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일
생후 150일 지나며, 아기와 나의 인생에서 꽤 큰 일들을 마주했었다.
하나는 이유식에 입문한 것이고, 하나는 아기의 수술이었으며, 마지막은 이른 어린이집 입소였다.
아기와 함께 살다 보면, 아기의 성장에 따라 내 삶에도 변화를 마주해야 할 때가 자주 오는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변화를 잘 받아들이려면 양육자의 심리적, 물리적 준비가 상당히 필요하다.
때문에 관련한 공부는 물론 마음가짐도 갖춰야 했다.
[생후 145일 이유식 시작]
이유식 시작 시점에 대해서는 아기마다 다르고, 또 권장 시작점도 제각기 다르지만 요즘(?) 엄마들은 대게 150일 전후로 시작하는 추이 같다.
나도 145일부터 시작했는데, 쌀가루와 물을 섞어 만든 쌀미음 한번 먹이는 그 일이 왜 이렇게 비장했는지 모르겠다.
이유식을 준비할 무렵, 뭐랄까 아기와의 살림살이 제2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출산 전, 부엌에 분유 포트, 젖병소독기 등을 두고, 방에 아기 침대를 두고, 거실에 둘 트롤리를 조립할 무렵이 제1막이었다면,
이유식은 세간살이의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이유식 의자를 알아봤다. 사실 가격만이 단점이라는 국민 의자를 맘에 두고는 그 가격 때문에 장바구니에 넣고 며칠을 고민했다.
오래 쓰자 싶어 고민 끝에 구매를 했고, 2주를 기다려 받았다. 이유식 시작 직전에 도착했기에 방치할 여유도 없이 부랴부랴 조립을 했다.
확실히 범보 의자에 앉았을 때 약간의 구부정함이 사라져 국민 타이틀을 새삼 실감해버렸다.
그리곤 이유식 준비물을 알아봤다. 이유식 용기, 냄비, 저울, 큐브 등 살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순간 ‘처음부터 사 먹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특히 그 고민이 들었던 순간은 이유식 마스터기 때문이었다. 재료 하나하나를 손질하고, 익힐 필요 없이 한방에 되는 그 간편함에 매료되어
이건 꼭 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 꽤나 하는 그 마스터기를 사자니, 그냥 사 먹일 까 싶기도 하고, 또 처음부터 시판으로 진행하자니
시도조차 안 해 본 내가 조금 아쉽기도 했다. (이유식 이게 뭐라고 이렇게 갈팡질팡 했는지 모르겠다.)
갈팡질팡하던 어느 날 남편에게 이유식 마스터기 필요성을 언급하며 사기 직전까지 갔을 무렵, 남편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이유식 쭉 만들어서 먹이려고?”
아기가 10개월일 무렵, 복직을 앞뒀기 때문에 절대 만들어 먹는 것에 의존할 수가 없었고, 또 내 의지가 어디까지인지 몰랐기에
남편의 현명한 질문 덕분에(?) 냄비 이유식을 시작했다.
최소한의 준비물만 샀고, 초기용 쌀가루가 있으니 만들기는 라면 끓이는 것보다도 쉬웠다.
물론 단계를 더할수록 불 위에서 휘휘 젓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잘 받아먹어 주는 아기를 보면 또 그렇게 뿌듯함을 느꼈다.
그렇게 하루 한 끼 중기 이유식까지 나름 즐겁게 하다, 하루 두 끼가 될 무렵 딱 일주일만 만들어주고, 시판으로 바로 갈아탔다.
아기에게 다양한 식감과 맛을 주고 싶기에 하루 세끼 이유식을 먹는 현재까지 두 업체를 섞어 사용 중이다.
워낙 합리화를 잘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중기 이유식까지 만들다가 넘어간 고도의 전략(?)은 꽤 현명했다고 본다.
먼저 초기 이유식은 만들기가 너무 쉽다. 쌀미음 베이스의 하나의 재료를 더해주는 격이라, 다 만들고 정리하는데 30분도 안 걸리는 듯하다.
심지어 초기 이유식은 아기가 흘리는 것 반, 받아먹는 게 반이다. 경제적으로도 만드는 게 좀 더 합리적이다.
초기 2 이유식도 제법 쉬운 편이다. 쌀미음과 소고기를 기본으로 한 개의 채소 베이스 재료를 더하는 것이라,
미리 소고기 큐브를 미리 만들어 놓거나, 만들어진 걸 사면 또 할만하다.
특히 소고기 메뉴가 시작될 무렵 아기가 맛을 음미하는 듯 잘 먹기도 하고, 이유식 실력도 늘다 보니 재미있기까지 하고,
소고기 양도 내가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으니 영양적으로도 만족스럽다.
그러다 문득 삼일 동안 똑같은 메뉴를 먹는 아기에게 다양한 재료를 맛 보여주고 싶고,
삼일에 한번 찾아오는 이유식 & 큐브 데이가 약간 부담적으로 느껴질 때가 온다. 시판의 힘을 빌릴 타이밍이다.
나 같은 경우, 중기 이유식 무렵이었고 이때는 아기의 양도 제법 늘어, 정해진 양이 배달되는 시판 이유식을 많이 버릴 일도 없었다.
한 끼에 약 4,000원 내외의 가격이기에 아기가 안 먹으면 꽤 아까울 법했는데 더 오물오물 잘 먹었고, 늘 완밥을 했다.
요즘에는 아기가 언제 커서 우리와 같이 겸상을 하고, 외식을 할까 싶다.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이유식이 끝나면 유아식이 있고, 또 다른 식이 있을지 모른다.
또 그때마다 나는 아기 간장, 소금을 찾고, 밥솥을 알아보고 반찬을 시키겠지 싶다.
또 합리적인 타협점을 찾아야겠지. 지금은 그저 우리 가족 셋이서 호텔 조식 한번 같이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