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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amI Apr 06. 2020

14.남편과의 24시간

재택근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날로 심해졌다.

잠잠해질 줄 알았던 일이 갈수록 커지고 다행히 회사에서 임산부 배려 차원에서 나에게 재택근무를 제안하였다. 내 업무가 업무인지라 솔직히 말해서 회사에서 성능 좋은 컴퓨터와 빠른 인터넷 그리고 편한 장비로 일하는 게 훨씬 좋다. 그래서 재택근무 보다도 주차자리를 주면 자차 출근하겠다고 하였더니 주차공간이 없으니 재택 하라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내가 하는 작업들은 용량도 커서 당장 재택을 할 수도 없었다. 그다음 날 작업해야 할 자료와 작업 파일들은 다 옮기고 우리 집은 거의 쓰지도 않는 노트북 하나만 있어서, 회사 노트북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갔다.


재택근무 첫날, 7시 40분에 일어나서 대충 세수만 하고 옷을 잠옷에서 편한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컴퓨터 세팅을 했다. 듀얼 모니터를 써야 하기에 전날 밤까지 연구하다 아이패드를 달았다! 어찌어찌 노트북과 아이패드로 듀얼 모니터를 만들고 넓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오전 근무를 하다 보면 나보다 출근이 늦은 남편은 뒤늦게 일어나서 출근을 한다. 그렇게 남편이 나가면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와도 말을 할 수 없었다. 모든 걸 메신저로 말해야 했고, 대화 나눌 일 조차 없었다. 이런 상태가 이틀이 되었을 때, 아...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다...라는 바람이 간절했다.


그런데 그날 퇴근길 반갑게도 남편도 재택근무로 변경되었다며 퇴근길에 기쁜 듯이 들어왔다.

그다음 날부터 우리 부부의 24시간 동거가 시작되었다.


연애 때는 일주일에 1-2번 정도 데이트하였고, 결혼 후에는 주말 외에는 출퇴근을 제외하면 같이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한 집에서 같이 일하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나는 거실에서 남편은 방에서, 서로 집중해서 일하다가도 내가 출출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과일을 꺼내먹어도 남편을 챙겨주게 되고 뭘 먹을지 물어보게 된다. 남편도 물 마시러 거실에 나왔다가 나랑 잠깐 이야기도 하고 서로 보지 못한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기웃기웃 살피기도 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는 점심도 뭐 먹을지 고민이었는데 둘이 있으니 배달음식도 시켜먹고, 나중에는 배달 음식비도 만만치 않아서 간단하게 점심도 해 먹었다. 간단하게 밥도 해 먹고 설거지하고 둘 다 식 후 커피 먹던 습관에 여유로운 날은 집 앞 카페 가서 테이크아웃도 해왔다.


그런데 이런 생활이 일주일... 2주일.. 3주일이 돼가니 나는 슬슬 지겹기도 하고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둘이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매주 1번 끓여마시던 보리차도 3번 정도 더 끓여야 하고, 시간이 생기면 회사 같으면 인터넷 서핑을 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집안일을 하게 된다.


눈앞에 보이니 안 할 수가 없었다. 빨래도 돌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평일에 하기 힘들었던 세탁소 볼일도 보고 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점심을 뭐해먹지가 갈수록 일이었다. 초반에는 둘이 신나서 햄버거도 시켜먹고 중국집도 시켜먹었는데, 배달음식이 늘다 보니 재활용 쓰레기도 너무 많이 나왔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그냥 뭉탱이로 버리던 쓰레기들도 음식쓰레기는 따로 버려야 하고 음식쓰레기도 냄새가 나기 시작하니 매일 버려야 했다.


그래서 간단히 밥을 해 먹기로 결정했다. 그랬더니 자연스레 평소의 역할대로 나는 밥을 하고 남편은 설거지를 하는 시스템이 되었다. 그러고 저녁이 되면 밥 하는 일은 무한반복! 처음으로 밥해먹는 게 진짜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새로운 레시피 도전이나 맛있는 거 해먹을 생각에 신나서 밥을 했는데, 밥시간이 올수록 아... 또 밥해야 하네? 아 지긋지긋하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코로나19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슬슬 둘이 붙어있으니 괜히 집안일만 내가 더 해야 한느 거 같고, 매일 잠들기 전 아.. 내일 점심은 뭐해먹지? 점심 먹고 나면 저녁은 또 뭐 먹냐? 고민하던 것도 지겹고 남편의 회사와 달리 우리 회사는 나만 재택근무 중이라 슬슬 눈치도 보였다.


회사 메신저로 대답이 조금만 늦어도 괜히 눈치 보였고, 내가 사무실 안 나가서 회사가 잘 돌아가면 내 자리가 위태한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3주가 넘고 나는 회사에 출근하겠다고 말하였다. 회사 눈치도 보이기 시작했고 딱딱한 의자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건 고역이었다. 회사에서 사무실 의자와 책상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슬슬 남편과 24시간 있는데 답답해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결정을 짓고 남편에게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한다고 말하였더니, 남편의 대답은 의외였다.


"출근하게? 난 요새 하루 종일 여보랑 같이 있으니깐 사랑이 더 커지는 거 같은데~ 출근할 거야? 정말로? 조금만 더 재택 하면 안 돼?" 라며 마치 슈렉의 고양이처럼 눈을 크게 뜨고 말하였다.


'아! 여보 미안해... 출근을 해야지 내가 숨통 트일 거 같아! 밥은 혼자 챙겨먹어!'라고... 혼자 속으로 말하였다.

이래서 우리가 결혼했나 보다.


여보 그래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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