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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달 Jun 24. 2023

느닷없이 젊어지는 비결

갑자기 글쓰기 33

시간이 빠르다. 나이가 들면 실제로 체감하는 시간이 빨라진다는 의미에서라기보다 달려드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쳐내면서 하루하루에 끌려다니다보니 어느새 쨍한 여름이다.


매일 해야 하는 점이 부담스러워 망설이던 저소득층 어르신 배식지원일을 시작하였다. 개인의 스케줄에 맞춰서 출퇴근의 유연성이 보장되어서 그 점을 십분...아니 백분 이용하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침에 자전거를 타고 수서까지 가서 3시간 정도의 일을 하고 다시 탄천길을 달려 컴백해 다음 일정을 수행한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침이 주는 기운을 받으며 달려가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매력적인 행위이다. 바람이 적절하게 얼굴을 스쳐가면 어떤 날은 쭈욱 달려서 분당까지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곤 한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아침루틴의 상쾌함, 하루의 길고 김(이 일이 끝나고 집에 가도 평소 집에서 기상하는 시간이다.), 운동의 건강한 기운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는 젊어지고 있다. 갈수록 젊어진다..하하. 물론 주름은 여전하고 기미는 늘어나고 허리도 아프지만, 눈은 더 침침해지지만 젊어지는 비결.


복지관에 식사하러 오시는 분은 최소 70세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외에 같이 일하시는 분들 중 그들보다 더 나이가 많은 80 전후의 할머니가 세분 계신다. 청소도 배식도 우리와 동등하게 일을 하고 계신다. 귀가 조금 안들리시는 분도 계시고 당뇨로 눈수술을 하신 분도 계시고 거기에 허리도 구부정하시기도 하고 하지만 꽤나 정정하시다. 매일 아침 출근하여 이렇게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운인가. 같은 나이의 온갖 병으로 시달리는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매우 부러울 따름이다. 그 분들은 나를 아가씨라고 부른다. 그 나이면 천지에 할 일이라고 하시고 짧은 티를 입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본인들은 너무 살이 쳐져서 다른 사람을 위해 긴 팔을 입으신다고 하신다. 어제는 같이 일하는 69년생 언니들과 65세 할아버지와 꺄르르 웃으니 젊음이 좋으네 라고 하신다. 어른들이 쇠똥 굴러가는 것만 좋은 사춘기 소녀들한테 한다는 소리가 아닌가. 배식을 받으러 오시는 어르신들도 '젊은 양반'이라고 나를 부른다. 이렇게 나는 느닷없이 점점 젊어지고 있다.자꾸 그런 소리를 들으니 젊어진다. 나는 젊구나,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이구나. 흔히 말하는 지금이 당신의 가장 젊은 시절이라는 말이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쏙쏙 마음에 박힌다.


40대가 되면서 가장 자주 하는 말은 나나 주변 사람을 보나 늙으니 이래저래 였다. 마치 충분히 늙은 양 늙으니 몸이 예전같지 않다고 하곤 했다. 학원 데스크 79년생 실장도 이말을 자주 한다. 더 어린 30대 팀장에게 늙어봐요.. 눈도 안보이고 어쩌구저쩌구. 진짜 아프고 진짜 늙으면 할 수 없었던 때에 지금 보면 엄살 같은 이야기를 나는 하지 않았나, 하고 있지 않나 두리번 거린다. 이제 40중반부터 안보여 안보여 하던 눈은 더 안 보여 돋보기를 사야 하는 시점이지만 백내장으로 앞이 뿌옇지도 않고 평소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만 귀가 안들리는데 나는 왜이리 앞장서서 늙었다고 이야기했을까. 너무 시계를 빨리 돌여 자기를 오지도 않는 시간에 놓아두고 한탄하는 게 익숙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진부해서 입에 담기도 지겨워죽는 이 말을 굳이 끌고 오지 않아도 100세에서 절반을 살은 지금 많은 것을 서둘러서 매듭을 짓는 것은 우습구나. 마침표를 계속 입으로 점점이 찍는 습관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미리 늙는 연습을 하는구나.


그 어느때보다 많은 일을 하고 있다. 20대 중반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n잡러라고 그럴싸하게 명명하는 것도 없었지. 그때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도 같다. 내가 상상하던 중년의 여자가 가지는 어른스러운 태도나 마음은 아무리 뒤적여도 없다. 어느순간부터는 그냥 나이를 먹는 것인데 왜 우린 그 나이에 맞는 태도와 기대치를 가질까. 내가 80이 된다고 해도 이 마음일 거 같은데, 죽음이 그때라고 더 친숙할 거 같지도 않고 세상을 이해하는 깊은 시선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한데.

젊어지는 비결은 비싼 화장품을 쳐발쳐발 하는 것에도 주름을 쫘악 땡기는 것이 아니라 내 나이에 갇히지 않는 것이란 것을 여기 복지관을 다니면서 체험하고 있는 중인 듯하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젊음이란 것은 결국 상대적인 거니까. 여든이 되어도 그 나이의 기대치를 두지 말고 건강하자. 그저 건강하자. 건강하면 젊은 거다. 두 발로 걷고 내 몸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순간까지 젊은거라는 이 마음을 구경했다는 게 소소한 복지관 월급보다 큰 수확인 것으로 여겨보기로 한다.

아. 그나저나 올해 안에 갑자기 글쓰기 마무리 해보자고. 바쁘다는 핑계는 늙었다는 핑계만큼 구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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