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이스 Jun 16. 2023

엄마! 내 귀 좀 잘라줘

레디메이드 인생


  “와~ 이렇게 보니 감독님 귀 엄청 크네요.”


    한 술자리에서 내 앞에 앉은 배우가 이렇게 말한다. 거의 5년 넘게 친하게 지냈으면서 갑자기 이러니 괜히 새삼스럽다. 하긴 감독이 배우 얼굴 보지~ 배우가 뭐 하러 감독 얼굴 보겠어?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자 옆에 앉은 다른 사람들도 뚫어져라! 내 귀를 살펴본다.


   “그러게. 엄청 신기해요.” “와~ 대박!!” “처음 알았어요.”

   “뭘 또 보고 그래~ 저기요!! 여기 주문한 거 언제 나와요?”

    관심받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라 나는 재빨리 화제를 돌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내 귀는 가운데 귓바퀴가 없다. 그래서 그런가! 귀 전체가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이런 독특한 외모 때문에 나이 먹어도 이렇게 관심을 받는데 어릴 때는 얼마나 심했을까? 게다가 전교에서 제일 조그만 녀석이었으니 (고딩 때 무려 20cm 넘게 컸다) 철부지 아이들에게 얼마나 좋은 먹잇감이었겠나? 녀석들은 맨날 내 귀를 잡아당기며 놀렸다. ‘당나귀’, ‘귀나당’, ‘아기 코끼리 덤보’, ‘레이더’ 게다가 ‘스카이 라이프!’까지 어찌나 창의성이 뛰어난지! 해가 갈수록 내 별명은 하나씩 추가되었다.      


초등학생 때 나


     특히 시험 기간이 피크였다. 다들 줄지어 내 귀를 만져댔다. 뭐라더라? 내 귀를 만지면 성적이 좋아진다나 뭐라나! 누가 언제 만든지도 모를, 그 말도 안 되는 미신 때문에 하루 종일 내 귀는 쪼물딱 쪼물딱 희롱당했다. 싫다 뿌리쳐도 소용없었다. 나보다 머리 하나 더 큰 녀석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심지어는 짝사랑했던 여자애도 내게 다가와 부탁하듯 손가락을 내밀었다.

     '한 번만 만지면 안 될까?'

    마지못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보니 하교할 때쯤 되면 내 귀는 루돌프 코처럼 시뻘겋게 익어있었다.     


     ‘신이시여! 왜 내 귀를 이렇게 만들어주셨나요?’

     나는 하늘을 두고두고 원망했다. 엄마도 아빠도 심지어는 우리 형도 이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전생에 도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흉측한 외모를 주셨나이까? 봄이 왔어도 내게는 사계절이 시베리아였다.      


     어느 날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이렇게 살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거라고. 이러다가 서커스단에 팔려갈지도 몰랐다. 하교하자마자 나는 엄마에게 가위를 갖고 갔다.


    “엄마! 내 귀 좀 잘라줘.”

    9살짜리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니까 엄마는 깜짝 놀라셨다.

    “왜?”

    “애들이 하도 놀려대서 미치겠어.”

    자초지종을 말하자 엄마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날 바라보셨다.

    “에휴.. 그랬구나! 그럼 잘라줘야지.” 그러면서 엄마는 가위를 드셨다.


    눈을 찔끔 감았다. 엄청 아플 게 분명했다. 그래도 지금까지 받았던 설움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참을 수 있.... 있을까? 겁이 났다. 잠깐! 소독, 소독도 안 했잖아. 그 순간 싹둑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악!!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지만 이상하게도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떠보니 바닥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떨어져 있었다. 엄마는 내 귀 대신 뒷머리를 자른 것이었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볼 때는 아들 귀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귀야!”

   “그게 무슨 소리야?”

   “가만히 있어도 경청하는 자세가 되잖아. 마치 상대방 말을 잘 듣기 위해 마중 나온 느낌으로.”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멀뚱멀뚱 바라보자 당신은 허리를 숙여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들!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런 놈들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 돼!!”





     그날 이후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나는 그때 그 귀를 달고 있다. 다만 그동안 얼굴이 더 커져서일까? 예전만큼 뚫어져라 보는 사람은 없다. 대놓고 놀리는 이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오니 다른 종류의 ‘투석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 투석꾼!!


     그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호시탐탐 우리를 노린다. 사람들 없는 곳에서 남을 깎아내리거나 아니면 익명을 빌어서 누군가를 저주하거나, 타인에게 일부러 개수작 거는 인간들이 꼭 어디에나 있더라. 마치 잔잔한 호수만 보면 돌을 던지고 싶어 하는 아이들처럼.     


    살면서 절절하게 느낀 한 가지는 내 목숨을 노리는 사람보다 내 영혼을 노리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이다. 자기가 불행하다 해서 남까지 불행의 늪으로 끌어내릴 필요 없는데... 꼭 그런 인간들은 누군가를 떨어뜨려야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생각하나 보다.     


    돌이켜보면 평생 그런 사람들에게 휘둘리면서 살았다. 생각 없이 돌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왜 내게 그랬을까?’ 이해하고 또 분석하며 살았다. 그들 생각에 나를 맞추려고 애썼고, 그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으려고 등을 돌렸다. 그러다 보니 나는 깎이고 또 깎여 동글동글한 기성품이 되어버렸다.


    ‘레메이드 인생!’

  

    기성복에 억지로 몸을 맞춘 인생이었다. 후회된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스트레스를 받고,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데 투석꾼들의 눈치 보느라 인생을 둘러가는 경우가 허다했으니까. 남들이 뭐라 건 조금 더 나 자신의 선택을 믿었어야 했는데...


    누구보다 특이한, '당나귀 귀'를 자르지 않아도 나는 잘 살고 있으니까.      








    우리 딸은 신기하게도 한쪽 귀는 나, 그리고 다른 쪽 귀는 아내를 닮았다. 어떻게 이렇게 반반 닮았는지 ‘유전’이란 참 신기하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아이가 사춘기가 되니 슬슬 걱정다. 나 어렸을 때처럼 놀림받는 것은 아닌지! 게다가 감수성 예민한 딸인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아내가 내게 다가오더니 ‘현서 한쪽 귀 수술해야 하나?’라고 묻더라.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몇몇 친구들이 놀린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딸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추고 내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워낙 맑은 아이여서 그런지 아빠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읽는다.


   “현서야! 살다 보면 아무 이유 없이 돌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단다. 그런 놈들 때문에 흔들릴 필요 없어. 너는 누 뭐라 해도 예쁜 아이니까.”     

 

     딸이 커서도 머리로 귀를 안 가렸으면 좋겠다. 한쪽 귀는 아내 닮아서 사랑스럽고, 다른 쪽 귀는 날 닮아서 가만히 있어도 경청하는 자세가 되니까. 있는 그대로, 깎이고 깎이지 않은 채로, ‘레디메이드 인생’이 아닌 ‘웰메이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FI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