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으로 살펴보는 중심의 의미에 대하여
중심을 잡고 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뭐, 기본적으로 운동신경이 떨어져 중심을 잘 못 잡고 휘청거리는 편이기도 하지만,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휘청거리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동요가 쉽게 일어나는 편이다. 작은 소리에도 쉽게 깜짝 놀라는 편이기도 하고,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화들짝 놀란다. 남이 우는 모습을 봐도 같이 따라 엉엉 우는 울보이기도 하고, 생리를 앞둔 시기에는 사소한 일(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가 날 때가 있다.
멘탈도 쉽게 흔들리는 편이다. 각자 목표를 공유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부끄럽지만 늘 자주 하게 되는 말은 “이번 주에는 멘탈 이슈로 인해 OO을 하지 못했습니다.”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의무감으로 꼭 해야 하는 일만 해내고, ‘이건 해야 하는데. 이건 하면 좋을 것 같아’하고 맘먹은 일을 잘 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래서 ‘중심을 잘 잡고 살라’는 말을 실천하고 싶었다. 늘 허둥거리고 요동이 많은 것 같아 한 자리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중심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기도 했다.
통계학에서 ‘평균’(average) 개념이 중요한 이유도 이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평균은 매우 중요한 (중심) 위치척도이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어느 위치를 중심으로 분포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위치척도인 평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아야 한다. 결국 통계학이든, 현실이든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평균으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평균을 만들어내는 데이터의 수량이 일정 수준 있어야 한다. 기초 통계학에서는 최소 30개의 데이터를 이야기하기는 하는데, 뭐 수량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요는 너무 적은 데이터로 만들어내는 평균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다는 데에 있다. 중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우연에 의해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관측치가 확보되어야 우리는 중심을 이루는 평균이 제법 단단하게 한 위치에 자리 잡는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러고 나야 평균에 대한 정보를 신뢰할 수 있게 된다.
‘중심’이라는 건 통계적 관점에서 볼 때 결과론적인 이야기 같기도 하다. 여러 관측치를 모으고 난 후에야 ‘알고 보니 중심이 여기였네.’하는 것 같은, 그런 이야기 말이다. 관측해 보기 전까지는 어디가 평균인지 알 수 없다. 그저 상상만 할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중심을 잘 잡고 살라.’는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중심을 잘 찾기 위해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해보며, 자신에 대한 관측치를 많이 쌓아나가야 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멘탈 이슈로 일을 다 해내지 못했던 것들에도 배울 점이 있었다. 마음이 요동쳐도 어떤 것들은 그럭저럭 힘들이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배우고 싶었던 새로운 기술을 공부하는 일이나 잘하고 싶은 마음을 계속 쓰게 되는 업무는 아무리 감정적으로 소진이 많이 되어도 과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반면 하기 싫은 일, 그러니까 운동이라거나 많이 먹은 날 나의 식단을 기록하고 체중을 재는 일과 같은.. 그런 종류의 일은 도저히 의욕을 낼 수가 없었다.
나의 에너지 레벨에 따라 할 수 있는 과업의 양과 수준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낸 나만의 평균이다. 에너지 레벨이 낮을 때 ‘운동’을 해냈다는 건, 으레 당연하게 했어야 하는 일이 아니라, 더 큰 가중치를 줘서 칭찬을 해줘야 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실천하고, 부딪혀서 실패와 시행착오로 얻어낸 ‘나만의 중심”을 소중히 생각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