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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감미 Aug 29. 2021

마음 속에 머무르는 감사함의 의미에 대해

의미 있는 감사함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이들에게 '감사함' 느낀 다는  무엇일까. 내가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해서 물질적인 무언가를  수도 없고, 내가 혼자  안에서 스크린 너머 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해서  감사함이 정신적 무언가로서 전해지지도 않을 텐데, 내가 느끼는 감사함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씨리얼.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중 하나이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어떤 이야기에 대해 넌지시 전해준다. 오늘 본 영상은 지하 35m 아래가 일터인, 지하철을 움직이는 노동자들의 이야기였다.


영상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우리의 생활 전반이 누군가의 정직함에 기반해 있다는 걸 새삼 생각하게 되네요..."

이 댓글 외에도 댓글창은 '감사함'을 전하는 물결이 쭉 이어졌다.


물론 여기에 출연하신 분들을 비롯해 철도 운행을 위해 일하시는 기관사, 정비공, 미화원 분들이 영상의 댓글창을 보게 되면 뿌듯하고 기분 좋아질 지도 모른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는 정확히 특정할 수는 없지만, 선플 하나 남김으로써 감사함이 전해졌으면 하는 소망으로 댓글을 달고, 이런 댓글이 이들에게 전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의 작은 시도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속에 남는 이들을 향한 감사함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것이다. 나 자신을 예로 들면, 나는 이 영상을 보고난 후, 지하철이란 공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지난 여름 지하철 법규에 대한 기획안을 썼었는데, 기획안을 쓸 당시 노래를 부르고 다녔던 말이 '지하철은 가장 문명화가 덜 된 곳'이었다. 지하철을 타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상을 본 후, 승객들이 아닌 커다랗고 긴, 몇 십 몇 백 명을 태운 철도를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시선이 닿는 곳이 양쪽으로 한 칸씩 더 넓어진 것이다.


여전히 지하철에서 겪었던 여러 불쾌한 일들이 잊혀진 건 아니지만, 지하철이라는 공간 자체를 그 불쾌한 사람들과 일체화시켰던 것에 대한 반성이 든다. 이 반성은 또 어떤 반향을 일으킬 것인가. 나 그리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 속 감사함과 반성.


감사함은 습관화될 때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아니면 행동으로 그 따듯함이 이어질 때 의미를 갖는 것일까. 애초에 이것은 의미를 가져야하는 걸까, 아니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걸까. 혹은 감사함을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그 감사함이 닿는 것만이 의미있을 거라 믿는 나의 신념 때문에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걸까.


모르겠지만, 결론은 내가 지하철을 탈 때 드는 생각과 감정이 조금은 좋은 쪽으로 변화됐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이 영상 하나의 반향으로 이 분들의 월급이라도 올라야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감사함이 나쁜 건 아니니까. 아마 이렇게 '좋아만 보이는 것'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결론 또한 '좋아만 보이는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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