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네팔_03
트래킹 1일차 (2025. 1. 16)
윈드폴에서의 인연으로 뜻밖에 3박 4일 트레킹을 동행하게 된 P와 간단한 통성명만 하고 출발한다.
그녀 역시 우연한 동행에 무척이나 반가워했는데 알고 보니 P는 이미 '안나푸르나 서킷 (시작부터가 4000m 지대인 고난이도 코스)' 을 열흘 간 다녀왔다고 한다.
거기다 네팔 트레킹도 두 번 째인데다 등산 경력 이십 여 년의 소위 '선수' .
잘 걸린 건가, 잘못 걸린 건가? 곧 알게 되겠지.
그녀는 '노느니 다녀오자' 라는 마음으로 서킷에 다녀온지 얼마 안돼 '마르디히말' 코스에 나섰고 얼결에 '꼽사리' 붙게 된 나는 일반적인 4박 5일 코스를 '선수급'인 3박 4일에 다녀오기로 한다.
각자의 포터 겸 가이드를 동행해 우리 넷은 포카라에서 지프를 대절해 출발한다.
'담푸스' 에 도착, 옆 동네인 '오스트레일리안 캠프(2060m)' 에 잠시 들러 차를 마시고 이제 보이기 시작한 설산 앞에서 열정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여기서는 자중하시라. 올라갈수록 폰 카메라는 더욱 바빠질테니...)
본격적인 등반 시작, 폰타나를 거쳐 '피탐 데우랄리(2100m)' 까지 가니 오후 2시경, 1일차 일정이 끝났다.
얕은 오르막길, P의 속도에 쫓아가지 못해 폐를 끼칠까 혹시라도 뒤쳐지면 '나를 버리고 가라' 고 몇 번이고 당부했지만 웬걸? 내가 P의 속도에 맞추느라 서행을 한다. 이런! '전문가' 에게 칭찬까지 받는다.
"잘 가시네요!"
확실히 19년 전보다 덜 힘들다 느껴진다. 젊음이 깡패가 아니라 '운동' 이 깡패인 걸까?
롯지에서 저녁을 먹는데 체코 커플이 마시는 맥주가 구미를 마구마구 당긴다.
하지만 고산병 예방약까지 먹었으니 참자.
P는 아마도 내 나이를 아는 듯 하다. 윈드폴 쪽에 '퍼밋' 을 받느라 여권 사진을 보냈는데 아마 거기서 정보가 샌 듯 하다.
물론 상관 없고 그녀 역시 묻지도 않은 나이를 아웃팅하고 싱글 여부까지 아웃팅한다. 경계를 풀고 동질감을 갖자는 얘기겠지.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연륜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동족이라는 걸...'
트레킹 2일차 (2025. 1. 17)
롯지는 쾌적했다.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핫샤워가 가능했다.
지난 밤 우리는 '마지막 샤워' 를 하고 문명과 잠시 작별인사를 한다.
아직은 고도도 낮았기에 밤에 자는 데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피탐 데우랄리에서 출발해 포레스트 캠프 (2550m) 로 향한다.
영화 <아바타> 에서 본 듯한 '울창한 숲' 이 기괴하면서도 음산하게 이어진 모습이 인상적이다.
P와 나는 약간의 공통점과 다수의 극단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부딪치는 점이 없어 동행자로서 완벽하다. 이런 행운이 없다.
서로가 서로를 E라고 의심하지만 둘 다 I 이다. 서로가 보기에 '모든 게 완벽한데' 싱글이다.
이 인류 최대 미스터리이자 난제를 들고 끙끙거리다 우리는 결국 '모든 게 완벽하기에' 싱글이라고 긍정회로를 돌리기로 한다.
그런 과정에서 서로의 연애 흑역사와 리즈시절의 추억팔이가 오간다.
안 그래도 힘든데 에너지만 낭비했을 뿐... '의미 없다.'
P는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다. 나는 수학이라면 젬병이다.
P는 나더러 영어를 잘한다고 부러워한다. 자신은 언어는 꽝이라고 한다.
P는 트래킹에서 만난 외국인 여행자에게 호기심이 있지만 입을 열지는 않고 내 통역을 빌린다.
그들과 막역하게 수다를 떠는 나를 보며 P는 다시 한번 의심한다.
"I 아닌데..."
롯지에 도착해 '닭 잡아 백숙해먹는' 한국인 여행객들을 만난다.
한국인 특, '자기 자랑' 이 이어진다. 들어주고 싶지 않은 못된 심보가 발동하고 실제로 재미도 없다.
그런데 P의 리액션이 방청객급이다. 나 역시 의심한다.
"I 아닌데..."
오늘 밤부터는 샤워도 불가, 화장실도 깊은 스쿼트 자세로 봐야 하는 푸세식이다.
끓는 물을 사서 날진물통에 넣어 껴안고 잠자리에 든다.
코가 떨어져나갈 거 같아 패딩점퍼를 머리 끝까지 둘러쓰자 온기가 스며들며 스르르 잠이 온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