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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디강 Cindy Kang Jul 10. 2022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뉴욕이란

세계 곳곳에서 모인 그림쟁이를 위한 천국

얼마 전 첫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참여했다.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VA)에서 주최하는 레지던시였는데, 졸업생이다 보니 합격과 동시에 겁 없이 당연히 가겠다며 수락했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놀랐는데, 예상치 못하게 내가 유일하게 뉴욕에서 참가한 레지던트란 사실 때문이었다.


미국의 필라델피아, 플로리다, 로스엔젤레스, 샌프란시스코, 그리고 인도, 중국,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곳에서 온 레지던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뭐를 위해 이걸 참여했더라-싶었다. 심지어 졸업생이 다시 학교 건물에 와 뭐 하고 있냐는 농담 섞인 말들도 들었다.


일단 내가 참여한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는 내 일러스트레이터 커리어의 어딘지 모르는 정체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리고 대학원을 지원해야 하나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예술가 커뮤니티를 위해서 그리고 겁나게 휘몰아치는(!) 그룹 크리틱의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른 레지던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이 참여한 이유는 나와 달랐다. 이들의 큰 두 가지 이유는 첫째로 진지하게 일러스트레이터 커리어에 올인할 수 있는지 포트폴리오 등 본인의 역량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리고 둘째로는 뉴욕으로 오고 싶어서였다. 


뉴욕은 여러 방면 크리에이티브들에게 매력적인 도시다. 다른 브런치 글에서 그렇게 싫다 싫다 외쳐대지만 결국 나도 여기에서 지내는 삶을 이야기하면 끝에 New York or Nowhere 가 불쑥 튀어나오는 사람이다. 걸어 다니며 보이는 것마다 영감이 될 수 있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만나게 되는 사람도 많고 심지어 할 일도 많다. 이곳에서의 일상이 평탄하지 않으니 그 뜻은 자극과 영감이 넘치는 곳이라는 뜻이 아닐까?






점심을 먹으면서 한 레지던트는 자기가 뉴욕에 오는 데까지 얼마나 역경을 많이 겪었는지 말했다. 우리 모두 그랬지... 다들 끄덕이면서 뉴욕이 얼마나 진입장벽이 높은지 이야기하며 서로를 토닥여줬다. 그러고는 제일 골치 아픈 곳을 넘겼으니 그래도 맘 편하지 않냐며 웃었다. 물론 여기 온다고 다가 아니지만 첫 단추를 끼운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데-하며 서로 칭찬했다. 


시장이 어디에 있는지는 무시할 수 없다.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졸업하거나 가르치는 학교, 그리고 그 학교들이 있는 곳. 실력 있는 아트 디렉터들이 활동하는 곳. 일러스트레이터의 수요가 높은 곳, 그만큼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대우를 받는 곳. 이게 다 해당하는 곳이 뉴욕이다. 게다가 이벤트들을 가면 그 사람들과 만나서 커넥션을 쌓을 수도 있다. (파티를 겁내지 않는다면.)


아르헨티나에서 온 작가가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고향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잘하고 있었지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 시도해봤지만 시장이 크지 않아서 일러스트레이터가 합당한 대우를 받는 걸 기대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 짧게 있었지만 그게 무슨 느낌인지 잘 알고 있다. 한국도 일러스트 작가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고 기업들과 큰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하고 있지만, 미국과 어쩔 수 없이 비교가 된다.






"MFA on steroids"라고 불리는 한 달간의 하드코어 레지던시를 마치고 마음이 몽글몽글한 상태로 레지던트들과 둘러앉아 마지막 대화와 인사를 했다. 뉴욕에 남는 사람은 단 세 명뿐, 나머지 몇몇은 짧으면 6개월 안에 뉴욕으로 이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사람일 모르는 일이니, 우린 웃으면서도 어쩐지 차분한 분위기로 인사를 했다. 꼭 뉴욕에서 다시 만나자! 하고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이 이상했다.


너무 쉽게 정이 들어버리는 성격이라 사람들이 쉽게 오고 가는 뉴욕은 속상할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남아서 아등바등 뭐라도 하려고 하는 이유가 좀 더 또렷해졌다.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만으로도 뉴욕에 있을 이유는 충분하다. 게다가 내 커리어를 위한 시장이 떡하니 존재해주니, 이것저것 슬픈 일 많아도 열심히 해봐야지. 


오늘도 레지던트들과 채팅방에서 이것저것 그림 이야기를 하고 수다를 떨었다. 다음 주엔 뉴욕에 남은 레지던트들, 그리고 몇몇 친한 친구들, 처음 만날 친구의 친구들과 Drink & Draw라는 피겨 드로잉을 간다. 친구한테 이야기하니 "That's so New York" (진짜 뉴욕스럽다)라고 한다. 



220709 12: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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