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밭의 가이아』최영희 지음, 씨드북
"책 다 읽었니?"
"네."
"작가의 말까지 다 읽어봤어?"
제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질문하면 아이들 입에서 꼭 이런 답이 나옵니다.
"네? 작가의 말을 왜 읽어요?"
그럴 때마다 얼마나 탄식하게 되는지... 작가의 말에 책의 정수가 있거늘...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과연 작가의 말까지 깊이 읽으시는 분들은 과연 몇 분 계실까요? 설마 나는 이 책의 내용을 다 알았으니 작가의 말은 읽지 않고 '다 읽었다!'라고 하진 않으시는지요.
'어차피 작가의 말에는 편집자님 감사합니다, 출판사 감사합니다 밖에 없지 않나요?'
라고 생각하진 않으시겠지요?
작가의 말은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이유, 이 책을 쓰면서 어떤 주제를 담고 싶었는지, 이 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좋을지 바람 등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책 내용을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말을 보면 '아니! 이래서 이런 내용이 나왔군!' 하며 감탄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작가가 어떤 상황에서 이 책을 썼는지 보면 작가가 이 이야기를 썼을 당시의 마음이 제 속에서 같이 공명하게 되기도 합니다.
오늘은 유난히 작가의 말로 더 마음속에 진하게 남은 책 한 권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오늘의 책은 바로 최영희 작가의 『이끼밭의 가이아』입니다.
이 책 표지를 보면 검은색 징그러운 촉수다발과 대비되는 노란 풀 같은 것들이 쫙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누가 봐도 결의를 다지고 도리깨를 움켜쥔 여자아이가 서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인상적인 표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그림 안의 저 역겨운 촉수와 땅의 여신 '가이아'라는 단어가 제 눈에 유난히 잘 들어와 제가 가진 책에 대한 저 궁금증을 더해주었습니다.
저 징그러운 촉수가 책 속에서는 '천사님'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구는 '천사님'이라는 촉수가 뿌려놓은 노란 이끼에 온통 둘러싸여 있습니다. 노란 이끼는 지구 사람들에게 유독한 가스를 뿜어내어 사람들은 천사님의 명령대로 '돔'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 안에 갇혀지냅니다. 그 속에서 콩과 감자 같은 제한된 작물만 재배해서 먹고 살지요. 이 책의 주인공도 그 돔에 살고 있는 친구입니다. 이 친구는 최근에 성인이 되어 드디어 밖에 나가 도리깨질을 하며 천사님을 만날 수 있는 '천사 강림절 축제'를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자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따라 해서 불쾌감을 주는 '마지'라는 친구도 함께 말이지요. 사람들은 천사님이 대단한 존재이고 함부로 볼 수 없지만 경이로운 존재라 떠받듭니다. 그 말을 듣고 자란 가이아는 긴장과 기대감을 가지고 천사 강림을 맞이하러 갑니다. 하지만 '축제'라는 이름과 다르게 천사는 가이아의 등에 달라붙어 머릿속 기억을 해 집어 놓고, 강림절에 같이 갔던 한 사람은 천사님에게 죽임을 당하지요. 강림절 전, 돌아가신 자신의 엄마가 남긴 수상한 말들과 전혀 축제 같지 않은 광경을 마주한 가이아는 '천사님'에 대한 정체를 파해치기로 결심합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단연 미스터리로 가득 찬 이 세계의 정체를 두 명의 여자친구들이 풀어가는 흥미진진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메시지를 따라 하나씩 궁금증으로 엉킨 매듭을 풀어가다 보면 결국 진실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이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듭니다.
'가이아'라는 이름도 저에게는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였는데요, 가이아의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신들의 시작, 모든 땅의 시작을 만들어낸 대지의 여신 '가이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신의 연구흔적을 남긴채 죽음을 맞이한 인물입니다. '왜 이 아이의 이름이 다른 이름도 아닌 '가이아'일까?' 생각해 보며 읽어보면 더 스토리가 의미있게 다가오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작가의 말을 정말 빼지 말고 읽어야 합니다. 저는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 난 후 잠깐의 전율을 느꼈는데, '이게 바로 메타포, 은유의 참재미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의 재미 중 하나는 바로 '은유를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지요. 무언가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방법은 궁금증을 만들어내고, 찾았을 때 그 찾은 진실을 더 강하게 머릿속에 각인됩니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존재를 소설 속 세계에 만들어 냈는지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숨바꼭질 후에 작가와 만나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러면 내가 읽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다시 살아나 은유 속 진실을 덧입은채 진한 감명으로 다가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보시고 제가 느낀 공명과 감상을 같이 느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서평은 씨드북 객원기자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근데 씨드북 소녀 SF시리즈 '내일의 숲'... 너무 재밌어요. 진짜 재밌습니다. 한 번 잡숴보세요.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