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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an 17. 2022

인테리어는 전문가에게 맡기세요... 제발!

새 사무실을 DIY로 인테리어 하다.






웹툰 코멘터리 #  DIY로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들



1. 대표님의 흑백논리


위토피아의 민진하 대표는 매우 모던한 인테리어 취향을 가진 인물로서... 사무실 인테리어에서도 블랙 앤 화이트를 매우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원래 연두색, 갈색, 베이지색 등의 벽지였던 공간에 각각 칠할 페인트를 골라야 하는데, 민대표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화이트! 포인트 컬러는 블랙!!"이라고 외쳤다. 그래서 대표실은 흰색을 베이스로 해서 대표 책상이 있는 쪽 벽만 블랙으로 칠하기로 했다.


문제는 대표의 흑백집착증이 벽 색상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진하는 아예 창틀을 떼어서 까만 페인트를 칠하지 않나, 블랙보드 주변에 두르는 나무 몰딩에도 검은색 수성스테인을 칠하고, 콘센트와 스위치도 검은색으로 교체, 심지어 창문에 다는 암막 블라인드를 흰색으로 하기까지. 여기가 사무실인지 갤러리인지 알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러서 결국 방 모서리에 두르는 나무 몰딩은 제발 내츄럴한 나무색 그대로 두자고 설득하여 약간의 인간미를 남겨두었다. 다행히 사무실이 완성된 뒤에 식물을 배치하고 연한 하늘색 소파를 놓고 분홍색 꽃이 그려진 그림을 걸고 나니 대표실의 초현대적인 느낌이 좀 중화되고 편안한 느낌이 살아났다.




2. 여기 대표실인가 차고인가


대표실 뒷벽을 검은색으로 포인트 칼라를 주기로 했지만, 왠지 칠만 하면 너무 심심할 것 같아 우리는 레퍼런스를 찾아 헤맸다. 그러던 중 마름모꼴로 무늬를 낸 검은색 벽 사진을 발견했고 멋지다고 생각해서 이것을 본떠보기로 했다.


직접 나무를 잘라서 미리 페인트칠을 하고 폭을 완벽하게 재서 멋진 마름모무늬를 만들었다. 우리는 모두 이 비주얼에 만족했고, 사무실 오픈식 때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대표실을 공개했다.



다들 괜찮다고 하는 와중에 CTO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근데 이거 왠지... 개러지 같은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이 벽이 마치 차고나 격납고처럼 커다란 문을 고정시키기 위해 만든 뼈대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사람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무늬를 만들었느냐, 아무리 스타트업이지만 없는 차고를 굳이 만들어서 연출할 것은 없지 않느냐, 저 문 열면 뒤에서 페라리 나오느냐 등등 대표를 놀려대기 시작했고... 결국 민진하는 이렇게 외치는 것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내가 3년 안에 돈 벌어서 차고 있는 사옥을 짓고 만다!




3. 책상은 그냥 새로 사세요... 제발!


새 사무실은 어마어마하게 넓었던 만큼 그 안에 채워 넣어야 하는 가구의 양도 만만치가 않았다. 일단 대표와 나는 중고 책상을 구하러 갔다. 다행히 상태가 좋은 책상들이 꽤 있었고, 상판이 좀 낡아 보이는 것은 시트지를 붙여서 해결하기로 하고 전부 실어왔다. 개발팀 멤버들은 전부 허리가 안 좋아서 가성비가 좋은 스탠딩 데스크를 사 주었는데 문제는 대표 책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대표인데 너무 저렴한 책상을 놓으면 회사의 품격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대로 된 것을 사자니 전부 숨막히는 가격대에 포진해있었다.


고민하던 중에 내일학교 창고에 갔다가, 민 대표의 아버지인 민영주 선생님께서 십수 년 전에 쓰다가 둘 공간이 없어져서 조각조각 분해된 책상을 발견했다. 당시에 꽤 큰 돈을 주고 샀을 듯한 이 책상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는데, 스크래치가 좀 나 있었지만 고쳐서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약 1시간 뒤 우리는 이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어두컴컴한 창고에서 봤을 땐 꽤 괜찮아 보였는데 밝은 곳으로 가지고 와 보니... 상판과 몸판은 전용 나사가 없어서 조립이 안되고, 그나마 남아있는 결속 부위는 부러져 있고, 가죽 상판에는 곰팡이가 나 있었으며 스크래치가 아니라 아예 푹 파인 자국이 여러 군데 심하게 나 있었다. 가구 리페어 키트로는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 책상을 대체 어떻게 고쳐서 쓴단 말인가...


우리는 거의 울 지경이 되어 내일학교의 만능 빌더, 한별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다. 금손께서는 신비로운 능력을 발휘하여 조각난 나무판을 이리저리 깎고 다듬으시더니 책상 모양으로 재조립해주셨는데 아주 감쪽같았다. 한별샘은 상판 가죽에는 인조가죽 시트지를 붙이고, 스크래치는 사포로 갈아보고 안 되면 차량을 수리할 때 쓰는 퍼티를 사다가 메우면 된다고 조언해주셨다.


과연 그 말씀대로 하니 꽤 맨질맨질한 질감이 돌아왔다. 그다음은 페인트를 칠할 순서였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갈색 페인트나 스테인을 칠하고 싶었는데 흑백성애자 민진하 대표는 역시나 블랙!을 외쳤다. 공사를 하고 남아있는 페인트가 꽤 있었기에 뒤져보았는데, 그냥 검은색 페인트는 없고 검은 칠판페인트만 남아있었다. 과연 이걸 칠한다고 가구 꼴이 날까 심히 걱정이 되었지만 이미 책상에 들인 에너지가 너무 커서 그만 하자고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페인트를 칠했다. 그런데... 칠해놓고 보니 왜 책상에서 가죽 질감이 나는 것일까? 심지어 엄청나게 고급스러워 보이기까지!



완전 소발에 쥐 잡은 리폼이 되어버렸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칠판페인트는 100% 아크릴 소재로서... 탄성이 좋고 마르는 과정에서 약간의 요철이 생기기 때문에 가죽 소파를 보수하는 데에도 쓰이는 도료라고 한다... 본의 아니게 나는 럭셔리하게 가구 리폼을 해버린 것이다. 대표는 새로 태어난 책상을 꽤 마음에 들어했다. 방문하는 손님들도 '대체 이 책상은 뭐냐, 가죽을 씌운 거냐, 비싸 보인다'라고 다들 감탄했다. 의도치 않게 고급스러운 책상을 만들어버렸지만 책상의 스크래치를 보수하다가 내 몸과 마음에 스크래치가 너무 많이 났던 지라, 다음에는 그냥 돈 주고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4. 개발자의 색채감각


페인트를 칠할 때의 장점은 원하는 색상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페인트를 칠할 때의 단점은 내가 고른 색상이 실제로 칠해보면 상상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모니터 설정에 따라 화면으로 보는 색상과 실제 도료의 색상이 다른 문제도 있고, 손바닥만 한 샘플을 볼 때와 벽 전체에 칠했을 때의 느낌이 달라지는 문제도 있다. 공간의 크기와 채광량, 바닥재와의 조화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라진다.


2층은 개발팀 공간이었는데, 3개의 방을 각각 다른 색으로, 그러나 채도는 비슷한 회색, 청회색, 녹회색을 칠하기로 했다. 회색은 많이 쓰는 색이라 가장 표준에 가까운 silver gray라는 색을 골랐다. 그 방은 볕이 잘 드는 방이라 밝을 때면 거의 흰색으로 보여서 꽤 괜찮았다. 청회색은 dusty blue라는 색깔로, 이 역시 나름 도시적 감성의 청회색이라는 생각에 만족스러웠다. 문제는 CTO실에 칠하기로 한 녹회색인데... 모니터로 볼 때는 꽤 세련된 색깔로 보였던 그 페인트의 이름은 pastel green이었다. 이 이름을 봤을 때 뭔가 불길함을 감지했어야 했는데, 결정 피로에 찌든 우리의 두뇌 당시 좀 멍청해졌던 것 같다. 이 페인트를 칠해보니 이것은 마치... 메로나에 형광펜을 섞은 듯한 색깔이 아닌가. 유치원 벽에 칠해놓은 놀이방 색깔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정말 아니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CTO는 이 색깔을 매우 좋아했다. 본인은 파스텔 취향이라나 어쨌다나. 아무리 CTO 혼자 쓸 방이기는 하지만 2층의 CTO실 입구는 문 없이 뚫려 있어서 밖에서도 훤히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대로 뒀다가는 여기가 IT 기업인지 캔디 스토어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타협을 했다. 밖에서 안 보이는 공간에만 파스텔 그린을 남겨두고, 잘 보이는 쪽에는 twilight blue라는 진한 남색을 덮어 씌웠다. CTO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이 타협안을 수용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했다. 역시 개발자에게는 디자인을 맡기면 안 되겠다고...





글&웹툰콘티 / 김가람

그림/ 첼시(권지민)




어쩌다가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되었는지는 다음 글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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