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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Oct 19. 2020

초등교사로서 학부모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


어느 샐럽의 초등 자녀 고입 입시 학원을 알아본다는 포스팅을 봤습니다. 그분을 지칭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아니고 그 내용을 통해 생각났던 제 교단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 입니다. 물론 저는 샐럽도 아니고 일개 평범한, 애들 가르치는 걸 주업으로 삼는 선생일 뿐입니다. 


저는 선행학습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분야든 재능이 있는 학생의 놀라운 학습 파워를 목격한 때도 종종 있습니다. 재능이 노력보다 더 파워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지만 여하튼 재능은 숨겨진 보석 같은 겁니다. 특히 초등에선 더 그렇게 보입니다. 아직 굳어지지 않은 사고의 아이들이 그 재능으로 무엇을 할지 지켜보는 선생으로서도 기대되고 설레고 그렇습니다. 그런 학생들이 좋은 인격을 갖춘 선생님을 지속적으로 만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재능을 갈고 닦는 것은 본인의 내부적 힘이겠지만 그 재능이 가치 있게 빛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선생님의 힘입니다. 그걸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훌륭한 선생님은 잔꾀와 요령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점수나 등급이 잘 나오면 좋지만 그것에 연연해 하시지도 않지요.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고 고민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 주시고 배우는 분야에 대한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흔히 '가치 있다' 라는 걸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나요. 어른들끼리는 시야가 넓고 식견이 있으니까 이러저러한 근거를 댑니다. 사실 그 근거도 대부분은 누군가의 경험이자 믿음, 사회적 관습에 기반한 겁니다. 아이들은 그런 어른의 말을 믿으면서 가치 있다는 걸 체득합니다. 한마디로 이게 가치가 있대 라고 하면 그런가부다 하고 따라가는 겁니다. 


따라서 어른이 어떤 분야에 대한 가치를 전수할때 모델링으로서의 전수, 요령 피지 않고 탐구 자체를 긴 호흡으로 즐기되 그걸 누군가가 잠재적으로 따라하고 배우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핵심이라고 저는 봅니다. 교육자는 이걸 늘 고민해야 합니다.수학을 하는 사람과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의 차이는 여기서 나겠죠.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한 책임의식이 추가가 됩니다. 


부모가 선택한 선행학습의 목적이 재능 발견의 측면이라면 사실 걱정은 이것 정도입니다. 위의 사항을 생각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그 학생은 보석처럼 재능을 갈고 닦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입시가 목적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특히 한국사회에선. 한국입시 때문에 선행학습이 창의성 교육으로 둔갑되고 영재교육으로 덧칠 됩니다. 일단 남보다 뛰어나려면 빨리 풀고 많이 알아야 하니까요.


이게 잘못 꿰이면 아이들 전체에도 영향이 갑니다. 아이들의 역량에 거품이 껴서 과장된 평가를 하게 됩니다. 


현장에서 실제로 제가 많이 겪은 것이기도 합니다. 선행학습을 하는 건 좋은데 공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기본기를 탄탄히 하고자 하는 수업 중이나 학교 생활 중에 자녀의 언행이나 태도가 방해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좀 좌중시켜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남보다 더 알고 있다 생각하면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사실 이나라 어른들도 그렇잖아요? 사는 동네, 소유한 자동차, 아파트, 졸업한 학교로 얼마나 벽을 치고 줄을 세웁니까. 서로 다들 나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이 분위기는 그럼 여기 사는 외국인이 만들었나요?  


그런 분위기가 있으면 평범한 다수의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이 작다고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런 분위기를 주도하는 사람 또는 학생들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늘 알고 있듯 분위기 전체를 흐리는 것의 시작은 소수의 행동이나 문화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고도 슬픈 건 이런 현상 때문입니다. 제발 평범한 사람들이 그저 평범하다는 이유로 불행하다 느끼지 않도록 교육에서부터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평범한 아이들이 미래에 외로운 개인으로 뿔뿔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게 공교육 아닙니까.


저는 아이들이 과소평가를 받는  것 보다 과대평가를 받고 살때가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봅니다. 그건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한 개인의 삶을 비추어 볼때도 그렇습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과대평가를 받고 산다 생각하면 그 사람은 커서도 자기가 쳐놓은 건지 부모가 쳐놓은 건지도 모를 그물에 걸리게 됩니다. 언제나 내 삶의 기준은 높아지는 거죠. 헉헉대고 쫓아가기 바쁜 삶을 살게 됩니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서. 그게 가치관으로 굳어지면 공부도 경쟁이 되고 자존감이 되려 낮아지죠. 인생이 과장광고처럼 될 수 있습니다.


객관적 평가가 없어서 실력을 모른다고들 하지만 이나라 학생역량 평가에서 더 심각한 건 과대평가 입니다. 그리고 상위 몇%를 가려내기 위한 객관적 평가가 그게 평가입니까? 소수의 상위학생을 가려내기 위하여 다수의 평범한 학생을 희생시키는 평가 제도는 아니구요?   다만, 학교에서도 학생을 평가할때 아닌 건 좀 아니라고,  안한 건 안 했다고, 부족한 건 부족하다고  제대로 학생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믿고 도와주십시오. 아주 평가등급 낮게 줬다는 민원때문에 선생님들이 힘들어하고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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