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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상 Feb 09. 2021

오션뷰

자본주의가 확실히 빼앗아간 한 가지

2018년의 여름, 혼자 제주로 향하며 제주에 있는 동안 바다만큼은 질리도록 보겠다고 다짐했고, 그래서 숙소를 고를 때 1순위 조건은 오션뷰였다.

그 고집 때문에 숙소 예약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오션뷰’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같은 시설의 방이어도 으레 몇만 원씩은 가격이 높아지기 마련이고, 그럼에도 기꺼이 그 추가금액을 감당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나서 예약 경쟁도 치열하기 때문.(그럴 때 보면 나 빼고 다 부자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 치열한 경쟁에서 맘에 쏙 드는 오션뷰의 숙소들을 쟁취해냈고, 그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적어도 마지막 장소였던 협재로 향하기 전까지는.

내 맘에 쏙 드는 오션뷰가 한 눈에 들어오던 여행 기간동안 머물렀던 숙소들




협재 해수욕장에 가기 전에 주변 동네나 구경할까 하고 산책을 나선 게 화근이었다. 눈길 닿는 곳이 전부 바다일 거라는 내 기대와는 다르게, 해수욕장 인근의 길에선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바다를 보기 힘들었다. 온갖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바다를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행 추천 코스로 '호텔 산책로에서 보이는 바다’를 보러 호텔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러볼 것을 추천할까.
호텔,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그리고 그 옆엔 다시 호텔. 한참을 ‘건물 뷰’만 바라보며 걷다가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 공터를 마주했지만, 그곳 역시 무언가 지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려지고 있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첫째로는 바다를 볼 권리도 돈 주고 사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서글펐고, 둘째로는 그게 슬프다고 생각해 본 적 없이 그 권리를 구매하기 위해 아등바등했던 내 모습이 서글펐다.

해안가를 따라 리조트가 들어서면 안 쪽에선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출처: 시사IN 이명익


옛날의 우리들은 바다를 보기 위해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삶을 상상이나 했을까. 함께 바다를 바라보다가 누군가 “자, 오늘부터 바다가 보이는 이 자리는 내 거야. 그러니까 바다를 보고 싶으면 돈 내.”라고 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뭐라고 답했는지. 분명 누군가는 버럭 화를 냈을 테고, 누군가는 ‘이제 바다를 못 보겠구나-’ 하고 조용히 낙담했을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바다가 보이는 다른 자리를 차지하고자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났을 텐데.
그리고 이런 상상을 얕게나마 배웠던 역사와 경제학 이론들과 연결시켜보면 자본주의에 대한 뭔가 멋들어지고 신랄한 통찰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역시 난 아직 거기까진 잘 모르겠고.
그저 행복하다는 말만 가득하던 여행기록에 "대가 없이 누리던 것들을 포기하게 된다는 게 좀 슬프다."를 적어두는 정도의 씁쓸함으로 남겨뒀더랬다.





그리고 그렇게 남겨둔 '잃은 것'에 대한 씁쓸함은 때때로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번지곤 한다. 이제 나는 초등학교 과학시간에 언젠간 하늘에 돔을 설치해서 날씨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배웠던 걸 떠올리면 흠칫하게 된다. 그럼 그때쯤엔 이런 홍보문구까지도 봐야 하는 걸까 싶어서.

“당신만을 위한 완벽한 스카이뷰. 별이 보이는 밤하늘과 밝은 햇살과 함께 눈 뜨는 아침을 경험해보세요!”

아, 정말이지 그런 날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참고 문헌

사진 이명익 기자·글 김연희 기자, (2020.08.11), '제주의 자연경관은 누구의 것인가?',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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