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휘바 May 03. 2023

글이 노출될수록 우울해지는 글쓴이

영원히 읽히지 않을지라도

며칠 전부터 갑자기 브런치 조회수가 솟기 시작했다. 브런치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조회수가 폭발하면 기뻤다. 설레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올라가는 조회수가 어떤 가능성들로 이어지지 않을까 작은 희열을 느꼈던 것 같다. 이 과정을 여러 번 겪고 난 지금은 조회수가 올라갈수록 불안하다.


조회수가 역대급으로 높았을 때는 집에 친척들이 모여서 복작복작한 명절 분위기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구독수가 떨어질 때는 친척들과 싸우고 그들이 돌아간 집에 혼자 남은 느낌이었다. 명동 한복판에서 포즈를 잡고 서있는 느낌도 든다. 들고 있는 팻말엔 내 신상정보가 적혀있고 입가에는 경련이 나는 뻘쭘한 느낌.


며칠 전에 갑자기 조회수가 치솟은 이유는 브런치북이 에디터픽으로 메인에 노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독수나 좋아요수는 조회수와 정비례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독수가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조회수가 치솟은 며칠 동안 우울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꿈꿔오던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나는 절망한 것이다.


만개한 정원을 떠올리며 꽃씨를 하나하나 심듯 글을 써왔다. 언젠가 사람들이 정원에 찾아와 꽃향기를 맡고 즐거워할 줄 알았다. 아직 내 정원이 조용한 이유는 사람들이 내 정원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정원에 찾아와도 전혀 내 꽃들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텅 빈 정원에서 나는 홀로 웃을 수 있을까?


글이 노출됨으로써 나는 희망을 잃었다. 사람들이 글을 봐주지 않는다면 내 글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을 뿐 좋은 글이야라고 자기 위안이라도 할 수 있다. 근데 세상 모두가 내 글을 보고도 반응이 없다면 결론은 내 글이 후지다는 뜻이다.


글을 올릴수록 구독수가 떨어질 때도 같은 기분이다. 처참하다.


아님 말고가 좌우명이었던 사람에게 작가의 꿈은 가혹하다. 직장에서는 일만 잘하면 됐는데 작가가 되려면 사랑을 받아야 한다. 사랑을 받는 것이 바로 잘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갈구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괴롭다.


예능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 달린 댓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 무명배우의 사연에 누군가가 가능성에 중독된 상태라고 예리한 분석을 했는데 그 촌철살인의 댓글에 내 뼈도 바사삭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gYErpoXUOQE


내가 우울했던 이유는 가능성과 희망을 보고 못난 글이라도 써왔는데 평가받음으로 인해 그 가능성과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렇다고 글을 그만 쓸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는 언제까지고 글을 쓸 것이다. 영원히 읽히지 않을지라도.


Julia Cameron이라는 극작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좋은 예술가가 되기 위해선 형편없는 예술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초보자가 될 기회를 주어야 한다. 형편없는 예술가가 되기를 자처할 때, 좋은 예술가가 될 가능성이 열린다. 어쩌면, 오랜 시간 뒤에는 아주 좋은 예술가가 될지도 모른다.


계속하다 보면 티끌만큼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유일한 문제는 티끌만큼 나아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는 거다.


결국 취미로 글을 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사랑받고 인정받지 못하는 내 글들을 보고 초조하고 울적해질 일도 없을 테니. 순전히 내 만족을 위한 글쓰기가 될 테니. 과연 그럴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