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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Apr 29. 2022

왕파리

파리  


1.

묵은 지 반 포기에 두부 한 모,

오겹살도 도톰하게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보글보글 끓이는 중에  

냄새 유혹을 받고 날아든 등 푸른 파리 한 마리

얼씨구, 이놈 봐라!

맛있는 거는 알아보고 남의 집 무단 침입하였겠다.

주인장의 심기가 불편함을 느꼈는지

달아나 보려고 하지만

출구를 못 찾고 갈팡질팡하였다.


서둘러 창문을 닫자,

유리문과 방충망 사이에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우왕좌왕하다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앞발로 싹싹 빌며 용서를 구한다.

짐짓 모르는 척하고 있으려니

뒷발까지 동원하여 눈물 콧물 닦아가며  

빌고 또 빌며 세상 애처로운 표정으로

제발 한 번만 살려주소서! 거듭하며 간구한다.      


이노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그래, 어떤 자는 제가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또 어떤 자는 잘못을 알면서도 사죄를 안 하는데

너는 진심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정중히 용서를 구하고 있으니,

어진이가 오늘 특별히 너를 훈방 조치 하노라.

네, 다시는 남의 것을 넘보지 않겠나이다.



2.

아카시아 흐드러진 강변으로 봄 소풍 나왔다가  

코끝 자극하는 음식 냄새에 군침을 삼키며

바람 일으켜 날아가 보았으나  

촘촘한 방충망이 가로막아 진입을 방해한다.

마침 드레스룸 창문이 빼꼼히 열렸기에

재빨리 집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엥~ 하고 거실을 한 바퀴 돌아보니

음식 끓는 소리는 구미를 당기는데 상차림이 보이지 않는다

검은 그림자의 두려운 움직임이 다가선다.

오늘은 일진이 안 좋은 날인가 보다,

황급히 달아나는데 또 방충망이 가로막는다.

일순 유리창 문이 닫히고

엉겁결에 영어(囹圄)의 몸이 되어버렸다.      


창공으로 날아가다 좁은 공간에서 부딪쳐

이마와 허리에 찰과상을 입었고

투명한 날개에는 금이 가지 않았나 모르겠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창가 쇠창살에 붙어 생각을 좀 해보아야지

구수한 냄새에 정신이 팔려 크게 실수하였다.

앞발에 침을 묻혀

이마의 상처를 살살 문지르며 꽃가루도 털어냈다.

몸에 붙은 꽃가루를 떼어내느라고

애를 먹으면서도 청결을 좋아하는, 나는

뒷발로 좌우 날개를 정성으로 비벼서 닦았다.

 

소득도 없이 황당한 대우를 서러워하며

쩐(錢) 내 나는 곳마다 꼬이는 인간들에 비할쏜가

한 호흡 향기 맡고 군침 삼킨 괘씸죄로 갇힌 몸이 되어

욕심쟁이 인간들을 나무라고 있을 때

검은 인기척과 더불어 방충망 문이 스르륵 열렸다.

날개야! 나 살려랏!

몸치장을 멈추고 후다닥 도망가자

그나마 운수가 아주 나쁜 날은 아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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