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의 봄,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만난 정년을 앞둔 나이의 히스테리컬한 담임선생님은 어린아이들의 미숙함을 사랑으로 채워주기보단 체벌로서 통제해야 할 요소 정도로 보는 분이셨다.
그날은 수학 숙제가 있었다. 숙제 검사를 하시던 선생님께선 내가 풀지 못한 몇 개의 문제들을 가리키며 “이건 뭐냐”라고 물으셨고, “그건 너무 어려워서…”라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제 멋대로 군다”며 숙제 검사를 하시던 책으로 내 뺨을 때리셨다.
아팠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대로 넘어졌던 내 시야에 들어온 장면들은 아직도 선하다. 교실 저 편에 내던져진 내 수학익힘책, 자리로 돌아가라는 선생님의 화난 목소리, 그리고 내 뒷 친구의 겁먹은 표정. 여기까지가 엄마는 몰랐던 9살 나의 이야기.
다시 2005년의 겨울,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 엄마는 학기말 학부모 상담 차 만난 선생님께 공교롭게도 ‘좋은 교사가 되는 법’에 관한 책을 선물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내게 무슨 의도로 이런 책을 선물하셨냐며, 본인이 아이들한테 나쁜 교사라고 생각해서 찔리라고 이런 책을 선물하셨냐”라는 날 선 전화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2022년, 지금 생각해봐도 참 단단히 꼬인 사람이었던 것 같다며 갸우뚱하시는 엄마께 나는 10년도 훨씬 더 지난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들은 엄마의 반응은 선생님께서 얼마나 찔리셨겠냐며 깔깔대던 나와는 사뭇 달랐다
“너는 그런 걸 왜 엄마한테 말 안 했어?”
잔뜩 화가 나서 눈물까지 그렁그렁하신 엄마를 보고 당황했다.
글쎄- 그때는 선생님들한테 맞는 건 흔한 일이었고, 나는 혼나기 싫고 칭찬받고 싶은 보통의 어린애였거든. 그 당시엔 괜찮지 않은 일인 줄 몰라서 괜찮았고, 이제는 그저 과거의 일이어서 괜찮은 일.
몇 번이고 나는 정말 괜찮다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지만 엄마에게 그 말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듯했다. 어쩌면 그날 내가 본 엄마의 속상함은 26살의 내가 괜찮은 것과는 별개로, 폭력을 당하고서도 그저 내던져진 수학책을 집어 들고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던 9살의 나를 안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이었을까.
나도 어쩌지 못하는 17년 전 나에 대한 속상함 앞에서, 내겐 더 이상 아프지 않은 흉터가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다. 살면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시간 앞에서 흐려지고 무뎌지다 결국엔 괜찮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