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던 동생이 뜬금없이 물었다. TV에선 ‘나 혼자 산다’의 현무 학당 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진 출처: iMBC 연예뉴스
공무원 시험도 아니고 과거시험이라니, 나도 잘은 몰랐지만, 누나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아는 대로 대답해줬다.
그때의 과거 시험은 지금의 논술 시험 같은 거여서, 실제로 있을 법한 상황을 제시하고 그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 보라고 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적어보는 거였다고. 대신에 완전히 ‘상상’하는 건 아니고, 사서삼경처럼 그 당시 필수였던 학문들의 내용에 기반해서 이를 잘 녹여서 써야 했던 거라고 알고 있다고.
타고난 이과생이자 한국사 같은 암기과목이라면 치를 떠는 내 동생은 “그럼 내 적성엔 안 맞다. 누나는 그때 태어났으면 붙었겠네.”라고 대답했다. 고맙게도 내 동생은 자기 누나가 퍽 똑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교롭게도 정치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있고, 나도 과거 시험이 책 읽기 좋아하고 글쓰기 좋아하는 내 적성에 잘 맞았을 것 같긴 하다만, 누구 동생인지 참 교육 잘 시켰단 말이지.
그런데 순간, 머쓱하게 웃으며 기분 좋은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내 입에선 뜬금없이 이런 말이 툭 튀어나왔다.
“누난 그때 태어났으면 과거 시험 응시 자격이 없지”
순간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러고선 둘이 한참을 웃었다.
“누난 공부하겠다고 하다가 혼났겠구나.”
“그렇지. 엄마 아빠는 그런 나한테 몰래 글 가르치다가 잡혀갔겠지.”
한바탕 깔깔대고 나니, 그때 그 시절엔 이런 이야기로 결코 웃을 수 없었겠구나- 싶었다.
단지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지금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참 감사한 일이구나.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마련해준 기회였구나.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그렇다면 훗날 나도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단순히 성별을 넘어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부당한 것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조금 더 당연하게 자신들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도울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그게 내 의지적으로 이루어낸 일이든, 내가 하는 일로 인해 반사적으로 얻어진 것이든 간에.
내 삶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련해준 기회들로 가득하다.
그럼 과연 나는 알지 못하는 미래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뭘 마련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