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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Jan 09. 2022

#8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사하기?

새로운 사무실로 독립하다


저희, 쓸 수 있는 사무실을 구했어요!



어느 날 대표님이 희망찬 얼굴로 달려와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위토피아는 내일학교의 교실 한 칸을 빌려 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학교 공간이다 보니 아주 편하지는 않았다. 하나로 트여 있는 공간에 모두 함께 복작복작 모여있으면 흥부네 집처럼 화목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목적별로 공간이 분리되지 않아서 팀별로 작업하는 게 어려웠다. 웰퍼팀(영업)에서 전화업무를 보자니 개발팀이 개발에 집중을 못하고, 팀별 회의를 하자니 조용히 일하려는 사람들 눈치 보이고 물건을 보관할 장소도 마땅치 않은 등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여전히 학교 안에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손님이라도 와서 미팅을 할라치면 제대로 된 회사처럼 보이지 않고 학생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마침 학교 근처에 비는 사무실을 괜찮은 가격에 빌릴 수 있게 되었다. 면적은 60평이나 되었는데, 다락 형태의 2층을 함께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120평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사무실이었다. 시골이다 보니 부동산 가격은 정말 파격적으로 싸다. 아마도 도시에서 이 정도 되는 사무실을 구하려면 열 배는 넘는 임대료를 내야 했을 터였다.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투자를 받으면 사무실을 구하거나 아예 사옥을 지을 예정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빨리 그 시기가 온 것이다.


문제는 인테리어였다. 공간이 넓은만큼 업자에게 맡긴다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시골이라 업자들이 돈을 더 받으면 더 받았지, 도시보다 적게 받지는 않을 터였다. 아직 투자도 받지 않았고, 자본금을 태워가며 초창기를 버티고 있는 만큼 최대한 돈을 아껴야 했다. 결국 대부분의 공사를 우리가 하기로 했다. 지은 지 7년 정도 된 건물이라 크게 고칠 것은 없었고, 대부분의 할 일이 페인트칠과 문 교체, 타일 작업 정도였다. 그렇다. 처음에 생각할 땐 쉬워 보였다.


그때부터 낮에는 원래 하던 업무를 보고, 밤에는 페인트칠을 하는 나날이 시작됐다. 민진하 대표와 CTO, 민대표의 동생이자 웰퍼팀에서 영상을 만들고 있는 민진영과 내가 주 작업멤버였다. 낮에는 평소처럼 개발하고 디자인하고 거래처 미팅을 하다가 오후 5시가 되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불을 밝혔다. 계획대로라면 일주일 안에 페인트 작업을 마치고 나머지는 타일업자나 강화마루 업자에게 맡겨서 빠른 시일 내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가 않는다. 원래 계획은 페인트 작업에 전기식 스프레이 건을 쓰는 것이었다. 보통 벽에는 도배지를 바르지만 도배공은 인건비가 무지하게 비쌀 뿐만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색상을 고르는 데에 한계가 많아서 내일학교 리모델링을 할 때에는 주로 페인트칠을 했다. 나는 워낙에 목공에 재능이 없었던지라 페인트를 맡았는데, 처음엔 롤러로 하다가 양이 많다 보니 페인트건을 샀고, 그 뒤로 몇 년간 꾸준히 썼던 도구라 나에게는 익숙했다. 이틀 정도는 순조로웠다. 커버링이 한두 시간 걸릴 뿐이지, 방 하나에 10분이면 한 번 칠하는 데에는 충분했다.


방역의료진 아닙니다. 페인트칠을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2층을 다 칠하고 1층으로 내려올 때쯤 페인트건이 갑자기 퍼덕거리다가 동작을 멈췄다.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페인트가 나오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미리 준비해둔 여분의 페인트건도 작동을 하지 않았다. 업체에 연락을 해보니 일단 보내보라고 했다.


아무튼 비상이었다. 주말이 끼면 며칠간 작업을 멈춰야 했고 업체에 갔다 온다 해도 수리가 될지는 알 수 없었다. 수십만 원짜리 페인트건을 또 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단 우리가 아는 모든 분들께 도움을 청했다. 내일학교 자람도우미 선생님, 학생, 인턴들, 심지어 경영진의 부모님까지 달려오셨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출연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찾아온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사하는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도와주겠노라고 함께 팔을 걷었다. 오만 사람들이 손을 거들자 다행히 조금씩 벽이 새로운 색깔로 채워져 갔다. 


이것이_진정한_엄마찬스.jpg


엔드리스_페인팅.jpg


외국에서는 집을 한 번 지으면 10년은 늙고 멀쩡한 부부가 이혼을 한다고 했던가. 페인트 작업은 인해전술로 어떻게 진행을 했지만 업자와의 소통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벽에 타일을 붙이기로 했는데 급하게 구하다 보니 경험이 별로 없는 타일공들이 왔다.  잠시 외출하고 나갔다 왔는데 오마이갓. 가로로 붙여야 하는 타일을 세로로 붙여놨다. 심지어 엇갈려 붙이지 않고 그냥 일렬로 붙이기까지! 유광에 번쩍대는 하얀 타일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스타트업인지 목욕탕인지 알 수 없는 기분이 되어 우리 모두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계단 위에 드러누울 각오를 하고 다시 작업을 해달라고 말했다. 아직 본드가 마르지 않았으니 뜯을 수 있을 터였다. 업자가 정 거부하면 망치로 타일을 부숴서라도 재공사 의견을 관철해야 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행히도 내가 계단 위에서 난동을 피워야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타일업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새로운 타일을 위에 덧붙여주기로 했다. 다행히 내일학교 창고에 예전에 학교 작업하고 남은 타일이 있어서 그것을 얻어오기로 했고, 재료비는 우리가 대기로 했다. 붙여놓고 보니 정말로 천만다행이었던 것이 바꾼 타일이 더 세련되어 보였다. 그대로 두었다면 찜질방 올라가는 복도 같았을 곳이 이제는 무슨 갤러리나 레스토랑으로 올라가는 공간 같았다. 역시 되든 안되든 시도해보는 쪽이 나았다.


올라가면 바가 있을것 같아 진짜로 2층에 바를 만들려고 고민중.


공사의 문제는 언제나 예정한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큰 작업보다는 자잘한 마감 작업에 시간이 더 걸리며, 그냥 뭘 해도 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에 비례해 돈도 더 들어가고 우리의 인내력과 체력도 끝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하지만 또 적당히 할 수는 없는 것이, 예전에 내일학교 공사를 할 때 급하고 힘들다고 ‘나중에 하자...’라고 대충 넘어갔던 부분 때문에 몇 년간 고생했던 경험을 다들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소한 부분에서 엉성한 것들이 은근 공간의 품격을 결정할 때가 있어서 뭐든 대충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새로운 사무실을 오픈하기로 한 날짜가 점점 다가왔다. 이틀 전에도 페인트 작업을 위해 붙여놓은 커버링 테이프가 온 공간에 덕지덕지 도배되어 있고, 강화마루 위에 페인트가 얼룩덜룩 묻어 있으며, 오기로 한 가구는 배송되지 않고, 조명은 왔는데 전구는 안 오는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마지막 날은 거의 열두 시까지 작업을 했는데 그쯤 되니 우리가 공사를 하는 건지 공사가 우리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한밤중에 들어가보니 대표가 이 자세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오픈 당일 아침에는 모든 공사 도구를 정리하고 산뜻한 모습으로 행사를 할 수 있었다. 대표가 몸살로 열이 펄펄 끓는 상태에서 행사를 해야 했던 것과 참여하는 사람들의 손톱 사이에 페인트가 채 지워지지 않은 채 개업떡을 집어먹어야 했던 것, 대표 책상 리폼이 제대로 되지 않아 커튼으로 덮어놔야 했던 것, 주말이라 인터넷 설치가 되지 않아 핸드폰 태더링으로 데이터를 잡아 써야 했던 정도가 약간의 곤란한 점이었을까.




그래도 우리는 단칸방에서 벗어나 비록 월세지만 우리만의 공간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낸 기쁨에 젖어 새로운 곳에서의 출발을 자축했다.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면서 있었던, 다 하지 못한 이야기는 아래 웹툰에서 조금 더 적어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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