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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Nov 12. 2023

작은 친구 안녕

햄스터

손바닥 반만 한 몸을 웅크리고 조용히 쌕쌕거렸다.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햄토리, 우리 집에 온 지 1년 남짓된 햄스터다. 반려견을 들이자는 아이의 일관된 요청을 일관되게 거절한 지 10년, 아이는 햄스터를 제안했다. 그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작은 얼굴에 더 작은 흑요석이 콕 박혀있는 햄토리는 너무 에너제틱해서 가끔 케이지를 빠져나와 집안 산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씩씩한 아이에게 혹이 생겼다. 동물병원은 많아도 햄스터를 봐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아이는 울며 학교에 갔고 나는 폭우를 뚫고 병원에 갔다.

악성여부를 판단하는 조직검사 15만 원, 악성일 경우 수술비 50만 원, 소동물은 마취에 취약해서 조직검사나 수술 시 사망 위험 높음… 을 듣고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진통소염 주사를 맞고 먹는 진통제를 받았다.

집에 와서 사과를 얇게 저며줬다. 냉큼 앞발로 받아먹더니 흑요석 눈으로 나를 가만히 봤다. 너 나 기억하니? 핸들링 한번 안 하다가 탈출하면 바로 잡아오기 바쁜, 나쁜 거인이잖아.

사과는 더 안 먹길래 방울토마토를 잘라줬다. 이건 또 먹네. 같은 건 질려하는 게 꼭 지 주인 닮았네.

진통제를 주느라 일주일 동안 내가 햄토리를 계속 들여다봤다. 생각보다 약도 잘 받아먹어서 그냥 물혹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늘 은신처 안에서 쉬던 애가 어젯밤은 은신처 밖에 엎드려 있었다. 달싹이는 동그랗고 폭삭한 등이 마지막 숨을 쉬고 있음을 알렸다. 나도 한참을 그 앞에 앉아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봤다. 어제 그 모습 그대로, 대신 그 까만 흑요석은 다시는 볼 수 없게 꼭 닫혀 있었다. 우리 집 작은 친구는 그렇게 조용하게 떠났다. 초겨울 햇빛이 쨍해서 눈이 시린 감사절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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