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 짜리 제주도 보름 여행 - 다섯째 날
밤새도록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바람은 나무를 부러뜨릴 기세로 불어 닥쳤고 창문은 빗방울로 뒤덮여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호우경보가 발령되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깨지 않고 잘 잤다. 딸아이도 잘 잤다. 한 번 눈을 감으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는 우리 집안의 유구한 전통은 나를 통해 아이에게로 대물림되었다. 아내만 잠을 설쳤다.
아침 식사는 소시지와 파프리카를 곁들인 베이글이었다. 어려운 상차림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설거지가 더 귀찮을 정도였다. 그러나 제주도까지 와서도 나의 집안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건 불만이었다. 밥을 먹어야 하니 상을 차려야 하고, 상을 차렸으니 설거지를 해야 한다. 분리수거와 쓰레기는 오히려 더 늘어났고, 아이는 땀을 흘리니 매일 샤워를 시켜야 했다. 명색이 여행인데도 나의 일거리는 죄다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늘어나 있었다. 외식을 하자고 슬쩍 운을 띄워보긴 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는 윈도 그림판으로 뭔가를 그리는 데 열중하여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후천성 귀차니즘 중독증에 감염되고 만 아내는 소파에 누워서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래서 나는 점심을 차렸다. 구운 스팸과 달걀 프라이, 어린잎 샐러드와 김치였다.
매일 상을 차려내는 건 번거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예전에 학교 앞에서 자취할 때, 나는 아침마다 칠백 원짜리 빵을 먹고 점심이면 학생회관에서 그날의 메뉴를 먹은 후 저녁에는 과자를 한 봉지 뜯었다. 상을 차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설거지거리를 아예 만들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세제 사용을 줄이고 물을 절약하는 친환경 라이프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딸아이에게는 그럴 수 없어서 나는 매일매일 식단을 고민해야 했다. 똑같은 소시지를 굽더라도 어떤 날은 문어 모양으로 썰고 다른 날은 비스듬히 칼집을 넣는다. 두부를 구워도 계란을 묻히거나 물기를 많이 빼는 등 그때그때 방식을 달리해야 하고, 특히 채소는 아이가 거부하지 않도록 다양한 수단을 써야 한다. 그런 귀찮음을 무릅써야 하는 건 딱히 내가 부지런한 까닭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가 잘 먹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걸 제주도에서도 하고 있다니. 이러려면 대체 왜 제주도까지 온 겨.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가늘어지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나는 저녁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고, 그 질문에 절대 저녁밥까지 차리고 싶지는 않다는 나의 강력한 의지와 바람을 투영했다. 아내는 잠시 검색해 보더니 치킨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물론 불감청일지언정 고소원이었다.
숙소에서 삼십 분쯤 떨어진 성산에 있는 통닭집으로 향했다. 단지 치킨만 사러 가기에는 다소 번거로운 거리였다. 그래서 가는 김에 수족관에 들리기로 했다. 치킨을 사기 위해 수족관에 간다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기묘한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이가 있을 경우 수족관은 항상 정답에 가까운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비싸다는 점만 빼면.
그때껏 우리 가족을 지배하고 있던 게으름의 사슬을 드디어 떨치고 일어나 우리는 출발했다. 오전에는 폭풍우가 몰아쳤고 오후에도 날이 여전히 흐렸는지라 사람이 별로 없어서 유유자적한 관람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섣부른 예단이었다. 드넓은 주차장은 허 자 번호판을 단 렌터카들로 그득했고 매표소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도 마침 시간이 잘 맞아떨어져서 사람과 바다사자와 돌고래의 공연을 보고, 수족관이 문을 닫기 직전까지 관람하다 밖으로 나왔다.
닭집이 인기가 많은 곳이어서 사십 분 전에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해 두어야 했다. 닭강정과 똥집 튀김을 받아 든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삼십 분 동안 나는 내내 초조하고 불안했다. 행여나 치킨이 눅눅해질까 봐 두려웠던 까닭이었다. 상대론적인 시간으로 일 년 가까이가 흐른 후에야 나는 숙소에 도착했고, 셋이서 치킨에 달려들어서 열심히 먹어치웠다. 아주 맛있다고 감탄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분명 중간 이상은 가는 맛이었다. 배달이 되면 참 좋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인 둘과 꼬마 하나가 치킨 두 상자를 모두 처리하지 못했고 나는 내가 늙었음을 새삼스레 절감했다. 남자의 젊음은 1인 1닭이 불가능해지는 그때부터 종말을 맞이하는 법이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자. 덕분에 내일 아침거리가 생긴 셈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