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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Oct 21. 2021

#7 법인 설립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건가요

투자관련 조항에서 ESG까지... 험난했던 스타트업 법인설립 과정


영업팀이 거의 매일 경북 북부를 쏘다니며 잠재 고객을 만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스타트업의 '몸'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팀이 있었다. 자영업자라면 개인사업자 등록만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우리는 스타트업이고 투자도 유치해야 했으므로 법인을 만들기로 했다. 법인은 설립시에 자본금이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안 먹고 안 입고 아껴가며 산다고 해도 어쨌든 사업을 시작하려면 조금이라도 돈이 든다. 그렇다. 우리는 시드투자 유치를 해야 했다.


사실 스타트업으로서 위토피아가 처한 상황은 상당히 럭셔리했다. 일단 사무실이 있었다. 내일학교는 원래 폐교였던 곳을 고쳐서 만든 대안학교인데, 돈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공사를 직접 했다. 천장의 텍스를 떼어내고 썩어버린 마룻장을 걷어내고 교실과 복도 사이의 벽을 '오함마'로 부숴버리고 단열이 전혀 안되는 벽은 샌드위치 판넬로 교체한 후 다시 칠을 했다. 사실 기둥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전부 다 바꿔버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내일학교가 개교한 2007년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2021년 현재 아직도 약간 덜 끝난 곳이 있을 정도로 계속 뜯어고치는 중이다.


아무튼 위토피아는 그중에서 2층의, 교실 한 칸 넓이에 해당하는 널찍한 공간을 사무실로 쓸 수 있었다. 1층에는 교실 두 칸 넓이의 운동실이 있고, 북카페도 있으며, 구내식당과 갤러리와 학교 운동장 넓이의 정원이 붙어 있었으니... 공간으로 따지면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그 장소가 수도권이 아니라 국내 최고의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경북 봉화의 시골, 하루에 버스가 네 번 다니는 '리' 단위의 행정구역이었기에 가능한 사치였다.


여기저기 다니려면 차도 필요했다. 봉화군은 서울이 두 개 들어갈 정도로 드넓은 곳이고 경북 북부는 말할 것도 없이 광활하다. 기름값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에 재작년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사신 전기차를 같이 쓰기로 했다. 하루종일 경북 전역을 돌아다녀도 몇천 원으로 끝나니 다니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그래도 자본금은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통적으로 스타트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클래식한 방법, 3F를 택했다. Family, Friends, Fools에게 우리 사업의 비전과 미션을 설명하고 투자를 요청했다. 다들 적금이니 펀드니 하는 것을 깨서 돈을 모았다.


그다음에 법인을 설립해야 하는데... 대체 법인이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다. 물론 법무사에 가면 적당히 알아서 표준정관으로 설립이야 해주지만, 우리는 스타트업이다. 처음에 너무 어리버리한 채로 정관을 만들었다가 나중에 분쟁, 소송, 폐업, 빚더미 등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스타트업 호러 스토리를 보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개발자 출신으로 스타트업 설립 실무를 대행하는 변호사에게 설립 실무 대행 의뢰를 했다.


중요한 것은 정관에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조항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핑핑 도는, 배당우선종류주식이니, 잔여재산분배우선종류주식이니, 주식매수선택권이니, 전환사채니, 신주인수권부사채니 하는 것들이 무슨 뜻이며 그것이 앞으로 우리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낱낱이 공부해야 했다.


물론 정관에 있는 문구 자체는 변호사가 보내준 정관 초안에 있는 것들을 거의 그대로 썼기 때문에 우리가 바꿀 부분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정관이라면 회사의 헌법 같은 것인데, 우리가 만드는 회사의 정관에 있는 문구가 적어도 무슨 뜻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경영진들은 거의 고시공부하는 심정으로 문구를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스터디'를 했다.


난관은 또 있었다. 법인 정관에는 앞으로 이 법인이 어떤 사업을 영위할 것인지 명시해두어야 한다. 사업자등록증에 표시되는 업종과 업태는 이 법인 정관에 규정된 사업 영역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우리가 할 사업을 대충 '이커머스 플랫폼 블라블라' 이렇게 쓸 수는 없었다. 변호사는 '한국표준산업분류'라는 778페이지짜리 무시무시한 파일을 보내주었는데, 이 문서를 검토해서 우리가 할 사업의 코드를 함께 적어야 했다. 너무 광활한 분류 (ex. 도소매업)를 쓰면 안 되고, 5자리의 분류 숫자 중 3자리 단위(ex. 전자상거래 소매 중개업)로는 구체적이어야 했다.


정관에 사업영역을 다양하게 적어두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은 전자상거래 소매 중개업, 즉 흔히 말하는 오픈마켓 형태의 이커머스 플랫폼으로 시작하지만 앞으로 피봇을 할 수도 있고,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가서 정관을 변경하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정관 변경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번거롭고 귀찮고 돈이 들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하여 사업목적을 정했다. 다 정하고 나니 거의 40개가 되어버렸고, 정말로 이걸 다 하면 말 그대로 재벌이 될 것 같았다. 심지어 우주선이나 인공위성도 만들 수 있었는데, 뭐 우리라고 제프 베조스나 일론 머스크처럼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 말이다.


투자관련 조항과 사업영역을 정하면 다 되었나 싶었는데, 어디에선가 ESG, ESG, 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왔다. 사실 이것은 대표 민진하가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동창 중 한 명이 컨설팅 회사에 다닌다기에 나눈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민진하: 컨설팅 회사 다니는구나. 너는 주로 어떤 일을 해?
동창: 나 요즘 ESG 관련 일 하느라 무지 바빠.
민진하: ESG가 뭔데?
동창: (미묘한 찰나의 침묵) ...응 그게 요즘 법이 바뀌어서, environment, social, 그런 거 있어...



민진하는 그 동창의 미묘한 침묵에서 '그것도 모르나?'라는 미세한 신호를 느꼈다고 한다. 우리는 대표도 그렇고 경영진 모두가 한 자존심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머리가 없냐! 그래서 경영진들은 그다음부터 ESG 고시공부에 돌입했다. ESG란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줄임말로,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말하는 것이었다. 기업의 활동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며, 기업이 속한 사회에도 기여하면서, 기업 내부의 지배구조에 경영진의 비도덕적 행위를 시스템적으로 감시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요소들이 반영되어 있을 경우 지속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한 듯했다. 한마디로, 우리 회사가 얼마나 착한 기업인지를 거창한 말로 잘 포장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ESG는 투자자가 투자시에 고려하는 요소이고,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기관에서도 기업에 ESG 등급을 부여하다보니 최근에는 ESG 관련조항을 아예 법인 정관 초두에 박아버리는 대기업도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런 자본주의의 첨병 같은 기업들도 정관에 UN 뺨치는 선언문을 쓰는데, 우리가 비전과 미션을 정관에 못 박아넣을 게 무엇? 그래서 그 다음에는 무슨 제헌 헌법 초안 작성하는 마음으로 다같이 밤을 새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우리가 왜 스타트업을 하는지, 이것을 통해서 어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지, 사업이 성공하여 이익이 창출되면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해서 무지막지하게 토론을 했다. 토론을 하려면 개념적으로 서로 같은 이해에 도달해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본이 뭐고, 이익은 무엇이며, 소비와 생산의 역사는 어떠하고, 노동과 가치에 대하여 들이파야 했다. 사실 초기에는 우리가 창업을 하는건지 경제학원론 수업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구성원들의 연령대와 배경, 배움의 정도도 각각 달랐기 때문에 그 '동기화'의 과정에서도 상당히 난항을 겪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선행학습'을 을 했기 때문인지, 법인 정관에 명시할 전문 초안을 작성하는 데에는 일주일 정도면 충분했다. 아무래도 큰 기업들은 컨설팅 회사에 의뢰하여 표준 ESG를 듬뿍 뿌린 정관을 만들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원래 추구하던 가치를 ESG와 조화될 수 있는 방향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다음은 위토피아의 정관 전문에 명시된 미션과 비전이다.


위토피아의 미션(Mission)

위토피아는 지구 생태계의 모든 생명과 인간이 서로 조화롭고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해, 인간의 자아실현을 돕고, 인류의 자아실현을 위한 모든 조건과 과정을 혁신한다. 이를 위해 위토피아는 교육적 혁신과 환경의 개선, 디자인과 기술, 문화와 예술의 혁신을 통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사회문화와 문명, 생태에 이바지 하는 기업이 된다.


위토피아의 비전(Vision)

위토피아는 생명과 다살림, 상생의 가치를 존중하고, 더 나은 사회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고, 자아실현을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플랫폼과 다양한 제품들,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욱 행복한 자아실현을 위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들어놓고 보니 일반 영리기업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기업의 미션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ESG 자체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기준이니만큼 어느 정도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다. 아니 그리고, 저 미션과 비전을 정말로 실현하려면 돈을 무지무지하게 많이 벌어야 하는데 영리기업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버티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위와 같은 험난한 과정을 거쳐 정관 초안을 확정한 우리들은... 마지막으로 주식회사 위토피아 영업이익의 일부를 내일학교를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 우리내일아카데미'에 기부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투자자들이 이 조항을 어떻게 볼지는 의문이었지만... 우리가 경영진 잘먹고 잘살자고 기업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결국은 돈 벌어서 원래 우리가 하려고 했던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 부분을 문서로 확실하게 명시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기업이 사회적협동조합에 기부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도 세무적으로도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정관에 명시된 것과 아닌 것은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변호사는 스타트업 정관에 이런 조항이 있는 것은 처음 본다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기부해야 한다'가 아니라 '기부할 수 있다'이니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자 법인설립 자체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완료되었다. 온라인 법인설립시스템을 이용했기 때문에 비용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다. 법무사에게 의뢰하면 주주와 이사의 주민등록초본이니, 인감증명서니, 인감도장이니 하는 것을 전부 갖다줘야 해서 번거로운데, 온라인 법인설립시스템에서는 각자가 공동인증서로 전자서명만 하니 금세 끝났다(물론 대법원 등기소 사이트는 윈도우로 접속해서 이상한 프로그램을 몇 개 깔아야했지만 한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스타트업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에서 법적 실체를 가진 정식 스타트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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