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지심이었다.
회사를 다니는 3년 반의 시간동안
매일이 고갈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성취감이 들고, 즐거웠던 기억들도 있다.
그런데 퇴사 직전 몇 달의 기억은 정말 버티는 하루 하루였다.
바로 윗선배가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했었다.
수면제를 복용하고 회사에 비몽사몽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 모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엄마 아빠가 반대하시는 대학원에 들어갔다.
한 학기 등록금이 700만원이 넘었지만 공부가 좋았고 대학원에서 신나게 공부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들으면 알만한 회사에 들어가 '엄마 아빠가 우리 딸 여기 다녀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곳에서 일했다.
어릴때부터 엄마 아빠의 기대를 받아왔던 편이었다.
그랬던 내가 퇴사하고 싶다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내가 정말 퇴사라도 할까봐 걱정되신 나머지 듣지 않으시고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그런 엄마를 보고 아빠가 한 소리 하셨다고 한다.
"당신은 얘가 힘들다는데, 들어줘야지. 그렇게 전화를 끊으면 어떡해요."
그 다음 날 엄마가 전화와서 얘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버티던 나날들이었는데 회사에만 가면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을 하는데 뒤에 팀장님이나 본부장님이 지나가시면 등꼴이 오싹했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가끔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서둘러 사무실을 잠깐 벗어나기도 했다.
자꾸만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MBTI 검사를 하면 나는 INFJ로 내성적인 성향의 사람인데, 활발한척, 적극적인 척을 하고 회사를 다녔다.
휴.... 이게 뭐람...
'퇴사를 1년동안 준비하고, 1년 후에 퇴사해야지!' 라고 마음 먹은 3개월도 되지 않아서 나는 퇴사를 했다.
1년이 까마득하고 결국 참지 못했다.
퇴사 전에는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꿈꿨었다.
웹소설 출판사, 쉐어하우스, 전자책 출판, 취업 컨설팅, 블로그 강의 등등
다양한 걸 하고 싶었는데 결국 내가 닿은 곳은 온라인 비즈니스였고, 플랫폼에서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일부는 위탁으로 팔고, 일부는 사입을 진행해서 택배를 보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택배만 싸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퇴사 후 택배를 싸게 된 이유는 바로 내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나를 고갈시켰던 조직이라는 실체와 그 속의 사람들에게 회사를 나와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루의 택배를 많이 싸면 몸이 굉장히 고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자유롭고 즐겁다.
내 자존감을 어떻게든 깍아내리려고 하는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회사를 다녔었다.
띄어쓰기 하나, 단어 하나에도 계속해서 지적 당했다. 기안문 하나를 쓰는데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것이 나에게는 자양분이 되었다.
덕분에 정부지원사업을 위한 사업계획서를 나름 논리적으로 체계화하여 작성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이 논리가 맞아?', '네가 지금 여기 왜 앉아있는지 이유를 한번 생각해 봐' 라는 얘기를 들으며 기안을 쓰던 나에게 체화한 습관들이 발현되기 시작했다.
퇴사 후 1년 3개월.
'회사에 함께 다녔던 동료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사람이 이렇게나 바꿀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내 모습 그대로 내향적인 사람으로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하루에 20시간을 집에서 보내고 혼자 일하지만 때때로 회의하고 미팅을 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성과들을 공유한다.
누군가는 외롭지 않냐고 묻고
누군가는 택배 싸는게 힘들지 않냐고 묻고
누군가는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다.
외로울 때도, 힘들 때도 불안할 때도 있다.
아니 매일이 그렇다고 봐도 무방할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매일이 감사하고, 매일이 즐겁고, 재미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조금더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워진듯 하다.
자격지심 때문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지만,
지금은 택배를 싸는 순간에도 즐겁고 지금 하는 사업이 조금더 자리잡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다.
대기업 퇴사 후 택배를 싸는 이유는 자격자심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