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일기
2024년 7월 1일(월)
전날 밤 꿈에 친구가 나와 “오늘 12시에 만나기로 한 거 기억하고 있지?” 라며 설마 잊어버린 건 아니지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당황하며 “어, 그랬나. 알고는 있었는데. 알았어”하고, ‘나 직장을 다니는데 점심 약속이라니, 급히 휴가를 내야하나’라고 당황하다가 깨어났다. 친구가 꿈에 나오다니, 무슨 일 있는 건가 싶었다.
퇴근 후 친구의 안부도 물을 겸 전화를 했다. 친구는 꿈이야기를 듣더니, 잘 지내고 있다며 자신이 꿈에 나온 건 보고 싶어서였을 거라며 반가워했다. 그렇게 잠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시간을 공유했다. 퇴사 후 3월부터 자유인으로 지내고 있는 그 친구의 목소리엔, 나른함이 느껴질 정도의 여유로움과 봄바람 같은 공기가 묻어났다. 친구는, 올해까지는 마음껏 놀고 싶다며, 통장잔고가 줄어들면 구직을 고민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라며, 지금을 즐기고 있었다.
퇴사 후 걱정되는 수많은 것들을 모두 던져버리고 용기를 낸 친구. 한 챕터를 닫고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친구를 보면 응원하게 되고 나 역시 기분 좋아진다. 그럴 수 있는 그 친구의 능력이 부럽기도 하면서.
오늘 저녁 메뉴는 고등어조림이었다. 엄마가 낮에 자반고등어를 샀는데 구이를 하면 기름 때문에 뒤처리가 힘들어,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조림을 했다고 했다. 자반고등어로 조림을 해 먹는 다라. 짤 거 같다는 걱정이 제일 먼저 들었다. 엄마는 짤 수 있을 거 같아 무를 아래에 가득 깔았다며 설명해 주었다.
적절한 짭짤함으로 맛을 끌어올려 줄지, 아니면 짜서 먹기 힘들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짬. 못 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조림양념까지 있으니 고기 안의 짠맛이 더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엄마 친구들이 짜게 드시는가 보다. 자반고등어는 구워 먹고, 조림용 고등어는 생물로 하는 걸로. 땅땅땅.
밥을 먹으며 엄마와 조금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더 하려고 시도를 했다. 목소리는 조금 크게, 질문도 하면서. 평소 티브이를 보며 조용히 밥을 먹고 간단히 이야기하거나, 핸드폰을 하곤 했는데, 그러기엔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지금 회사에 취업하고 나서, 이야기를 할 힘도 없고 거의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은 게 수년은 된 거 같다.
생선조림, 다시마 무침, 요리하기,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자, ‘그저 밥을 먹는 시간’이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갔다. 엄마와 같이 뭔가를 하는 건 식사시간이 거의 전부일 텐데, 어쩌면 엄마도 하루종일 이 시간을 기다렸을 수 있는데. 그 시간을 오랫동안 그저 흘러 보냈구나란 생각이 다시 들었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간다는데, 나 역시 그걸 절절히 느끼고 있다. 무엇을 했는지 모르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이 순식간에 지난다. 그럼 엄마는 더 빨리 느끼시겠지? 5년이 넘는 시간이 더 아깝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일부러 여행 같은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나이 들면 기억력이 떨어져 시간이 빨리 가니, 기억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얼마 전 가지 못했던 연천을 갈까 했는데, 장마철이라 다른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러다 합창공연관람 때 스페인 음식을 못 먹은 게 떠올랐고, 검색해 보니 마침 동네에도 괜찮은 식당이 있었다. 엄마는 음식값을 걱정하시기도 했지만, 특별한 반대의사를 보이진 않으셨다. 그렇게 이번주 토요일 동네 스페인 음식점 체험을 하기로 했다.
신경 써서 준비하지 않으면 그저 흘러갈 수 있는 시간들. 조금은 노력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야 할 거 같다. 내 로망 중 하나가 가족과 해외여행 가는 거였는데. 그것도 해보고 싶다.
저녁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그림을 그리는데, 갑자기 뉴스특보가 나왔다. 장마니까 물조심하라는 안내뉴스겠거니 했는데, 사고소식이었다. 서울시청 근처에서 인도로 차량이 돌진해서 13명의 사상자가 생겼고, 지금 경찰과 소방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했다. 6명 사망, 3명은 심정지 상태, 4명은 부상. 큰 사고였다. 테러가 종종 일어나는데 이번에도 그런 건가, 아니면 사고가 있는 건가? 아직 수사 전이라 원인은 나오지 않아 혼자 추측만 할 뿐이었다.
월요일 저녁시간, 평소처럼 다녔을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텐데. 사고를 당한 사람도, 그 가족들도 한순간에 너무나 충격적인 일을 겪어버린 거다. 지금 가족에게 전화연락이 안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애탈까란 생각에 맘이 좋지 않았다.
속보가 끝나고, 뉴스와는 너무 다른 분위기로, 부부의 일상을 담은 프로그램이 다시 재생되었다.
오늘은 친구와 전화통화하고, 엄마와의 저녁을 먹는 일상의 날이구나 했는데, 하루가 끝나기 전 갑작스러운 뉴스가 더해진 날이었다. 너무나 많은 일이 세상에 일어남을 다시 느낀다. 그저 모두의 일상이 평온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