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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착 Oct 01. 2019

뉴질랜드 신혼일기

강구구랑 최착착

"구구야. 유니폼 세탁기에 넣어. 내가 빨아 놓을게."

"아냐, 비 오는데 뭘. 내가 내일 일찍 끝나니까 와서 할게."

"왜 너가 다해 (ㅠㅠ). 너가 돈도 벌고 집안일도 다 하냐?"

"고양이 집사가 그렇지 뭐! 착착 고양이는 누워서 주말을 만끽하도록 해! 내가 못하는 거."


작년 봄 강구구랑 결혼하고 뉴질랜드로 왔다. 이 짧은 문장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곳에는 지금부터의 생생한 일상을 적어보려 한다. 그중 별것 없고 소소한 포도알 받을 만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이다. 처음으로 뭘 쓸까 하다가 강구구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강구구는 착한 사람이다. 휴일인데도 새벽부터 업무 전화를 받고 급하게 출근하면서, 착착이 힘들까 봐 집안일도 안 시키려는 사람이다. 착착이는 온종일 집에 있는데 구구는 그게 집안일을 할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나 보다.


나는 약간 게으름뱅이 같다. 그래도 스쳐 지나가듯 던졌던 구구의 말 '밥은 책임지고 해놔 줘!'를 기억하며 정말 '밥'만은 해놓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나는 여기 와서 깊은 잠을 잘 못 잔다. 원래 예민해서 잠을 잘 못 자는 시기가 있기는 한데 요즈음 또 그런 시기인가 보다. 새벽 늦게 잠들어 네다섯 시간쯤 자고 아침에 구구 출근길을 운전해주고, 돌아와 아침 먹고 다시 잠들어서 한두 시까지 잔다. 서너 시가 되면 구구가 퇴근하고 돌아오는데, 그 사이에 집안일을 할 시간은 없을 때가 더 많다. 나는 재택근무를 하므로 그때쯤 일어나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시동을 건다. 그러다 보면 구구가 왔을 땐 한창 근무 중일 때가 많고, 별수 없이 구구가 식사까지 준비할 때가 많은 것이다. 이것 참 불공평하지. 만약 구구가 저녁에 깨어 있거나 밥을 달라고 하면 내가 줄 텐데, 구구는 저녁에 잠을 자고 아무것도 달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아침형 인간이 죽어도 못 되고!


오늘은 최저기온 6도, 최고기온 11도로 요즘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나가서 장을 보고 저녁에 구구 파스타를 해주려 했는데, 머리카락이 다 마르기 전에 나가면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단 일어나서 빵을 굽고 버터와 딸기잼을 바르고 계란 프라이를 얹고 두부 샐러드를 곁들여 아침을 먹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설거지를 하려 하니 다 쓴 세제 통이 눈에 띄었다.

'저걸 빨리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았던 이유가 뭐더라?'

이내 탄 자국이 눌어붙은 스토브를 청소하려고 했던 걸 떠올렸다. 통에 남아 있는 세제에 물을 넣어 흔들어서 청소하려 했었다. 헌 수세미로 청소하려고 새 수세미까지 사서 대기시켜놓고 아직도 못했다.

'그래, 스토브를 청소하고 수세미와 세제 통을 동시에 버리는 거야!'

탄 자국이 오래되어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불리고 열을 가해도 소용없었다. 이건 분명 팔 힘이 필요한 일이었다. 구구가 와서 도와주면 좋을 텐데 생각하다가 '강구구는 나가서 돈 버느라 하루 종일 고생하고 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며 혼신을 다해 문질렀다. 어느 정도 깨끗해졌지만, 완벽주의가 발동해 한 시간째 수세미를 문지르던 중, 현관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구구야! 왜 이렇게 빨리 왔어? 도서관 들렀다 저녁에 온다고 했잖아."

"너무 힘들어서 그냥 왔어. 닭 삶으려고 사 왔는데, 그거 언제 끝나?"

"응, 얼른 마무리할게. 파스타 해주려고 했는데, 아직 장을 안 봤어. 사 오면 이따가 먹을 거야?"

"아니 오늘 진짜 추워. 카운트다운에 사람도 너무 많더라. 그냥 집에 있어!"


결국 오늘도 구구 밥을 차려주는 일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ㅠㅠ) 오늘은 밥통에 '밥'까지 없어서 밥까지 구구가 했고, 구구는 한 시간쯤 쉬다가 요리하다가 왔다 갔다 하더니 고양이를 끼고 누워있는 나를 불렀다.

"착착아 같이 먹을 거야? 착착이 이런 거 안 좋아하잖아."

"뭔데?"

"백숙!"

"나 백숙 좋아하는데."

"그럼 같이 먹자!"


먹으려고 나갔더니 구구가 '착착이 뼈 있으면 안 먹을까 봐' 내 그릇엔 뼈를 하나하나 발라서 살만 떠 놓았다. 아아. 구구는 뭘 먹고 이렇게 스윗한 사람일까? 사실 아침에 보고 못 봤으니 오랜만이라 반갑기도 하고, 착착을 생각해주는 마음에 무한 감동하여서 볼을 한번 찌르고 한번 꽉 안고 한번 쪽 뽀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구구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고 내가 조금 건들면 자꾸 화내서 몇 시간에 걸쳐 하나씩 허락받는 식으로 겨우 임무 아닌 임무를 마쳤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조금 기분이 좋으신 것 같은데 볼을 한번 찔러도 되겠습니까?"

"안된다.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구구의 의사를 존중한다. 그러나 너무 볼을 찌르고 싶은 나머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조금 뒤 트위터에서 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고 강구구가 깔깔 웃자 다시 물어보았다.

"웃기지? 그럼 볼을 한번 찔러봐도 되겠습니까?"

"오냐, 한 번만 찔러라."


힝구. 볼을 백번 찌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볼이 너무 말랑거리고 기분이 좋다. 오늘도 이렇게 강구구가 있어서 행복하구나. 마무리를 뭐라고 해야 하느냐?(강구구체) 난 정말 결혼을 잘했고 강구구는 착하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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