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독후감을 쓸 일이 있어 故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대한 감상을 몇 자 적었다. 브런치에 전문을 옮기기엔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축약하고자 했는데, 막상 글을 줄이고 고쳐쓰자니 가진 글재주가 부족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이럴 바엔 에라 모르겠다 생선 대가리 떼듯 서문만 떼고 본문을 뎅강 반 토막 잘라서 두 개로 나눠 올려버리자 싶다. 미술관에서 작품 한두 점을 마음에 담아 오듯,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 몇 점에서 온 울림을 투박하게나마 나눠보고자 하니, 혹 작품을 읽어보신 분들이 여러 감상들을 함께 나눠주시면 참으로 기쁘겠다.
- 스쳐간 시간 속에 치유의 효능이 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 덕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출근한다. 커피 향을 머금은 채 동료들과 지난 주말의 안부를 물으며 수다도 떨고, 밥도 먹고, 일도 한다. 시간은 흘러 해는 지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때, 불현듯 가슴 한편이 먹먹하다. 먼저 세상을 떠나간 친구가 떠오른다. 연이어 나를 떠나간 다른 인연들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정신과 마음의 상처는 예고 없이 찾아와 날 어지러이 헤집곤 한다. 늘 불쑥 찾아오는 아픔이지만, 그럼에도 이를 마주하며 살 수 있는 건 흘러간 시간과 그동안 켜켜이 쌓인 다른 이들의 사랑과 위로 덕일 테다.
박완서 작가는 작품 속에서 고통의 상흔을 숨기지 않는다. 작가는 말년에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나무와 흙의 초록에 둘러싸인 평온한 삶을 살았다. 주택의 풍경은 그 묘사만으로 목가적인 평온함을 전해준다. 하지만, 그로는 차마 다 가려지지 않는 고통이 마음 한편에 똬리를 틀고 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으며 글 몇 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전쟁의 참담함과 비극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또한,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며 나로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비통한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삶을 영위하고, 때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역시나 여기저기서 내민 주변의 손길 덕이다. 우리는 모두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상처들을 겪으면서도, 서로를 통해 치유받고 그로 말미암아 또 나아가는 연약 하지만 사랑스러운 존재들인 셈이다.
사랑은 때론 자연에서도 느낄 수 있는데, 나무와 풀이 주는 생동한 향과 초록, 바람과 강의 흐름에서 느끼는 세찬 흐름이 그러하다. 생명의 원류는 인간을 감싸 안으며, 작은 존재로 녹여낸다. 대자연의 따스함에 나른한 무력감을 느낄 때면 양수에 웅크린 갓난아기가 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존재,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주는 위로. 이른 아침 툇마루에서 아침밥을 먹을 때, 옆 나무에서 산수유 열매를 따 먹는 참새에게서 느끼는 친근함은 자연이 줄 수 있는 사랑의 한 가지 형태가 아닐까 싶다.
- 식사는 하셨나요?
요즘 아무리 ‘나 혼자 사는 것’이 대세이고 ‘혼밥’도 별일 아니라지만, 함께 먹는 밥에는 모종의 힘이 있다. 특히나 한국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할 것인데, 우리는 만났다 하면 “식사는 하셨어요?” 하며 안부를 묻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며 인사하는 사람들 아닌가. 외국에선 밥 먹었냐고 물으면 그걸 왜 물어보는지 의아해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밥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고도 할 수 있겠다. 오죽하면 ‘family’가 우리말로는 ‘식구’겠는가. 정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족을 일컬어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 칭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
우리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사신다. 늘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댁에 맛있는 게 있으니 놀러 오라고 하시는데, 이는 할머니가 우리를 꾀어낼 때 즐겨 쓰시는 전략 중 하나다. 할머니 댁에서 밥을 먹을 때면 고봉밥을 하나 비웠는데도 자꾸 밥 한 공기를 더 주시고, 식사를 마친 후에도 주전부리도 내어 주신다. 배가 불러 한사코 거절하면, 이번엔 주전부리 메뉴를 바꿔서 내어 주시니 아무래도 내가 학교에서 밥을 굶고 다닌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닐까 싶다. 학교에서는 혼자 밥 먹는 것이 익숙한 나지만 아무래도 가족과 함께하는 밥상은 더 든든하다. 단순히 많이 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밥 위에 얹어진 온정 덕분이겠다.
실제로 견디기 힘든 일들이 있었던 당시에도 나를 회복시킨 건 밥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친구, 동료, 가족들과 밥 한술 뜨고, 한 끼 두 끼 먹다 보니 그래도 살만해지더라. 아무래도 그때 내가 먹은 건 단순히 밥뿐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과학과 살구나무: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2)- 박완서 作 https://brunch.co.kr/@breezejun/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