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백업이 되나요?』오정연 지음, 씨드북
우리가 사는 현재, 반려동물과 같이 사는 가족의 수는 거의 500만 가구가 넘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얼마 없었고, 그나마 마당 있는 집에 개 한 마리가 다였는데, 요즘에는 고양이를 비롯해 고슴도치, 토끼, 파충류 등 다양한 동물들이 사람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 속에는 반려동물이 아닌 '반려로봇'과 같이 사는 문화가 존재합니다. 강아지, 고양이와 똑같은 기계 안에 인공뉴런이 작동하면서 반려인의 양육환경, 습관에 따라 성격과 행동양식이 형성되는 획기적인 발명품이라 할 수 있죠. 이 책의 주인공 하율이는 13년째 삽살견 모형 반려로봇인 '꼬리'와 함께 플라이보드를 타는 '플라잉 테일' 채널의 주인공입니다. 플라이 보드로 인연이 된 친구 재희가 담당 PD를 맡아 멋지게 플라이 보드를 타고 구조물 곳곳을 누비는 영상을 올립니다. 중3 친구 둘과 반려 로봇이 활약하는 채널은 꽤나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구독자도 많아지고 라이브를 틀면 시청자들이 열띤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지요. 그리고 인플루언서의 성공척도라 할 수 있는 기업 광고의 제의도 받게 됩니다. 바로 반려로봇 마인드 백업 시스템 광고입니다.
기계든, 생명이든 모두 유한합니다. 무한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요. 역시나 꼬리도 노견로봇이 되어 노화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상황에 대비해 반려 로봇 회사의 클라우드에 성격과 행동양식을 백업해 놓는다면, 하드웨어인 로봇 본체가 부서져도 백업한 데이터로 다시 '꼬리'를 불러올 수 있게 됩니다. 다만,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없고 작동오류나 부작용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혹시나 생길 오류로 꼬리를 잃게 되진 않을까 걱정하지만, 요즘따라 석연찮은 꼬리의 상태를 본 하율이는 마인드 백업 광고 제의를 수락하게 됩니다.
시스템 백업으로 며칠의 시간이 지난 뒤, 꼬리는 다시 하율이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꼬리가 플라이 보드 운동화를 신는 하율이의 모습에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하율이의 운동화 신는 모습만 봐도 신나게 앞장서던 꼬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마인드 백업 마친 후, 운동화를 가만히 보고 있는 지금 꼬리는 과연 진짜 꼬리가 맞을까요? 백업 과정을 거친 꼬리는 이제 이전의 진짜 꼬리가 아닌 가짜 꼬리가 되는 걸까요?
작가는 이야기 사이사이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숨겨놓곤 합니다. 같이 고민해봐야 할 거리를 책이라는 숲 속, 글귀라는 수풀 사이사이에 심어놓곤 하지요. 어떤 이야기는 마지막에 '이것이 주제야!'라고 펼쳐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야기는 인물의 성격, 이야기의 배경, 사건의 흐름 사이사이에 숨겨놓고 마지막에 도달했을 즈음 서서히 깊게 메시지를 전달하곤 하지요. 책이라는 수풀 사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느껴보고, 그곳에 내 생각도 살며시 덮어보았을 때, 저는 그 순간이 정말 책 읽기의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 생각합니다. 그래, 이게 책 읽는 맛이지.
이 책에서도 그러한 즐거움을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건의 전체적 흐름, 하율이와 꼬리의 관계, 엄마, 아빠와 하율이와의 관계, 하율이와 친구와의 관계가 서로 비슷한 결을 지니고 엮여서 생각해 볼거리를 만들어줍니다. 저는 이 책 속에서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족'은 무엇인가요?
'가족'하면 혹시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까요?
저는 가족 하면 '내밀한'이라는 형용사가 생각납니다. 내 일상이 이제 온전한 내 일상이 아닌 것이 되어 내 삶사이사이 촘촘하게 들어와 나에게 방대한 영향을 주는 존재가 가족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만나 인사하고, 같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서로의 일을 응원해 주고, 오랫동안 공유한 물건과 공간 속에서 하루 마지막 순간을 함께 마무리하는 걸 보면, 저의 일생을 사는 게 아니라 마치 누군가와 함께 주어진 일생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퀴퀴한 냄새가 오가는 화장실을 같이 쓰면서 포근한 천 냄새가 나는 이불을 같이 덮는 존재. 이렇게 나열하고 글로 정리해 보니 가족이란 참 어렵고 불편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 사랑이 오가는, '늪 위의 연꽃'과 같다 할 수 있겠습니다.
때로는 투닥거리고 엉망진창 있는 힘 다 빼서 싸우고 삐걱거리다가도, 막상 사라지면 그 자리가 시리도록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 아픔 속에서 사랑을 다시 찾아 꺼내고 그 사랑을 다시 마음속에 간직해 놓지요. 저는 이런 과정을 거치는 모든 생명들이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른다면, 다 가족이라 생각합니다.
피나 돈으로 이루어지거나 서류 몇 장으로 꼭 묶어놓지 않아도, 서로 부둥켜안고 가족이라 부르며 살아간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가족 아닐까요?
이 책을 읽고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 가족을 구성한다는 것. 그리고 엉킨 관계를 풀어내거나 그 상태 그대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연말연시인 지금,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족과 관계에 대해 같이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이 서평은 씨드북 객원기자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내일의 숲....이번에도 정말 찡하고 멋진 작품이었어요. 정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