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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댓츠올 Sep 12. 2023

오직 미륵사지 석탑을 보고 싶었다

전라북도 익산 (by 시티투어)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소식을 들은 것은 2018년 즈음이었다. 주요 뉴스들이 나온 뒤 일기예보가 나오기 전쯤 나오는 기사로 누군가는 흘려보낼 법한 소식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복원 기간을 가진 문화재이고, 일제강점기 일본이 콘크리트로 매워놓은 것을 걷어내고 보수작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한참 진행되는 복원 장면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 석탑을 보러 가고 싶다 생각했다(그때는 복원 도중 성과를 알리기 위한 임시 개방이었고 실제 개방은 시간이 조금 더 지나 2019년에 이루어진다).


사람의 바람이란 그런 것이다. 석탑이 어떤 시대적 가치를 갖고 있든, 미학적으로 얼마나 완성되어 있든, 어떤 서사를 갖고 있든 관계없이 그런 기사 하나를 보고서도 가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그 순간 열망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바람은 바람을 키운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도 같은 석탑이 똑같이 세워졌다. 나는 온갖 열망으로 가득 찬 마음의 서랍 속에 이 석탑도 함께 넣어두었는데, 바람은 계절이 안색을 바꾸고 햇볕의 깊이가 달라질 때마다 서랍을 비집고 나와 마음속에 요동쳤다.


그래도 나는 그대로 두었다. 찾아 나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석탑을 남쪽에 세워두고 몇 해를 가만가만 살았다. 이따금 희끗하게 피어오르는 열망은 금세 휘발되었다. 전라북도 익산은 경복궁이나 덕수궁처럼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도 아니었고, 경주의 불국사처럼 고향의 지척에 있는 도시도 아니었으니까. 직접 본 순간, 일본인들이 겪는다는 파리 증후군처럼 실제와는 다른 모습에 실망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조심스러움도 한몫했다. 마음속에 석탑을 하나 품고 있다는 미완성의 상태도 이상한 안정감을 주었다.


그러던 중 최근 국내의 도시 몇 곳을 다니면서 다시금 석탑이 떠올랐다.


포털에 미륵사지 석탑을 검색해 보았다. 그날 봤던 어수선한 복원 장면과는 달리 드넓은 정원이 있었고 정돈되어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 그 사진은 먼지가 쌓인 기억의 창을 말끔히 닦아내주었다. 눌러두었던 바람이 솔솔 비집고 나와 작은 돌풍을 일으켰다. 나는 그 돌풍에 발을 올렸다.


그때부터 익산여행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막연히 생각한 익산은 전라북도의 규모가 작은 도시라 교통이 불편할 것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서울에서 익산으로 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만 되었던 것이다. KTX는 승차 위치가 청량리역인지 서울역인지 용산역인지에 따라 접근성의 차이도 큰데 용산역 출발이라는 점도 반가웠다. 또 함께 가려고 고민 중이던 부여시에 가는 방법이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익산 또한 그럴 거라 어림짐작했던 것에 반해 교통이 편했다.


KTX를 타고 갔다가 와야지, 결정하고선 당장 출발하지 않고 더 고민을 이어갔다.

그곳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효율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 효율이란 얼마나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가장 충만한 여행을 즐길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 부분은 역시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내가 고려한 내용을 모두 적어보려 한다.


고려사항을 나열하기 전에 생각할 것

Q. 뚜벅이가 익산여행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A. 시티투어를 이용하면 된다. 익산은 주요 관광지들이 떨어져 있으므로 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게 가장 좋다.


그러므로 이 시티투어버스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가야 한다.


익산 시티투어

: 순환형 버스이고 주말과 공휴일에만 운행한다.

: 익산역 앞에서 출발. 택시 승차소나 버스 타는 곳 말고 길거리로 좀 더 나가야 있다. 내려서 좀 헤맨 경험이 있어서 자세한 승차위치를 표시해 두었다. 시티투어버스는 흔히 봉고차라 부르는 작은 승합차보다 조금 큰 정도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형버스보다 크기가 작다. 모르면 KTX 관광 안내소에 물어보자.


https://www.iksan.go.kr/tour/index.iksan?menuCd=DOM_000005902001002000


시티투어 타는 곳: 익산역 나와서 길거리로 나와야 된다. 모르면 관광안내소에 물어보자. 이미지 출처:네이버지도+거리뷰


이 시티투어를 타면 시간표에 따라서 아래의 코스를 순환할 수 있다.


익산역 — 원불교 총부 — 고스락 — 교도소세트장 — 미륵사지(국립익산박물관) — 왕궁리유적(백제왕궁) — 보석박물관 — 익산역


나는 위 관광지 가운데 고스락, 미륵사지, 왕궁리유적을 들르기로 했다.

교도소세트장과 고스락 두 곳을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개인적으로 아무리 세트장이라 할지라도 교도소엔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최최최종에 패스하기로 결정했고, 미륵사지와 왕궁리만 가기는 좀 아쉬운 듯하여 고스락을 추가했다.




지금 익산 관광에 대해 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쓰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왕 기록하기로 한 김에 구구절절하게 다 써보려 한다.


다시 고려사항으로 돌아와서 익산 여행을 위해 고려한 것은 다음과 같다.


1. 익산 당일치기 여행

: 아침 출발 열차를 타고, 시티투어버스를 탑승하여 관광지를 돈 후 저녁 기차를 타고 돌아온다.

장점: 버킷리스트(미륵사지 석탑 보기)를 뚝딱 해결할 수 있는 극효율의 코스.

단점: 너무 조급하다. 카페는 가겠니? 밥은 먹겠니?


2. 익산 1박 2일 관광

: 아침 출발 혹은 느긋하게 출발해서 시티투어버스를 이용 후, 저녁엔 시가지를 구경한다. 숙소로 돌아와 하룻밤 자고 난 다음 돌아온다.

장점: 스크랩해 둔 맛집과 카페를 가볼 수 있다. 미륵사지+왕궁리 외에 다른 곳을 추가로 더 볼 수 있다.

단점: 다소 지루하다. 숙소비가 든다. 집순이라 집이랑 분리불안이 있어서 1박을 크게 선호하진 않음.


3. 익산+부여 1박 2일 콤보 관광

: 익산역으로 KTX 이동 후, 시티투어를 마치고 저녁 즈음 부여로 이동한다. 익산역에서 논산역까지 기차 이동 후, 논산에서 부여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혹은 그 역순으로 진행. 숙소는 익산 혹은 부여로 정할 것.

장점: 백제의 문화를 한 번에 체험한다고? 미륵사지에 금동대향로까지?!?!!! 1석2조잖아?!

단점: 이동할 거 생각하니 벌써... 지쳐. 익산->부여 순으로 이동하는 편이 좋아 보이나 부여는 롯데리조트 외에 마땅한 숙소가 보이지 않고 다른 괜찮은 숙소는 이미 예약마감. 관광지 이동 동선이 짧은 부여는 주말 말고 평일에 여행하고 싶다. 부여를 먼저 보고 익산 1박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솔직히 두 도시를 여행할 생각을 하니 벌써 지친다.


이외에 익산-공주 혹은 익산 전주 1박 2일(KTX로 이동 가능하다는 점이 좋으나 둘 다 이미 다녀온 적 있는 도시라는 점) 등의 선택지가 있었으나 모두 반려되었다. 이런 이유로 부여는 다음을 기약하고, 익산만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결심한 뒤 KTX표를 끊었다.




익산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기 위해 용산에서 8시 20분경 출발하는 KTX를 타고 익산역에 9시 30분경에 도착했다. 역사에서 지역 관광 안내 리플릿을 챙긴 뒤 안내데스크에 문의해 시티투어를 탑승하는데 정말 거의 만차 상태라서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방 도시로 여행을 가면 꼭 그 지역의 리플릿을 챙기는 편이다. 보관하거나 수집하지는 않지만, 그 리플릿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그 도시를 여행하는 게 좋다. 익산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여러 리플릿 중에서 시티투어 안내도와 전북투어패스 안내도를 가지고 버스에 탑승했다. 살펴보니 전북투어패스는 익산을 포함한 여러 지역의 관광지에 대해 나와 있지만 내 기준 유명관광지라기보다는 그다음으로 유명한 관광지들이 기록된 느낌이라 참고하지는 않았고 시티투어안내는 출발시간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참고했다.

시티투어버스는 탑승할 때 계산하면 된다.


처음엔 고스락에 갔다. 고스락은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곳이었는데 미륵사지에 가기 전에 어딘가에 앉아서 좀 쉬고 계획을 재정비하고 싶기도 해서 일단 내렸다.



 고스락


고스락은 한국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 3만여 평의 넓은 대지에 4천여 개의 장독대 장을 품은 채 발효되고 있는 곳이다. 내려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정말 수많은 장독대들이 열과 행을 맞춰 놓여 있었고 길을 지날 때 발효되는 향기가 솔솔 풍겨왔다.

언덕으로 올라가면 장독대가 늘어진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나름 특색 있었다. 저 수많은 장독들은 누가 다 관리하는 것이며 어떻게 관리되는 것일지 내심 궁금하다. 장독대마다 넘버가 있어서 이건 어느 정도 발효가 되었겠다 체크하는 표 같은 것이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싸우다 장독대가 와장창 깨지고 장독대 주인이 저게 어떤 장인데 하며 땅을 치고 눈물을 훔치고 하는 장면이 생각나면서... 만약에 여기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정말 큰일 나겠구먼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좀 했다.


장을 담그는 곳이니까 발효 차를 시켜야 할 듯해 애플식초차를 마셔보았다. 그리고 챙겨온 관광 안내도.
고스락 전경


(+) 익산 스탬프투어 시작

시티투어 안내 책자를 보다가 2023년 익산 관광의 해를 기념하여 모바일스탬프투어를 진행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사이트로 접속해 스탬프투어를 시작했다. 관광지 4곳만 거치면 완성되는 투어라 간단했고, 원래 각 도시에 가서 지자체에서 준비한 행사에 참여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 바로 접속해서 시작했다.

아래 사이트에서 진행하고 있으니 익산에 간다면 꼭 한번 해보면 좋겠다. 상품도 보내준다.


https://iksan.dadora.kr/


이곳에서 한 시간 정도 머무르다가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교도소세트장


내리진 않았지만 다음 코스는 교도소세트장이었다.

출발할 때는 만석이었지만 이동하면서 인원이 분산되는지 다음 차량부터는 좌석이 여유로운 편이었다,




 미륵사지 석탑(국립익산박물관)

미륵사지 서탑(좌)과 동탑(우) : 우리가 익히 아는 '미륵사지 석탑'은 좌측 서탑을 말한다.


이동하고 이동하여 드디어! 미륵사지에 도착했다.

저 멀리서 석탑이 보일 때부터 몹시 설레었다.


이곳은 과거에 '미륵사'라는 절이 있었던 장소이다. 미륵사지는 '미륵사라는 절이 있었던 터'를 통칭하는 말로 미륵사지(址)라고 부른다. 아래 사진을 보면 가운데 자리가 비어 있는데 원래 목탑이 있었던 자리고 좌우에 서탑과 동탑이 있다. 반쯤 허물어져 있는 탑이 우리나라 국보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이다. 원래는 9층석탑이었는데 복원과정에서 6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오른쪽 동탑은 서탑과 달리 탑의 형태가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복원한 것으로, 실제 동탑이 저렇게 생겼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데... 일단 저렇게 복원을 해버렸다고 한다. 따라서 문화재에 속하지는 않는 것으로 안다.

원래 복원 전에는 미륵사지 터에 좌측의 서탑만 서 있던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신라의 미소'로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수막새가 아래 부분이 깨어진 형태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듯이 미륵사지 석탑 역시 허물어진 형태 그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다. 나도 이 형상 자체가 좋아서 이 석탑을 좋아한다. 그대로 온전하였어도 좋았겠지만 역사란 시간을 담은 그릇이니까 허물어진 것 역시 이 탑의 시간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고, 가운데 커다란 목탑이 소실되는 중에도 석탑은 형태가 남아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특히 이 석탑의 복원 전 사진을 보면 내 마음도 와르르 무너져버릴 정도로 많이 무너졌었다.


미륵사지에 있으면, 터가 아주 넓으니 정말 큰 절이었겠구나 싶지만 동시에 가구를 모두 비운 집의 터가 당연히 커 보이지, 하는 생각도 든다. 분명 이곳엔 절이 있고 탑이 있고 벽이 있고 문이 있었을 텐데, 그 형태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면 이 정도로 광활하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미륵사지 석탑(좌)과 익산국립박물관(우)


미륵사지 석탑


많이 보고 싶었던 탑인 만큼 주위를 돌며 마음껏 구경했다. 주변의 조경도 정말 잘 되어 있고 초록이 아름다워서 정말 이 계절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쓸쓸한 느낌이 들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냥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의 풍파를 맞아 고즈넉해진 모습이라기보다는 복원 과정을 거쳐서인지 세련된 느낌도 컸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웅장한 만큼은 생각한 대로였다. 이 위로 3층이 더 있었겠지, 아주 큰 탑이었겠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현재 익산국립박물관이 세워진 이 장소는 원래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었는데, 미륵사지 석탑을 복원하면서 다른 유물들이 더 출토되었고 2015년 7월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이곳도 도립에서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으로 바뀌었고 2019년 미륵사지 석탑 복원이 완료될 무렵 국립익산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2022년에는 옆에 어린이박물관도 개설되었다.


국립익산박물관 또한 볼거리들이 많았다. 주로 백제의 생활사에 대한 내용이 있었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교유적들, 그리고 다음에 볼 왕궁리 유적에서 발굴된 문화제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원래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 출발했듯, 미륵사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는데 작은 유물들-바둑알 같은-까지 섬세하게 정리하고 설명해 둔 점이 인상 깊었다.


또 미륵사지 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 관에 들어가면,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과, 항아리 안에 어떻게 물건들을 넣어두었는지, 백제 무왕 시기 왕후-좌평 사택적덕의 딸 사택 씨-가 이 사찰을 창건한 뜻을 새긴 사리봉영기, 그에 나눈 편지 들이 상세히 전시되어 있다. 더불어 이러한 내용 때문에 서동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이 신라 선화공주와 결혼한 것이 진실일지 아닐지 의견이 분분하다는 이야기도 정리되어 있었다.


내부에 재미있는 유적들이 꽤 많았는데, 시간이 된다면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개인적으로는 백제 시대 사람들이 사용한 소소한 물건들이 오밀조밀하게 정리된 것이 재미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이 정도까지 디테일한 생활사가 전시되어 있진 않은데, 오히려 각 지역의 박물관에 가면 중앙으로 가지 않은 작은 유물까지도 전시되어 있어 소소한 생활을 더 깊이 상상해 볼 수 있어 좋다.


국립익산박물관에서는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굿즈를 하나 샀다.

바로바로, 미륵사지석탑 마그넷. 왠지 이곳에서만 사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 왕궁리유적(백제왕궁)

왕궁리 오층석탑(국보289호)


시티투어버스는 시간을 비교적 잘 지키는 편인 것 같다.

약속된 시간이 되자 어김없이 도착하는 투어버스를 타고 다음 코스인 왕궁리유적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시작될 여행은 마치 덤 같은 것이었는데 의외로 왕궁리유적이 참 좋아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왕궁이 있었던 유적지에 남아 있는 오층석탑 하나.

주변이 워낙 넓고 유적이 발굴되었던 터만 남아 있어서 유독 이 탑이 눈에 들어온다. 넓은 평지이고 각각의 터를 표시해 두고 이곳에서 무엇이 발굴되었다 정도만 기록되어 있어서 관광을 하기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분명 번성했을 장소에 모두가 사라지고 혼자 남아 있는 기분은 새로웠다.


1500년 전 사람들은 지금을 상상할 수 없었겠지. 내가 1500년 후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왕궁리유적 반대편 평야
왕궁리 화장실 터


왕궁리유적(좌)과 백제왕궁박물관 앞 느티나무(우)


이곳에서 특히 드넓은 평지에 매료되었다. 익산을 여행하는 내내 산은 멀리 보이고 구름은 낮게 떠 있어서 시계가 탁 트이는 듯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왕궁리 유적을 오래 걸으면서 깨달았다. 이곳은 평지가 많다. 익산益山이라는 지명은 산이 멀리에 겹겹이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지어진 걸까, 산이 많지는 않은데. 대신 평지가 광활하여 나는 이곳에서 자주 지평선을 보았고 아득한 산을 보았다.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보냈고 서울 역시 산이 많은 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산이 가까운 풍경이 익숙했다. 그러나 평지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다른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평지이까 산보다는 지대가 낮을 것임이 분명한데, 왠지 하늘에 더 가까이 있는 느낌이었다.


바다에 사는 사람이 푸른 바다 수평선 너머로 해가 지거나 뜨는 것을 보듯이 평지에 사는 사람들은 지평선 너머의 그런 풍경을 보았겠지. 그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문득 전라북도라는 곳이 새롭게 느껴졌다. 새롭고 낯선 곳. 이제까지는 탐방이었다면 나는 그제야 비로소 여행자의 마음이 되었다.


백제왕궁박물관은 내부를 찍진 못했지만 굉장히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국립익산박물관도 백제왕궁박물관도 둘 다 되게 새 건물 같은 느낌이었는데, 원래 있던 자리를 리모델링한 건지 애초에 깔끔하게 유지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국립익산박물관의 전시구성이 더 좋고 왕궁리유적의 출토품도 이곳에 있어서, 국립익산박물관을 보았다면 왕궁박물관은 조금 느슨하게 보아도 괜찮을 듯... 하지만 이곳은 체험 구성이 잘되어 있는 듯해 비교하고 살펴보면 좋겠다.





왕궁리유적을 돌아다닌 뒤로는 이곳의 하늘에 완전히 매료되어 하늘만 보고 다녔다.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보석박물관을 거쳐 다시 익산역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쯤 되었다. 시내구경도 하고 좀 더 돌아보면 좋았겠으나 더운 날씨 탓에 급격히 피곤해져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8시쯤 예매해 둔 기차표를 6시 차로 조정하고 익산의 맛집 후보들 가운데 깨통닭을 먹어보기로 하고 치킨특화거리로 향했다... 가 그 근처에 있는 솜리치킨 익산본점에서 순살깨통닭 하나를 포장해 온 뒤, KTX에 몸을 실었다.


참, 그전에 커피는 한 잔 마시고 가고 싶어서 드립커피 하는 곳을 찾아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앉아 있었다. <탐탐&옹이>라는 카페였는데 사장님도 친절하고 커피도 맛있었다. 그 후 정말 마지막으로 KTX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저녁 8시 반쯤 되었다. 계획한 대로 당일치기 여행을 하고 오긴 했는데... 조금 피곤하긴 했다. 하루 묵었으면 더 느슨하게 놀았을 수도 있었겠으나, 역시 잠은 집에서 자는 게 좋고 혼자서 통닭 한 마리를 다 먹진 못했을 것 같다. 싸와서 여러 번 먹는 게 이득.


늦은 저녁 만찬은 치맥으로...



(+) 스탬프투어 선물 도착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오는 길에 스탬프투어도 완료해서 네이버 폼에 인증서를 제출했다. 담당자가 확인 후 선물을 보내준다는데 그게 뭘까 기대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좀 잊고 살았는데 얼마 전 선물이 도착했다.


바로바로 익산산 샤인머스캣!

연필이나 기념품 정도만 기대하면서 궁금해했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선물이 와서 정말 감사했다.

올해 익산 가시는 분들, 많이 도전하세요.


익산 시티투어 선물로 받았다. 맛있었음...



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오직 미륵사지 석탑을 보고 싶었다"기엔 너무나도 알찬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해 오늘을 꼭 기록에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다 읽을 사람은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익산에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럼 또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가보러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가면서 뚜벅뚜벅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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