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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Oct 17. 2023

너는 글이다

갑자기  글쓰기 34

나를 돌아보지 않는 것을 놓지 못하는 건.

글쓰기가 그럴 수도 있다고 종종 생각한다.

어떤 의지로 발을 내딛기보다

무작정 걷고 난 후 왜 그랬을까

뒤늦게 묻는 내게

그 친구도 글도.

목적 없이 뒤따라갈수밖에 없는 별이다.     


처음 신입생 환영회에서 아웃사이더를 부르는 너의 갈라진 음성과 장발, 바바리코트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의 이목을 집중시켰지. 수업시간에 교수의 질문에 어쩜 그렇게 잘도 대답하는지. 과방 앞 벽화도 멋지게 완성하고 한쪽 구석에 쭈구리고 앉아 기타로 노래도 잘 부르는 너는 정말 다른 종족 같았어. 술만 퍼마시고 툭하면 울어대던 나 같은 애숭이 신입생과 차원이 달랐어. 그런 너가 군대를 가서 나를 찾은 건 정말 의외였어. 그리 잘나고 모든 것을 다 아는 듯한 말들을 내뱉던 시니컬한 너의 마음은 실은 유리 같았고 나는 그걸 알아챌 만큼 충분히 어둡고 의외로 닮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더랬지. 너의 편지는 하루에 두통이 넘을 때도 있었고 그건 시일 때도, 시나리오일 때도, 때론 무협지일 때도 있었어. 너의 글은 훌륭했고 글씨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다워서 아직도 벽장 어두운 곳에서 꿈틀대고 있어.

너는 제대 후 영상원에 새로 입학하고 나는 끝없이 하찮은 연애를 했지만 우린 어떤 알 수 없는 끈이 연결되었음을 알았잖아. 오래된 형광등처럼 깜박깜박 잊을 만하면 존재를 드러내는 그런 사람으로 있었으면 되었는데. 십년을, 청춘을 서로라고 명명하는 순간 우리는 버려질 길을 택해 버렸어 청춘은 지나가버리는 것이고 서투르고 아련한 것인데. 청춘이라고 밑줄을 그어버리고 우리는 멀어졌어, 모든 글은 너에게서 나오고 너를 향하는 것으로 입력되어 있었던 나는 한동안 글로 가는 길을 잃었어. 30대에 소설을 읽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며 결혼을 하고 육아서만 읽으며 서정적인 시대에서 서사의 시대로 진입해 분주해졌지.      


아니, 실은 나에겐 너를 향한 수많은 마지막 편지가 있어. ‘너무 늙어버린 육체 안에 자리 잡은 너무나 젊은 마음들을 진정시키는 밤’은 글이 되어, 너가 되어 한줄한줄 적혀나가지. 그냥 그것으로 족한 내 청춘이 되지.



내인생에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해서 쓰라는 주제를 받아들고 곰곰히 생각해 봤다.

가장, 이란 단어도 중요한, 이란 단어도 어울리지는 않지만

이럴때만 떠오르고 마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글이겠지라는 마음에 예전글을 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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