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는 일
아기의 수술을 4일 앞두고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일 기준 3일 내로 코로나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 했기에, 그런 안내사항을 다시금 알려주겠거니 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주치의 선생님은 아기의 피검사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다.
아기의 피검사에서 어떤 수치가 기준보다 낮게 나와 재검사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마취과 담당 교수님의 의견으로, 주치의 선생님이 소아비뇨기과다 보니, 정확한 설명을 어려워하셨다.)
이에 가능하면 내일 병원에 방문하여, 관련 교수님을 만난 뒤 다시금 피검사를 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가능 여부를 떠나 무조건 다음날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상황인 듯하여, 바로 예약을 잡아달라고 말씀드렸다.
이에 주치의는 소아 혈액암 담당 교수님을 만나 뵐 거라고 하시며 정확한 예약시간은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대화의 전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자, 통화를 하면서도 말문이 막혀 “아 네네” 정도로만 대답이 나왔다.
평소에 의문이 가는 부분에 대해서 잘 묻고 요청하는 편인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었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내일 오후에 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다시 해야 하니 회사 연반차를 고려해보라고 메시지를 남기고는
몇 분간 멍하니 있다가 ‘아기 피검사 수치, 백혈구 수치’ 등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가 우리 아기는 태어나 열 한번 안 났으니까 아마 그날 컨디션이 안 좋았나 보다 하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가
왜 근데 소아 혈액암 교수님일까를 생각하며 또 관련 내용을 검색하기를 반복했다.
몇 번을 마음이 오락가락하고 저녁 8시쯤 돼서, 주치의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내일 오후 2시까지 교수님을 뵐 거고 30분 정도 미리 도착해서 심전도 체크를 한번 더 받아볼 것을 권했다.
그리곤 남편에게 전화기를 건네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우선 검사를 한지 한 달 가까이 됐는데, 왜 이제야 전화를 줬는지였다. (이런 질문은 내 주특기인데, 급 판단이 흐려진 나를 대신해 남편이 물었다.)
주치의는 다소 뒤늦게 검사 결과를 확인한 부분에 대해서 잘못을 시인하셨다. (이럴 때 약간의 컴플레인이 가능한데, 또 주치의라 그러지도 못했다.)
그리고 백혈구 수치가 다소 낮게 나온 부분이라 담당 교수를 연결해준 것으로 결과는 내일 바로 들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게 개운치 못한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병원에 갔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마음은 무거웠지만 키오스크로 도착과 수납을 착착 진행하고 검사실로 가는 길도 헤매지 않았다.
다행히 심전도 검사는 정상이었고, 바로 소아 혈액암 교수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대기하는 환자와 보호자가 꽤 많았다.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싶어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우리 차례가 되어 교수실로 들어갔고, 아기의 피검사 결과를 더욱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요약하면, 백혈구 일종인 호중구 수치가 정상 아기는 1,000 이상이나 당시 우리 아기가 800이 나왔기 때문에 재검사를 하자는 것이었고,
500 이하의 경우 다소 위험한 부분이나, 우리 아기는 800이고, 또 이게 성장하면서 높아지기도 하기에 다시 검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자세한 설명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한 내용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당연히도 결과는 1,200. 정상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우리 가족 세명 모두 코로나 검사까지 받으니 이제야 준비가 끝났구나 싶었다. 세상에, 수술은 아직 받지도 않았다.
당연히 세명 모두 음성을 받았고, 월요일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우리 아기는 2번째 수술이었고, 오전 8시 반에서 9시 사이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다.
마취 때문에 아침부터 금식을 한 터라 컨디션이 걱정되었는데, 본인도 정신이 없는지 생각보다 얌전했다.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 별도의 당일수술센터에서 대기가 이뤄졌다. (당일 수술 후 반나절 정도 입원 및 퇴원을 하는 곳이다.)
코로나 시국으로 아기와 음성 확인이 된 보호자 1인만 센터에 들어갈 수 있었고, 센터 내 취식은 불가했다.
배냇저고리처럼 생긴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 입히고, 환자용 팔찌를 두르고, 수액 바늘을 손에 꽂았다.
혈관도 안 보이는 작고 통통한 손에 바늘이 들어가는 것도, 바늘 꽂은 곳을 만질까 싶어 붕대와 테이프로 칭칭 감아 놓은 손도 마음을 찡하게 했다.
하지만 바늘을 넣겠다고 손을 못 움직이게 꾹 잡고 있을 때만 찡찡댔을 뿐, 녀석은 꽤나 의연했다.
마취과 담당 교수 및 주치의를 차례로 만나 수술 관련 내용을 안내받고, 이윽고 수술 대기실로 이동했다.
아기는 쭉 잠이 들었다가 수술 대기실에서 잠깐 깼는데, 마침 수면 마취가 들어가 아기의 고개가 픽 쓰러지며 다시 잠이 들었다.
픽 쓰러지는 모습에 수술실로 향하는 아기가 그렇게 찡할 수가 없었다.
40분쯤 흐르고, 담당 교수님을 만났다. 수술 과정을 짧게 설명해주셨고 결과적으로 잘 자리 잡았다고 말씀 주셨다.
그제야 그 간의 어려웠던 과정들이 해소되고 마음의 안심을 찾은 듯했다.
15분쯤 지났을까. 아기가 입원실로 돌아왔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마취가스를 잘 빠지게 하려면 아기 등을 텅텅 두드리며 울게 하라고 하셨다.
컹컹대며 잠에서 깨려는 아기를 안고 등을 두드리며 병원 복도를 걸어 다녔다.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남편도 아기를 안아 등을 토닥여줬다.
“너무 잘했어. 이렇게 기특할 수가 없어. 우리 얼른 집에 가서 푹 쉬자. 정말 대단해 우리 아기.”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기가 좀 더 마음의 안정을 갖고 마취에서 깼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기를 안아줬다.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흐르고, 배고팠을 아기는 분유를 꿀꺽꿀꺽 먹고 퇴원 준비를 했다.
하루 이틀 정도 수술 부위에 직접적인 물만 안 닿으면 될 뿐,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술이어서 아기는 평소의 컨디션대로 잘 놀고 잘 잤다.
이유식도 잘 먹고, 배밀이도 잘하고, 옹알이도 종알종알. 다음날 바로 어린이집도 갈 수 있었다.
실밥을 뽑을 필요도 없어 일주일이 지나니 의료용 본드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수술 흔적만 굉장히 미세하게 남아있었다.
물론 수술 경과도 좋았다.
마음을 졸이고, 찡한 순간을 마주하기는 했지만 내 나름대로 조금은 의연하게 대처한 것도 같다. (아직은 그 의연함이 조금 부족하긴 하다.)
그리고 이번 경험으로 나와 남편이 단단하고 든든한 부모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도 같다.
어쨌거나 아기는 균형을 잘 잡았고, 눈물 찔끔 났었지만 이 또한 에피소드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