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골프씨

골프공의 비밀

by 음감


중학교 체육시간, 땅에 그림 그리며 놀다가 내 등으로 날아온 농구공을 맞고 별을 봤다. 실기시험으로 배구공 토스를 하다가 삐끗해서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누가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봤다가 이마에 축구공을 맞고 그놈의 별을 또 봤다. 언제는 테니스공에, 언제는 야구공에 맞았다. 한참 유행이었던 캐치볼도 안 했다. 공은 싫고 공은 나쁜거니까. 평생 모든 구기종목은 하지도, 보지도 않았다.


골프 연습장에 가면 골프공이 단어 그대로 쌓여있다. 싫고 나쁜 공을 그리 많이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무거웠다.


연습장은 경사진 면 아래에 사람이 있고 위쪽에 스크린이 있어서 거기로 공을 보낸다. 이론상으로는 내가 친 공이 내게 다시 굴러와야 하지만 공은 종종 다른 자리로 굴러내려간다. 그렇게 쳐내다 보면 내 앞에는 공이 없고 옆 사람 자리에만 공이 수북이 쌓인다. 그럼 누군가가 말한다. “잠깐만요!”


공이 쌓여 있는 사람은 양 옆으로 자신의 공을 보낸다. 그동안은 아무도 공을 치지 않는다. 행여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연습장 간 첫날에 본 이 광경은 어쩐지 친절한 골프씨 같았다. 농구공, 배구공, 축구공 등등의 공들은 내게 예고 없이 날아왔는데(내가 다루지 못해서 그랬다는 말은 말자) 골프공은 내가 피할 시간을 정확하게 공지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구기 종목은 모두 공 하나에 적게는 둘이, 많게는 열 몇이 달려드는데 골프공은 오직 나와 골프공, 일 대 일로만 만났다. 일 대 일은 친절한 건가. 내 취향과 별개라고 생각했던 구기 종목이 사십 년을 지난 인생의 어느 지점에 친절함을 앞세워 쑥 들어왔다.


연습이 끝나고 길석님에게 전화했다. “응, 연습 열심히 하고 왔지. 공? 안 맞지. 걔도 자존심이 있는데 처음 온 사람한테 맞아주겠어? 똑딱이는 많이 했어. 고맙긴. 내가 고맙지. 어. 고마워. 끊어.”

길석님은 내가 당신의 뜻대로 골프를 배워서 고맙다고 했다. 마흔몇 살의 딸과 예순몇 살의 엄마가 서로 고마움을 전하는 짧은 통화가 친절한 골프씨와 맞닿아 있었다. 고마운데 안 친절할 수는 없으니 저절로 친절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 친절한 골프씨가 내게 계속 친절하기를. 집에 가는 버스에 오르며 기사님에게도 친절하게 인사했다. 친절이 대세인 하루였다. 일상의 대세도 친절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