다.


귀국 후, 우리 아파트 단지와 우리 집에서 내려다 보면 보이는 하천,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도보까지

그 사이 군데군데 놓인 벤치들이 스치듯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하천가 나무들 밑에 누워서 멍을 때려보았고,

여느 프랑스 아이들처럼 스케이트 보드도 타다 넘어져도 보았고,

벤치에 늘어져 앉아 시험기간 공부를 해보기도 했다.

단지 이 모든 것들은 벼랑끝까지 힘들어질 때야 부여잡는 가파른 선택일 뿐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주된 삶의 방식으로 설명된다면?

한끗 차이로 내가 어쩌면 여행 중의 나와 평행적인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향수를 느끼는 것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에까지 도취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 중 스쳐간 이들의 삶의 방식 흡수하고, 또 내 안에서 발견하는 게 여행의 묘미라는 깨달음을 문장으로 뱉어내게 된 것은 우습게도 길거리에서 무의식적으로 소변을 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

우리나라는 지하철역만 가도 화장실이 있었지만, 프랑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운 여름이었어도 물을 최대한 마시지 않으려 했으며, 소변도 곧잘 참아왔다.

짧은 시간에도 습관 어디 안간다고, 대한민국 길거리 한복판에서 그러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우스웠지만,

한편으론 들인 돈에 비해 짧았던 여행의 의의를 자꾸만 긁어 찾아내려고 하는 작은 관성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깨달음이었다.


공원에서 읽었던 미하엘 엔데의 책, <자유의 감옥>. 첫번째 단편의 제목은 <긴 여행의 목표>였다.


다시, 프랑스는 그래서 살만한 곳이었느냐.

당연히 살만한 곳이다.

6천만명 이상의 많은 인구가 괜히 거기 살고 있으랴.

한국에 비해 살만한 곳이냐.

한국이랑 정말 다르기에 살아보고 싶은 나라다.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찾기란 어렵다.

되는대로 살면, 굴러가는 대로 살면, 본래의 길의 굴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힘써서 찾고, 힘써서 움직여야 하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직수입해온 공기들은 자꾸만 내 안에서 공명을 일으켰다.

뭐, 프랑스라고 하기에는 다녀온 곳이 파리가 전부인데다 도심 가운에 유유히 흐르는 공기가 퀘퀘했지만

그 선율만큼은 둥글고 아름다웠다.


프랑스에서의 휴가는 작은 향수를 일으키는 동시에,

나에게 다른 종류의 심장을 만들어준 듯하다.

내가 사랑해 마지 않아 이끌리는 삶의 모양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 심장을 잊지 말아줄 것.

그리고 그 박동을 따라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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