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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ul 26. 2021

스타트업 성공하려면 꼭 필요한 것

죽음의 피드백












사람을 성장시키는 게 결핍인지, 풍요인지, 역경인지, 안정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분한 의견이 있지만, '시행착오와 그 피드백을 반영한 개선'이 성장의 지름길이라는 점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 같다. 문제는 그 피드백을 수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한국에서 교육받고 자란 사람들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다른 나라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세계 각국의 실상을 알기는 어렵지만, 당근보다는 채찍으로, 절대평가보다는 상대평가로, 자발적 의지보다는 강제적 훈련을 통해 성과를 내도록 몰아세우는 것은 한국인의 종특인 듯하다.


이러한 양육 & 교육 & 훈련 방식은 어떤 영역에서는 매우 큰 성과를 발휘한다. 엘리트 체육이나 답이 있는 문제를 푸는 시험공부, 정해진 매뉴얼을 따라야 하는 일에서는 그럭저럭 맞을지도 모른다.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누가 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창의적 성취보다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영역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특정 영역에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한국적 채찍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으니, 학습과 훈련을 수행하는 주체로 하여금 '혼나지 않는 것', '나쁜 평가를 듣지 않는 것', '정량적 결과가 좋을 것'에 집착하게 한다는 것이다. 즉, 똑같은 문제를 풀어도 그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이 재미있고 스스로의 힘으로 찾아냈다는 성취감을 위해 푸는 사람과, 부모나 선생님의 잔소리가 듣기 싫고 나쁜 점수를 받아서 혼나거나 경멸당하는 게 싫어서 푸는 사람의 내적 프로세스는 전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100점짜리 학생일 수 있지만,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이다.


내일학교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우리는 사람의 가능성이 무한할 수 있고, 그 무한함을 최대한으로 펼치려면 교육은 청소년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대안학교를 시작했다. 그 성장이란 것은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될 리 없으며,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한 피드백만이 그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학생이 그 피드백을 '성장을 위한 독려'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듣는다면? 그때부터는 성장드라마가 아니라 막장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물론 입학 초기의, 두부와 같이 말랑한 멘탈을 가진 학생들을 처음부터 혹독하게 훈련시키지는 않는다. 이 웹툰에 짧게 등장한 '가혹한 피드백'의 모습은 사실 3~4년 동안 천천히 이루어진 과정이다. 우선은 신뢰를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학생들도 안다. 저 사람이 그냥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려고, 자기 기분을 풀려고 내키는 대로 쏟아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학생의 성장을 바라기 때문에 굳이 '배드 캅'의 가면을 쓰고 악역을 자처하는 것인지. 성숙한 학생은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피드백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며 자신을 '가차 없이 쳐달라'라고 요청하기도 하는데 물론 실제로 '죽음의 피드백'을 받는 그 순간에는 표정관리가 잘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주로 평가하는 입장이 되는 자람도우미(교사) 에게도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도 주기적으로 과제를 제출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서로에게 가차 없는 피드백을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한국에서 자라 전교 석차와 표준편차와 백분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말 그대로 자신의 모난 부분을 연마기로 갈아내야 하는 지옥의 열탕 같은 과정이었다. 학생들 울면 귀엽기라도 하지, 다 큰 어른들이 자신에 대한 피드백 앞에서 울먹이며 항변하는 모습은 아무리 잘 봐줘도 좀 괴로운 일이다.


이렇듯 지금 위토피아의 팀원들은 5년에서 20년에 걸친 오랜 역사 속에서 가차 없는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관계이다. 나처럼 자람도우미로 시작한 경우도 있고, 학생으로 들어와서 지금은 자람도우미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제 막 학생 딱지를 떼었거나 아직 학생인 경우도 있다.


처음 서비스 기획을 할 때에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각자 역할을 나누어 초안을 만들어왔는데, 신기하게도 그 피드백을 하는 과정에서 그다지 갈등이 없었다. 피드백의 강도가 약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서로 연령대도 다양하고 취향도 제각기 확고했기 때문에 방향성도 달랐지만 그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지는 않았다. 왜 그런 걸까 하고 신기하게 여겼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내일학교 시절 주고받았던 피드백에 워낙 단련되어서 다들 웬만한 피드백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의견에 대한 반대가 나에 대한 부정이 아니며,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좋은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암묵적 합의와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우리가 로봇은 아니므로, '이 색감은 너무 촌스러운데요'라거나 '초창기 페이스북 감성이에요' 또는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디자인이군요'같은 말을 듣는 순간에 얼굴이 잠깐 굳는 것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좀 저항하다가 결국 그 의견을 받아들여서 개선을 해보고 나서 더 나아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면 아무리 센 피드백도 '그런가? 한번 해볼까요?'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고 보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차 없는 팩트의 폭격과 성장을 위한 피드백에 단련되는 것이 성장에는 가장 유리한 것 같다.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이라도 노력하는 사람은 못 이기고, 하루를 피드백 주기로 개선되는 사람은 더 못 이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피드백'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어제까지의 나'일 것이며, 그 뒤에는 생략된 말이 있는 셈이다. '죽음의 피드백(을 통해 다시 태어나기)'.


그렇게 우리는 매일같이 서로의 알껍질을 깨 주기 위해서 가차 없는 망치질로 서로를 단련시키는 중이다.


근데... 가끔 좀 마이 아프다... 살살 쳐라 이놈들아...



글&웹툰콘티 / 김가람,  그림 / 첼시(권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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