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성격유형을 얼마나 신뢰할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적어도 유형이 16개나 된다는 것과 자가평가를 통해 판단한다는 점에서 혈액형 성격론보다는 근거가 있는 것 같다.
보통은 MBTI를 '내 성격유형'의 관점에서 파악하지만, 사실 MBTI가 더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팀 활동이나 조직생활에 활용될 때가 아닌가 싶다. 내 성격이 정의로운 유형이라든가 아니면 열정적인 유형이라든가 하면 그 자체만으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어떤 조직에 속하느냐에 따라, 동료와 상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유능한지 무능한지, 팀웍을 키워주는 인물인지 해치는 인물인지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내일학교에서는 십여 년 전부터 MBTI를 교육에 활용해왔는데, 처음부터 우리는 팀워크를 중심에 두었다. 어차피 MBTI는 우열이 없는 지표이고, 편향을 찾아내는 것이기에 더 그랬다. 이를테면 학생들을 여러 팀으로 나누어 프로젝트 수업을 할 때, 한 팀에 내향형(I)과 외향형(E), 신중형(J)과 즉흥형(P)이 골고루 섞이게 하는 식이었다. 한쪽 유형만 모여있으면 자칫 배가 산으로 갈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내일학교 시절부터 이해한 MBTI의 순기능 중 하나는, 단지 이 성격유형 검사를 하고 그 특성을 서로 이야기하기만 해도 팀 내의 갈등이 많이 줄어든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기준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왜 저래? 날 싫어하는 건가?'라고 생각하기가 쉽다.
이렇게 약간의 오해가 있는, 그러나 기본적으로는서로에 대해 우호적인 사람들이 MBTI를 하게 되면 '저 사람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런 거구나'라는 이해가 되면서 팀 내 갈등이 상당 부분 완화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개인일 때와 팀원일 때 MBTI를 바라보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 흔히 사람들은 MBTI에서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 그 알파벳의 배열에 집착하지만, 조직에서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얼마나 편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퍼센트인 것 같다. 내향형과 외향형이 51:49인 사람과 80:20인 사람 둘 다 내향형으로 나오지만, 사실 두 사람은 거의 극과 극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팀 내에서 각 성향이 어느 쪽으로 편향되었는지에 따라서, 일종의 '팀 MBTI 유형'이 나오기도 한다. 물론 리더의 성향에는 좀 더 가중치가 있고, 뉴비일 경우엔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우리는 내향형과 외향형이 비교적 고루 분포해 있어서, 거의 반반이다. 위토피아 대표인 민진하가 외향형인 반면 CTO 이현은 극 내향형이다. 정원 스타트업 '사람과초록'의 대표인 뽀(강희원)는 내향형, 부대표인 첼시(권지민)는 외향형이다.
나도 70:30 정도로 내향형인데, 내향형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쉬는 날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것, 낯선 사람들과 사귀어야 하는 환경에서 쉽게 피로를 느낀다는 점이다. 개발자인 이현은 타고난 대로 내향내향하게 살아도 적성과 재능을 살려 자아실현을 할 수 있겠지만, 위토피아 COO인 나는 필요할 때면 외향형 옷을 입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실제로 사회생활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타고난 성격을 아예 바꾸기야어렵겠지만, 상황에 따라서 다른 모습을 연출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사실 민진하와 이현은 처음에 내가 내향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동안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붙이거나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것이 주로 내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는 날 어디 놀러 나가기보다는 방에 틀어박혀 '혼자력'을 충전하는 것이나, 낯선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행사가 끝나면 바로 뻗어버리는 것을 보고 납득한 듯하다.
신중형(J)과 즉흥형(P)의 대비도 조직생활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J와 P를 구분하는 방법은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 두드러진다. J는 일단 계획을 세우고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P는 현장에서 가장 적절하게 대응하는 쪽을 선호한다. MBTI의 모든 유형이 그렇듯 이것도 어느 쪽이 낫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공무원, 군인, 회계와 같이 정해진 룰을 따라야 하는 조직에서는 J가 많은 것이 유리하고, 예술, 문화행사, 언론 등 변동사항이 많아서 현장에서 대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P가 많은 쪽이 나은 것 같다.
물론 어느 조직이나 J와 P가 둘 다 필요하고, J가 너무 강하거나 P가 너무 강한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이 조직의 약점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훈련을 해야 한다. P일수록 오히려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매번 확인하는 식이다. J들은 아예 투두리스트가 두뇌에 자체내장되어 있어서 굳이 안 만들어도 될 수 있지만, P는 그런게 없으므로 일부러 손으로 체크리스트를 써서 외장형 모듈처럼 활용화는 식이다.
우리는 스타트업이라 그런지 P가 많은 편이다. 대표도 P, 나도 P, CTO도 P다. 아직 만들어진 것보다 만들어갈 것이 많은 스타트업의 특성상 P 성향은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는 의사결정이 빠른 편이고 실행 과정에서 각자의 재량에 따라서 판단하여 움직일 때도 많다. 물론 일정 부분 이상 중요한 결정은 경영진 회의에서 결정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MBTI를 조직생활에 적용할 때에는 T(사고형)와 F(감정형)에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이것은 판단의 근거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 근거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인지의 차이라고 한다. 이것도 역시 다수결의 원리와 같아서, T라고 해서 공감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고, F라고 이성적 사고를 못하는 게 아니다. 중요한 순간, 급한 순간에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웹툰에 등장하는 것처럼 우리는 T가 우세한 조직이다. 정말 차갑고 이성적이며 기계처럼 사고하는 사람이 세상 어디엔가는 존재하겠지만 아직까지 나는 만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중요한 결정을 흐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일을 할 때 이런 성향은 꽤 도움이 되는데,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혹하기 그지없어서 누군가가 안됐다는 이유로 공감능력 쪽의 손을 들어주면,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거나,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초창기 멤버의 성향으로, 우리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는 다른 종류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고루 포진해 있어야 조직적으로 건강한 상태가 될 것 같다. 물론 MBTI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를 얼마나 존중하고 이해하는지의 여부일 것이다. 어쩌면 MBTI를 물어보고 상대의 성향을 알려고 하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존중하려는 노력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