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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eze Aug 06. 2023

과학과 살구나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 박완서 作



 해당 글은 故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대한 독후감이며, 이전 1편 글과 이어지나 해당 글만 보셔도 괜찮습니다.


[이전 글] 식사는 하셨습니까?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1)- 박완서 作)

- https://brunch.co.kr/@breezejun/23



-       사랑과 존중의 부재


 사랑이 부재한 세상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자. 그것은 잘린 영혼들의 세상이겠고, 저마다의 우주가 파괴되어 회복되지 않는 세상, 수레바퀴 같은 착취의 세상일 테다. 작 중에는 박완서 작가가 겪은 ‘연변 출신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작가는 연변 출신의 두 노동자를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만났다. 그들 중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식당의 종업원이었는데, 손님과 주인에게 모멸을 겪고 궂은 말들을 들어가며 노동한다. 끝내 그녀는 남몰래 뒤에서 눈물을 훔친다. 반면에 일본에서 일하는 연변 출신의 노동자는 숙박업소의 종업원이었는데,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 종업원은 일본의 곳곳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자랑스레 보여주면서 일본의 숨은 명소들과 그 밖에 좋은 점들을 안내하여 여행의 활기를 북돋아 준다. 실제로 고용주에게 더 큰 이득을 안겨주는 것은 일본에서 일하던 밝은 노동자일 것이 분명한데, 그녀는 오히려 자존심을 지키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착취와 정당한 고용의 차이’라 말한다. 그리고 둘의 차이는 노동자 개인의 성격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대하는 고용주와 주변인들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라 보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어떤 마음일지, 그리고 한국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을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이러한 착취는 사랑과 존중의 부재에서 비롯한다.


 나는 연변 출신 노동자의 일화에서 일부 대학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모든 연구실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존중받지 못한 채로 연구를 위한 연구에 착취당하는 대학원생은 고개를 돌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매스컴에 소개된 몇몇 케이스를 제외하더라도 대학원생 연구원들을 향한 부조리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곤 한다. 그러한 고난을 겪는 연구자들이 무기력과 우울을 호소하는 것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앞선 일화로 미루어봤을 때, 정당한 대우를 받고 존중받으며 본인의 연구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연구원과, 그렇지 못한 연구원 중 누가 의미 있는 연구를 하며 계속해서 인류와 과학계에 기여할지는 자명하다. 아무리 고난이 성장을 도모한다지만, 사랑과 존중이 부재한 부조리와 고난의 생성은 사회의 도처에서 뿌리 뽑아야 하겠다.



-       부조리와 비합리, 다만 나도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일 뿐이다.


 한국전쟁은 작가의 인생을 뎅강 잘라서 무심하게 내쳐버렸다. 작가는 꿈에 그리던 대학을 포기했고, 인생의 많은 것들이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 전개되었다. 이는 곧 작가에게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을 남겼다. 전쟁이라는 극단적 형태의 부조리와 비합리는 개인을 무력화하고 선택지를 강탈한다. 우리 또한 저마다의 전쟁에 노출되어 있는데, 현대 사회에서는 온갖 혐오와 가난과 대립의 총탄이 빗발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못 할 것 천지인 세상에서 선의 유구한 수호자는 지성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성을 기반으로 선을 정립하고, 사회의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부조리와 비합리로부터 허덕이는 이들이 없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제 와서는 많이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10년 전 내가 대학에 처음 입학했던 무렵에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학내 구성원들의 출신 지역이 비정상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 강남에서는 금싸라기라도 나오고 물도 좋아서 아이들 두뇌 발달에 탁월한 효능이라도 있는 건가. 그보다도 더 합리적인 추론은 균등한 정보와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학생들이 그 외 지역에 더욱 많을 거라는 생각이겠다. 나만 해도 일반고에서 카이스트로 입학 면접을 준비할 당시에 당최 면접에 대한 정보들을 얻을 수가 없었다. 시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무슨 형태의 질문들이 있는지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도 몰랐다. 어디 인터넷 카페를 며칠이나 뒤진 다음에야 오전 오후에 걸쳐 문제 풀이와 토론 면접이 있다는 사실만 알았을 뿐이었다. 다른 동기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마지막 자기 PR 응답까지 준비를 마쳤었다고 하니, 내가 이곳에 입학한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내가 교육봉사와 재능기부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연유였다. ‘안 가본 길’은 있어도 ‘못 가본 길’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가의 말마따나 대학은 ‘사회 부조리를 비판하고,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는 지성을 기르는 곳’이라면, 지식인의 책무는 지성을 기반으로 부조리와 비합리를 없애고 더 많은 사람의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나뒹구는 바퀴 없는 자들의 편일 뿐이다.



-       지성과 과학, 그리고 살구나무


 작가는 작품을 통해 비판 의식을 드러내고, 사람들을 감화시켜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 마찬가지로 과학자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세상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사회 시스템상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재료이자, 바퀴 없는 자들의 구휼인 동시에 인류 행복의 증진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과학과 철학의 발전이야말로 지성을 축조하는 기자재이고, 지성은 올바른 선을 정립하는 상아탑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의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살구나무를 가꾸기 위해선 매일 잡초를 뽑아야 했다. 이윽고 탐스레 열매가 열리면, 좋은 살구들을 골라 담아와 으깨고 한여름에 며칠간이나 불로 고아내어 살구잼을 만들었다. 여간 중노동이 아니었겠지만 일련의 과정들이 소모적인 일이 아닌 생산적인 노동이 될 수 있던 이유는 바로 나눔에 있다. 살구잼을 만들어 주변이들에게 나눠주는 일이야말로 고되고 소모적인 노동을 생산적인 노동으로 바꾸어 준다. 우리가 과학을 하는 이유가 오직 지적 호기심에서만 비롯한다면, 그야말로 소모적인 일이 될 것이며 그 얼마나 작은 이유가 되겠는가. 과학의 발전도 살구 열매 따기와 다르지 않다. 나눔의 미덕을 갖춰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면 동그란 원이다. 더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면 창백한 푸른 점이 되겠다. 그곳에선 그 어디라도 그 누구라도 중심과 같겠고, 그 무엇도 중심이 아닐 테다. 유구한 시간 속에 우리는 스쳐 가는 존재이며 거대한 우주에서 한 없이 작은 존재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리저리 나부끼고 살아가며 크고 작은 일들에 수없이 상처받고, 또 그렇기에 절실히 사랑과 위로가 필요한 족속이겠다. 그런 우리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겠고, 못나면 또 얼마나 못났겠는가. 비합리가 팽배한 세상에서 이기와 질투, 허무와 관성, 만용과 멸시는 내려놓고 서로를 존중하고 위로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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