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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스 May 03. 2023

캄보디아 가옥에서 바라본 밤하늘

인생은 자판기가 아니니끼


    생일 기념으로 지인에게 ‘하늘 영사기’를 선물 받았다. 처음에는 딸이 신기해했는데 이제는 내가 더 좋아한다. ‘김동률’이나 ‘잔나비’ 노래를 들으면서 천장 위로 흐르는 물결모양 무늬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심해 속 고래가 된 느낌이니까. 눈을 감아도 뜬 것 같고 떠도 감은 것 같다. 그렇게 몽롱 상태로 눈을 깜빡이고 있으면 문득 12년 전 그때 그 풍경이 떠오른다.     




   힘든 프로그램 하나 끝내고 몇 주간의 휴가를 받았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캄보디아를 택했다. 왜? 예전부터 앙코르 와트가 너무 가고 싶었으니. 어릴 적 아빠가 ‘따프롬 ’ 사진을 보여준 적 있었는데 그때부터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일말의 주저 없이 프놈펜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앙코르 와트’는 말 그래도 엄청났다. 곳곳이 유적지 천지였다. 규모도 컸고 디테일도 남달랐다. 감탄하며 걷다가 잠시 쉬기 위해 돌기둥에 앉았는데 가이드 말로는 그것도 몇 백 년 전 유적이란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일어나니 그는 괜찮다며 깔깔 웃었다.     


    역사 덕후인 나로서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었다. 부조와 무늬 하나하나가 아름다웠고 그 용도와 의미를 알기 위해 역사책을 뒤지면 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특히 접착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홈을 파서 돌끼리 서로 끼우는 방식은 너무나 경이로웠다. 어떻게 이런 기술이 가능할까? 크메르 장인들의 손길을 느끼며 이곳저곳 돌아다닌다면 입이 떡 벌어질 때가 많았다.      


     마치 ‘인디아나 존’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서 일까? 처음에는 관광객들 많이 찾는 곳을 돌아다니다가 5일 정도 지나니 더 특별한 것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거친 수풀을 헤치고 밀림 한복판으로 들어가야지 겨우 만날 수 있는 비밀 유적지. 그런 곳에서 나 혼자 오롯이 천 년 전 석상들과 교감하고 싶었다.      


    가이드에게 그런 곳 있냐고 물어보니 그는 생뚱맞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톤레샵 건너편에 있는 사원 하나를 추천해 줬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자기는 따라갈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나 혼자 툭툭 타고 히치하이킹을 하고 또 하염없이 걸어서 결국 원하는 비밀 사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대여서 그런지 겁도 없었다. 솔직히 살짝 무섭기도 했지만 드라마 조연출하면서 겪었던 짬바(?) 때문일까? 이 정도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밀 사원에 들어가니 정말 을씨년스러웠다. 나무뿌리에 박힌 인물 석상은 반쯤 눈을 뜬 채 나를 노려보았고,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커다란 석실에 들어설 때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100년씩 과거로 가는 듯 한 착각까지 일었다.   


   

     그렇게 감탄하며 또 사진을 찍으며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끄물끄물거리더니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스콜이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나는 재빨리 사원 안으로 들어가 비를 피했다. 하지만 10분, 30분, 한 시간이 지나도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밀림 속이어서 그런가! 빛줄기는 점점 엷어졌고 어둠이 이내 지천에 깔리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은 나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몇 초도 안 돼 비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아! 이 쪽 길이 아니었나?’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나는 같은 곳만 계속 빙글빙글 돌았다. 잃어버린 사원이 저주를 거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엄청난 공포가 엄습했다. 아무리 유적지를 좋아한다고 한들 이런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해서 가이드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은 되지 않았다. 아니 신호조차 제대로 터지지 않았다.

   ‘큰일 났다! 괜한 호기심 때문에 X 되었구나!!’    

 

    빗줄기는 더 거세졌다. 바닥은 찰흙이 되어버려 거머리처럼 내 신발을 잡아끌었다. 한참 동안 이곳저곳 돌아봤지만 이제는 너무 껌껌해져서 어디가 어딘지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거센 나뭇가지가 온몸을 긁어 날카로운 핀셋으로 세포 하나하나를 떼어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어디서 들리는 동물의 울부짖음은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내 귓가에 울려퍼졌다.

     ‘이러다 조난을 당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일까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그렇게 두세 시간가량 헤맸을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저 멀리서 불빛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살았다!’

    안도감이 느껴졌다. 내겐 태양보다 더 따뜻한 불빛이었다. 서둘러 다가가니 한 집이 보였다. 동남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로 된 2층 가옥이었다.





   필로티 아래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날 보고 깜짝 놀라더라.

    “헬로우! 툭툭 택시!!”

    그렇게 물었지만 아이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뒤늦게 내 또래의 어른들이 나왔고 다시 호텔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들은 두 손으로 X 자를 만들었다. 아무래도 이 시간에 교통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잠시 고민하다가 “혹시 하루만 실례해도 될까요?” 손짓 발짓 해가며 물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쫄딱 젖은 내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날 노숙했다가는 야생동물에게 맛난 간식이 될게 분명했다.      


    들어가니 대가족이 있었다. 어른들 6명, 아이들은 10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색하게 손을 흔들자 그들은 부끄러워하며 자기들끼리 환하게 웃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내게 옷 하나를 건네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아무래도 갈아입으라는 말 같았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니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생선튀김이랑 국수였다. 조촐했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한 끼였다. 왜 나만 먹냐고 물어보니 이미 다들 먹었단다. 시장을 반찬 삼아서 허겁지겁 먹고 있는데 16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계속 내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마치 미어캣 같았다. 콧물 질질 흘리는 아이들은 내 바로 옆에까지 다가왔고 집안의 가장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내게 부채질까지 해주셨다. 솔직히 엄청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생각해 보니 먹방 원조가 나였네!)     


  


    식사를 마치고 나는 한국에서 산 기념품을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명동에서 산 책갈피였다. 여행 다닐 때마다 오가며 만난 친구들에게 주곤 했는데 이렇게 리액션 좋은 적은 없었다. 아이들은 좋다고 공중제비를 돌거나 방방 뛰었다. 이러다 나무 가옥이 부서질까 봐 겁이 났지만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나도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내 밤이 깊었고 대식구들은 다들 이불 하나 없이 나무 바닥에 누웠다. 나도 한쪽 구석에 누워 잠을 청했다. 하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랑 잔 적 없는데... 고개를 돌려 보니 오늘 처음 만난 꼬마아이가 내 옆에서 작게 코를 골고 있었다.


    천장을 올려다봤다. 대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서 그런지 그 틈 사이로 밤하늘이 보였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는 가운데 검은 구름이 보였고 형용할 수 없이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나를 유혹했다. 그 순간 뭔가 이상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았다.


    ‘몇 시간 전만 해도 조난당할 까봐 전전긍긍했는데 이제는 이런 곳에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렇게 누워있다니.’ 사람일은 참 모르는구나 싶었다.      





    때때로 인생이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란 자판기는 동전 넣는다고 해서 원하는 음료수가 나오는 게 아니더라.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때론 예상치 못한 결과가 주어지는데 돌이켜보면 후자가 더 매력적이기도 하다. 막다른 에 도착했다고 생각했을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도 하고, 다 되었다 싶을 때도 작스레 등장한 변수는 호시탐탐 우리의 뒤통수를 노기도 한다. 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랜덤 박스! 그러기에 인생은 다채로운지도 모른다.     


    실은 요 몇 달간은 조금 힘들었다. 생각보다 머리 아픈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보니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두 눈을 감고 캄보디아 가옥에서 바라본 밤하늘을 생각해 본다.


    가면 갈수록 미로 같은 게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난 내 인생을 믿는다. 호기심과 도전으로 응집된 삶이라, 때론 오해를 사기도 때론 칠흑 같은 밤에 장대비를 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묵묵히 걷다 보면 언젠가는 따뜻한 밥 한 끼와 반짝이는 별들을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 날 반기던 그 환한 불빛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다정했던 그 캄보디아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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