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면 6살 때 유치원에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보다 조금 더 어릴 때 언니 따라 방문 학습지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집을 떨어져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몇 시간씩 보냈던 건 6살이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조금 이르면 5살에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기도 했는데, 내가 다니던 유치원만 해도 5살 반의 아이들 숫자는 확실히 적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우리 엄마는 6살 전까지 나와 언니 그리고 동생을 하루 종일 놀아주고, 돌봤는지 새삼 참 대단하다고 느낀다.
물론 2살 터울의 3남매였기에 자기들끼리 놀았다고 하지만 24시간을 붙어있었으니 그 시절 에너지에 경이를 표한다.
요즘은 태어나자마자 어린이집 대기 등록은 필수인 것 같다. (물론, 각자의 니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히 맞벌이인 우리 부부에게 어린이집은 당연하되, 언제로 하느냐가 문제였다.
아기는 2월 말에 태어났고, 나는 다음 해 1월에 복직 예정에 있었다. 아기가 딱 10개월로 들어서는 시기였다.
엄마의 도움을 받을 테지만 육아휴직 중에 아기의 적응을 돕고자 아기가 7개월이 됐을 무렵인 9월 말로 집 주변의 어린이집 몇 군데에 대기를 넣었다.
그때만 해도 7개월 아기는 배밀이로 기기도 하고, 옹알이도 다채롭게 하는 꽤 자란 아기라고 생각을 했었다.
아기가 6개월이 채 안된 8월 중순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마음속 1 지망이었던 어린이집이었다.
마침 0세 반의 한자리가 비었는데 희망하시냐는 원장님의 질문에 덜컥 “네”라는 대답이 안 나왔다.
나의 망설임을 눈치채신 듯 원장님께서는 오후 3시 30분쯤 아기와 원에 한번 방문해보겠느냐고 말씀을 주셔서 그러기로 했다.
절반 정도의 아이들이 하원할 무렵이라 한산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첫날부터 낯설어하지 않고 잘 놀았다.
정돈된 장난감들과 사용감은 있어도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시설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능숙한 상호작용 스킬에 걱정스러운 마음도 사그라들었다.
이에 9월 1일부터 본격적인 어린이집 생활이 시작되었다.
물론 일주일은 늦은 오후 시간에 어린이집에 가서 나와 함께 1시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적응할 수 있도록 했고,
이후 한 달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엄마 없이 약 2시간 동안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10월 중순부터는 9시 30분쯤 등원을 해서 점심도 먹고, 낮잠도 잔 뒤 2시쯤 하원을 했다.
아기의 월령과 컨디션을 고려해 서서히 적응시킨 부분도 있지만 다행히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또래가 있어, 더욱 잘 적응하고 활동하게 된 것 같다.
덕분에 나의 자유시간도 생겨, 오전에는 필라테스도 다녀오고 오후에는 아기가 먹을 간식을 만들거나 책을 보며 꽤 생산적인 시간을 보낸다.
아기의 하원 후에는 나 또한 채워진 에너지가 있으니 더 열심히 집중해서 놀아주고 교감한다.
사실 6개월 차 어린이집의 결정에 대해 주변에 우려와 만류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제로 너무 어리기도 했고, 코로나 시국도 고려하다 보니 많은 고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엄마께서는 “그럼 못 쓴다.”라고 까지 이야기하셨었다.
그럼에도 보낸 이유는 우선 내가 휴직 중일 때, 좀 더 안정적으로 어린이집 적응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주 서서히 어린이집 활동 시간을 늘려가며 아기가 갑자기 낯선 상황을 마주하거나 분리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그리고 첫날 어린이집에서 느꼈던 분위기와 아기가 조물조물 놀고 있는 모습이 꽤나 안정감 있었다.
나의 복직 플랜으로 인해 6개월 아기가 덜컥 사회생활을 시작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도 없지는 않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극단적인 타협점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우리 가족에게는 합리적인 결정이었고, 현명한 선택이었다.
10개월 차로 접어든 요즘, 아직도 어린이집 막내를 담당하지만 아기는 매우 건강하고 씩씩하게 생활하고 있다.
특히 매일 오전 11시 그곳에서 규칙적인 배변 활동까지 하시니, 선생님께서는 적응 끝판왕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장 기특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