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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Sep 24. 2019

인생같은 미로길, 연남동 골목여행

마포에 살며 마포를 여행하는 이야기 004


연남동에 정착하기 전까지 나는 아파트를 벗어나본 적이 없다. 

사진으로나 확인할 수 있는 꼬꼬마 시절에나 단독주택에 살았을 뿐. 아파트를 둘러싼 환경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쭉쭉 뻗은 대로변, 아파트를 따라 나란히 줄지어 들어선 프랜차이즈 상점들. 그리고 지하철역과 학교와 학원들. 물론 매우 편리하고 쾌적한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서울의 도심 대로변 이면의 오래된 옛길들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삼선동의 동태찌개집과 부대찌개집, 피맛골의 열차집, 인사동의 이모집, 순화동의 해장국집, 충정로의 닭갈비집, 이화동 순대국집, 성북동 돈가스집...... 동료들과의 회식장소나 회사관계자와의 미팅장소는 보통 화려하고 세련된 레스토랑이 아니라 이런 오래되고 좁은 골목길 위의 식당에서 시작되곤 했다. 


"영희야!" 하고 부르면 골목 어디에선가 "왜 불러!" 하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키가 작은 집들 사이로 걷는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꽤나 안정감을 준다. 무엇보다 오랜 골목길의 가장 큰 묘미는 그 길이 '미로'같다는 점이다. 어떤 길은 막혀 있어 되돌아 나와야 하고, 어떤 길은 전혀 다른 길로 이어져 있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들어서게 된다. 때로는 열심히 걷고보니 아까 그 길로 유턴해서 나오게 되기도 하고, 가끔은 지름길이 되어 훨씬 빠른 시간에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오래된 골목길은 우리의 인생과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좁고 불편하지만 빌딩과 아파트 숲에서는 느낄 수 없는 따뜻함과 재미와 낭만과 우연이 그곳에 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연남동 미로길 산책을 다녔던 나의 게스트들



연남동 미로길을 함께 산책한 뒤로 우에노상은 연남동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연남동의 미로길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게스트하우스를 하기 위해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집을 보러다닐 때였다. 사장님은 그곳을 미로길이라고 불렀다. 자금이 적어 작은 집을 원했던 내게 그 부동산 사장님은 서교동과 이어진 공원길 왼편의 집들이나 공원길 오른편 휴먼타운 부근의 집들은 아예 보여주지 않았다(이쪽의 집들은 대개 50-100평으로 넓다). 나의 자금으로 구할 수 있는 집들은 대개 미로길과 피난길 그리고 세모길(연남동 끝자락 연남아파트 부근의 길로, 요즘 붙은 별명) 부근의 집들이거나 사도길 안쪽집들이었다. 


홍대입구역 3번출구, 공원 오른편에서 동진시장까지 미로같은 골목길들이 펼쳐져 있다. 차이나타운의 바람이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그곳에는 사오십년 된 낡은 단독주택들과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한 벽돌집들이 정답게 어울려 서 있다. 그 좁은 미로길을 오가는 이들은 대개 연세대학교 학생과 교직원들이거나 외국인 관광객과 게스트하우스 주인장들, 그리고 골목 곳곳에 자리잡은 카페와 레스토랑, 꽃집 등 작은 상점의 사장님과 손님들이다. 


한 번쯤은 구글을 끄고 연남동 미로길에서 길을 잃어보자. 도보 10분이면 어디든 닿을 수 있는 골목들, 설령 길을 잃었다 해도 어차피 멀리갈 수 없으니 마음놓고 헤매보자. 그동안 지나치며 보지 못했던 보석 같은 공간들을, 우연한 발견의 기쁨들을 알게 될 것이다. 내 인생과 어딘지 닮은 미로길에서 오늘의 나와 어쩌면 내일의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남동 미로길 여행 추천 코스 | 소요시간 2-3시간

홍대입구역 3번출구 - 낙랑파라 - 북카페산책 - 동차밥 - Anh 퍼밀 - 사슴책방 - 커피리브레 - 동진시장


낙랑파라, 북카페산책, 커피리브레는 찻집이고 동차밥, Anh, 퍼밀은 밥집이다.

당신의 취향에 따라 미로길 코스를 완성해보시길.



낙랑파라 : 이상이 좋아했던 다방의 이름을 따온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의 카페. 1930년대~1970년대의 빈티지 제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동교동 148-3)

북카페산책 경의선숲길점 :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활동가들의 토크&네트워크 '어반라이브'가 열리는 곳. 다양한 여행서적을 열람하며 여행정보도 얻을 수 있다.(연남동 382-2)

동차밥 : '동국이가 차린 밥상'. 연남동의 끝, 지금은 없어진 서민마트 옆에서 시작해 미로길로 이사한 동네 맛집(연남동 390-78 3층)

Anh : 수요미식회에도 나온 베트남 가정식집. 베트남계 캐나다 셰프의 맛집(연남동 387-8)

퍼밀 : 연남동의 한옥 파스타집(연남동 384-3)

사슴책방 : 헬로인디북스 옆, 옛날 피노키오책방자리의 예쁜 그림책방 (연남동227-16) 

커피리브레 : 약중배전의 로스팅으로 극강의 신맛을 맛볼 수 있는 커피 명가. 예전 시장 안에 있던 한약방 컨셉을 그대로 간직한 내부. 좁더라도 꼭 안에 들어가서 맛보시길! (연남동 227-15)

동진시장 : 연남동이 연희동이던 시절에는 평범한 재래시장이었다가, 오늘날 젊은 청년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 예술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변모한 공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말에만 운영된다는 것.(연남동 2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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