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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가람 May 27. 2023

왜 대회에 안 나오셨어요?

부산슈퍼컵 국제요트대회 참관기

‘요트대회’ 또는 ‘요트경기’라는 말을 들으면 뭐가 떠오르는가?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처음에 이런 생각을 했다.



‘요트로 경기를 한다고?’



보통 요트로 세계일주를 했다거나, 요트에서 파티를 했다거나, 집 대신 요트에서 산다거나 하는 말은 들었어도 요트로 경기를 한다니, 누가 더 빨리 세계일주를 하나 겨루기라도 하는 것인가? (그런 경기도 있다) 그렇게 막연한 상상만 했을 뿐, 요트로 어떻게 경기를 하는지 정말 하나몰랐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요트는 올림픽의 정식 종목고, 그것도 1회 아테네 올림픽 때부터 그랬다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요트로 올림픽 메달권에 진입한 적이 없어서 일반인들에게 잘 안 알려져 있을 뿐, 사실 아시안게임에서 요트는 이미 효자 종목이었다. 프로 스포츠의 영역에서도 요트는 이미 골프, F1과 더불어 끗발 깨나 날리는 종목으로, 프라다니, 롤렉스니, BOSS니 하는 대형 스폰서가 붙는 인기 스포츠였다.


네. 우리가 아는 그 프라다 맞습니다



요트 경기는 크게 근해에서 펼쳐지는 인쇼어inshore경기와, 항과 항을 오가거나 혹은 아예 대륙간을 건너며 세계일주를 하는 오프쇼어 offshore 경기로 나뉜다. 인쇼어 경기를 할 때는 보통 육지에서 조금 떨어진 수역에 나가 바람 방향에 맞추어 마크를 놓고, 출발선에서 마크까지 2바퀴를 돌아서 누가 더 먼저 들어오는지 순위를 매긴다.


바다위에 트랙이 그려져 있으면 좋겠지만


요로코롬 귀여운 마크만 동동 떠있어요


신기한 것은 이 마크의 위치가 그날그날 바람의 방향에 따라 달라지고, 경기수역의 크기도 바람의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스타트라인 RC정이라는 배와 스타트 마크 사이에 있는 ‘가상의 선’을 기준으로 하는데, 출발시간 전에 이 선을 넘으면 페널티를 받는다. 바다 위에 빨간 줄이 그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넘었는지 어떻게 알까 싶었는데, 막상 가서 보니 보이긴 보였다. 하지만 결국 판정은 심판 마음인 것이 다른 스포츠와 비슷했다.


자대고 줄 그은 거 아닙니다



부산슈퍼컵 국제요트대회는 킬보트가 출전하는 인쇼어 경기로서는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 있는 대회로, 부산슈퍼컵이 열리는 4월 말~5월 초는 세일링 하기에 바람이 딱 좋은 때일뿐더러 그 해에 가장 처음 열리는 요트경기라서 그런지 국내에서 경기를 할 수 있는 요트란 요트는 다 온다고 봐도 무방하다. 부산 수영만이 요트의 성지인 만큼 부산을 근거지로 하는 요트가 많은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물론 상금도 가장 많다.


보통 어릴 때부터 요트를 배운 선수들은 딩기 대회에 주로 나가고, 국가대표 선발전을 거쳐 아시아선수권이나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올림픽으로 이어진다. 반면에 동호인들은 딩기 대회에서도 일반부로 따로 경기를 하고, 아니면 킬보트/크루즈 요트가 출전하는 요트대회에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이런 대회에서도 딩기 선수들이 한두 명씩 크루 또는 스키퍼로 참여하는 경우가 꽤 많다.


원칙대로라면 아마추어 대회는 순수 동호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겠지만 아무래도 기량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한국의 요트층이 두텁지 않은 만큼 대회에 긴장감을 더하기 위해 허용하고 있는 듯하다. 안전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동호인들은 룰을 모르거나 바람을 못 읽어서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가 있는데, 선수가 한 명 타고 있으면 그 위험도가 확 줄어든다. 이런 경우에는 동호인들이 선수에게 소정의 개런티를 주고 모셔오는, ‘페이 크루’ 형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호인들에게 이런 대회는 모처럼 선수와 함께 배를 타면서 실전을 통해 요트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감독님이 대회에 나가겠냐고 물었던 그 당시에는 요트 경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고, 그래서 부산슈퍼컵에 도저히 출전할 자신이 없었다. 대신 울진에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요트를 배운 팀이 출전한다기에 응원 겸 참관 겸 해서 한 번 경기를 보러 가기로 했다.


그리고 경기 당일, 부산 수영만에 도착한 우리는, 예상한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지??’



우리가 영상에서 본 외국 요트 경기에서는, 대회에 출전하는 수 대의 요트 관람을 위해 모여든 수백 대의 배들이 즐비하고, 수천 명의 관중들이 까맣게 몰려들어 요트가 하나씩 출전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오곤 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육지 어딘가에 관중석이 있겠거니, 그래서 바다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거니 하고 기대하며 도착했던 것이다.


우리가 상상했던 경기장 풍경은 이랬습니다만


그런데 이럴 수가, 관중석은 고사하고 경기장에는 홍보 영상이 나오는 전광판과 텅 빈 무대 말고는 아무 것도, 아무도, 심지어 요트도 없었다! 다들 경기가 열리기 전 수역 점검을 위해 일찌감치 바다로 나갔던 것이다. 한국의 요트 대회란 경기에 출전하는 사람들 말고는 대회를 운영하는 관계자 지나가는 행인들밖에 없는, 그야말로 선수를 위한, 선수에 의한, 선수의 대회였.


요트가요...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물론 출전한 선수들의 가족이나 지인도 있고, 요트대회를 한다기에 그것을 멀리서나마 바라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점을 고려해 주최측에서 ‘관람정’이라는 것을 운영하긴 했다. 우리도 미리 대회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DM으로 관람정 탑승 신청을 했던 참이었다. 그런데 관람시간은 1시간이고, 계류장에서 경기수역까지 엔진을 켜서 가는 데만 20분이 넘게 걸리는 것이 아닌가? 왕복 4~50분을 제하면 경기를 볼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 게다가 경기수역에서는 배들끼리 치열한 경쟁이 한창이었기에, 관람정에 탄 우리는 멀찌감치서 그 광경을 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멀었냐면, 육안으로는 배의 숫자를 식별할 수 없어서 우리가 응원하는 배가 뭔지 알기어려웠을 정도다.


이것은 요트경기인가 시력검사인가


규모가 좀 더 크고 관중이 많은 경기라면 아마도 드론 같은 것으로 카메라 생중계를 하면서 캐스터가 설명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아직 그건 좀 무리였던 것 같다. 요트 경기를 제대로 려면, 요트 경기에 출전해야만 했다. 우리는 그제야 감독님이 왜 그렇게 빨리 대회 출전을 권유했는지 깨달았다. 누구에게든 처음이 있는 것인데, 이 요트 경기라는 것은 출전해보기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보는 것조차 불가능한 구조였던 것이다.




관람정을 한 번 더 타고 수영만 바닷바람만 실컷 쐬고 나서도 여전히 우리는 대체 요트경기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처럼 요트대회 공부하겠다고 부산까지 왔는데 경기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우리가 좀 안쓰러웠는지, 감독님은 경기 마지막 날 주최측에 부탁하여 우리가 RC정(Race Committee Boat)에서 경기를 참관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RC정이란 요트 경기 전체를 주관하는 배로서, 그날의 경기수역, 마크 위치, 출발시간, 경기의 중단 및 속행 여부, 페널티 여부 등을 현장에서 관찰하고 결정하는 곳이다. 요트 경기의 출발선은 RC정과 스타트 마크 사이이고, 도착 지점은 역시 그 RC정과 피니시 마크 사이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RC정에 있으면 전부 다는 아니라도 요트 경기의 중요한 부분을 관찰할 수 있다.


부산슈퍼컵 RC정(과 빨간옷을 입어 눈에 띄는 후아팀)


RC정에서 보았던 가장 다이나믹한 광경은 요트가 출발하는 모습이었다. 요트 경기에서 출발은 경기 성적의 7~80%를 좌우할 정도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앞에 가는 배가 뒤처진 배로 가는 바람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일단 처지고 나면 그것을 만회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출발 지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선수들의 기싸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20톤쯤 되는 대형 트럭 수십 대가 톨게이트에서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빵빵거리며 달려오고 있는 광경을 상상할 수 있는가? 요트 대회의 출발지점에서 일어나는 일이 정확히 바로 그런 느낌이다.


그리고 요트란, 바다 위에서 가만히 머물러 있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일단 파도와 조류로 인해 바다가 계속 움직일뿐더러, 세일을 어지간히 잘 조정하지 않으면 잔잔한 바다에서도 계속 바람을 받아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트 대회에서는 출발 5분 전에 알림 신호를 주는데, 이때부터 요트들은 RC정 주변을 뱅뱅 돌거나 출발선을 넘을락 말락하는 상태를 유지하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그리고 출발하기 1분쯤 전부터는 다들 시트를 당기고 세일을 팽팽하게 만들어 배를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 때는 배들이 서로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기 때문에 바다 위에서 온갖 고함과 괴성이 오고 가게 된다. 실제로 배가 부딪히거나 사람이 물에 빠지는 경우도 있기에 출발지점에서는 다들 엄청나게 예민해진다.


그렇게 출발을 하고서 바람이 부는 방향을 향해 마크까지 가는 것을 '풍상으로 간다'고 말한다. 풍상에서는 메인세일과 집세일 두 개의 돛을 이용해서 달리는데, 세일이 바람을 제대로 받으면 그 무게로 인해 배가 기울어지게 된다. 이것을 ‘힐heel’라고 하는데, 요트는 힐이 많이 될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힐이 되면 모든 크루들이 세일의 반대쪽으로 가서 배 가장자리에 무게를 실어 배를 플랫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 ‘하이크 아웃hike out’이. 라이프라인이 없는 작은 배의 경우 하늘을 보고 누운 자세에서 발을 선체에 걸고 상체를 전부 배 바깥으로 내밀어야 하고, 라이프라인이 있을 경우 몸을 라인에 걸친 채 내 몸이 빨래라도 된 것처럼 양손과 발을 배 밖으로 내밀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복근이 찢어져라 아픈 것은 피할 수 없다.


요트경기란 끝없는 복근운동


또는 인간 무게추 되기




풍상 마크에 도달한 배는 그때까지 왔던 방향과는 180도 반대되는 쪽으로 선회를 해야 한다. 이것을 ‘풍하로 간다’라고 한다. 풍하로 가기 위해서는 제네이커라는 이름의, 낙하산을 닮은 거대한 돛을 펼치고 집 세일은 내려서 접어어야 한다. 마크를 도는 지점에서 제네이커 펼치기+집 세일 내리기라는 어려운 동작을 연달아 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 순간에 실수도 잦고 추월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제네이커를 잘못 세팅했거나 올리다가 크루들의 손발이 안 맞으면  포어스테이forestay라는 와이어에 휘감기는 일도 많은데, 이렇게 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배를 콘트롤하기조차 어려운 상태가 될 때도 있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거리는 제네이커 트위스트


이렇게 풍상-풍하를 2번 돌고 나면 마지막에 심판정 옆의 피니시라인으로 갈 수 있다. 그 피니시라인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배가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대회에 출전하는 배가 모두 동일한 기종, 동일한 규격의 배일 경우라면 먼저 들어오는 사람이 우승자임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을 ‘원 디자인one design 경기’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킬보트로 원 디자인 경기를 열만큼 한 가지 기종이 많지가 않다. 대부분 기종도 다르고, 연식도 다르고, 세일의 크기와 기타 제원이 제각각이다. 그래서 이 경우에는 배마다 레이팅rating이라는 핸디캡을 적용해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한다.


그래서 요트 경기는 약간 맥이 빠질 때가 종종 있다. 들어오기는 가장 먼저 들어온 배라도 레이팅에 따라서는 7위를 해버리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참관했던 2022년도 부산 슈퍼컵이 딱 그랬다. 파이스트28R로 1위를 하기 위해서는 J24, J70 이라는 더 작은 배들보다 15분 먼저 들어와야 했다. 그런데 그날은 바람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15분씩 앞서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울진에서 야심차게 출전한 팀은 별 소득을 건지지 못했다.




경기가 끝나고 감독님은 RC정에 있는 우리에게 본인이 타고 있는 로 건너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험 삼아 요트를 한번 조종해 보라고 말했다. 그 배에는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를 비롯하여 실업팀에서 활동하는 엘리트 선수들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를 보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거의 여자들에다가, 머리색깔도 이상하고, 딱 봐도 요트를 잘 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소한 궁금증: 왜 선수들은 얼굴에 '선수'라고 써있는 걸까


사실 그때 나는 꽤 긴장을 했다. 조기축구회 뛰던 사람이 손흥민 앞에서 드리블을 해야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막상 민진하가 러더를 잡고, 이현은 메인 시트, 나는 집 시트, 민진영은 바우에 서서 배를 조종하자 선수들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감독님은 자랑스럽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얘네 자이빙도 해. 제네이커 펴볼까?” 그래서 우리는 제네이커를 펴서 방향을 선회하는 자이빙까지 선보였다. 선수들의 눈이 더 커졌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각자 역할별로 몇 가지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주로 시트를 당길 때 손의 모양이나 발의 위치, 타이밍 같은 것들이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도 했다. 그렇게 요트와 경기에 대한 대화를 한참 눈 후,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아 말했다.


“대체 왜 이번 대회에 안 나오셨어요?”



이 정도면 전문 선수 수준은 아니라도 동호인으로서 경기를 뛰기에 충분한 실력인데 왜 아깝게 기회를 놓쳤냐는 것이다. 물론 대회 신청은 대회가 시작하기 40일쯤 전에 마감했고, 그때 우리는 배를 마음대로 다룰 자신 없는 상태였다. 이후 40일간 더 빡세게 훈련을 해서 그사이 실력이 늘어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선수’들로부터 그런 평가를 받은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첫 대회 참관 후 자신감을 얻은 우리는, 다음에 있을 요트 대회에는 직접 선수로서 출전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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