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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Sep 08. 2021

밥을 굶었는데 왜 살이 쪘지?








우리 CTO 이현은 막내로 태어났다.

이현의 어머님은 끓이던 국에 손가락만 담갔다 빼도 미슐랭급 국이 된다는 전설의 손맛을 가진 분이다.

어머님은 막내아들을 매우 귀애하셨다.


위의 세 가지 팩트가 결합된 결과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입맛이 까다로운 편식쟁이의 탄생이었다.


내일학교 시절 이놈이 얼마나 까탈스러웠는지, 본인이 '안 먹는 것'으로 분류한 음식이 나오면 그 끼니는 그냥 굶었다. 가끔 내가 식사당번일 때 카레를 만들곤 했는데 이것은 닭뼈육수와 캐러맬라이즈드 양파, 일본산 고형카레와 인도산 맛살라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황금레시피로, 전문점 수준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음식이었으나 이현은 카레가 나오면 끝내 밥을 걸렀다. 그때마다 이현 왈, '카레는 사회악입니다'라나... 아마도 일반학교 시절 닳도록 나왔던 맛없는 급식카레에 질린 모양이다. 내일학생들이 당번일 때는 '싫으면 굶든지!'라며 넘어갔던 모양이지만... 자람도우미가 학생을 굶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나는 카레를 만들 때마다 볶음 재료를 조금 빼놓았다가 작은 냄비에 따로 짜장을 만들어서 이현을 먹이곤 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2010년 내일학생들이 미국 서부 탐방을 갔을 때 한 달 넘게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다. 네바다 사막에서 온몸의 수분과 염분을 싸그리 날려버리고 나서 남은 반찬이 미역줄거리밖에 없었는데, 그동안 맛없다고 안 먹던 미역줄거리를 반찬삼아 밥을 세 그릇 비운 뒤로는 편식이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군대에 다녀온 뒤로는 그냥 모든 음식이 맛있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편식이 사라졌다고 해서 식습관이 좋아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일단 이현은 개발자다. 모든 개발자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개발자들은 거의가 작업에 몰두하면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자는 것도 좀 귀찮아하는 족속들인 것 같다. 이현 역시 한번 개발을 시작하면 에너지드링크로 연명하다가 생라면을 스프도 없이 씹어먹거나 과자로 열량을 공급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현을 보면서 우리는 왜 구글이 사내에 호텔급의 구내식당을 운영하고 회사 안에 세탁소를 두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이건 결코 과도한 복지가 아니었다. 일단 사람이 먹고 입는 것이 제대로 되어야 일을 하는 법이다. 개발자들은 몸에 제대로 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조차 귀찮아해서 작업공간 반경 50cm 안에 양질의 음식을 놔 주어야 비로소 집어먹는 생물이었다.


모든 사람을 잘 챙겨주는 뽀(강희원)는 밖에 나가면 테이크아웃으로 뭘 사다주기도 하고, 이현이 누룽지를 좋아한다기에 굳이 솥으로 밥을 지을 때마다 나오는 누룽지를 챙겨서 '이현 전용 통'에 넣어주기도 하며, 그냥 맛있는게 생기면 따로 담아서 챙겨주었다. 나는 자람도우미 시절 짜장밥을 만드느라 이현에게 쓸 평생분의 관심을 거의 소진했기에 그냥 내가 먹을 것을 챙길 때 조금 넉넉히 쌌다가 일부를 떼어줬다. 그리고 눈빛도 쿨하고 피부도 쿨톤에 말투도 쿨내 넘치는 민진하는 사실 사람들의 마음을 귀신같이 감지하고 은근히 케어하는 츤데레라서, 밖에 나갈 때마다 이현이 좋아하는 과자를 몇 봉지 사오거나 대형마트에 가면 에너지드링크를 한박스씩 사와서 던져주곤 했다.


그 결과 이현은 인생 최고 몸무게를 경신하고 있다는... 훈훈한 스타트업 미담이다.


아, 그리고 이자식은 아직도 카레를 안 먹는다.



글&웹툰콘티 / 김가람, 그림/ 첼시(권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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