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네팔_04
트래킹 3일차 (2025. 1.18)
롯지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레스트캠프 (2600m) 를 출발해 또 다시 걷는다.
아직까지는 산행 경력 고급자인 P에게 크게 뒤쳐지진 않아 다행이다.
P는 불안정을 못 견뎌하는 '안정지향적' 인간이고 나는 규범과 틀을 못 견뎌하는 '불안정 자유지향적' 인간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를 흥미로워한다.
그러던 중 P는 '교사' 라는 안정적인 직업과 '미혼' 과의 연관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끔은' 외롭다는 생각도 들고 결혼이나 연애 생각도 있지만 그거 빼곤 딱히 '아쉬울 것 없이'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그런데 섣불리 누구를 만났다 이 안정감이 깨질까 두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십 몇 년 만 버티면 '연금' 이라는 축복과 은혜가 쏟아질텐데... 굳이?
만약 '엄한 놈' 이랑 결혼했다 이혼이라도 하면 연금도 재산분할에 해당하니, 그 또한 두렵다 한다.
연금이라니!!! 죽을 때까지라니!!! 프리랜서인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해 본 '황금알' 이다.
'나랑 결혼해요!'
속마음이 육성으로 터진다.
연금을 생각해서라도 오래 살고 싶은데 교사라는 직업이 '단명' 의 대표적 직업군이라 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을 한다.
"내 직업이야말로 둘째 가라면 서럽게 빨리 가는 일인데요."
그렇다. 나는 작가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다. 연금은 없을지언정...
어느 덧 로우 캠프 (2970m)와 비달단다 (3300m)를 지나 하이캠프 (3600m) 에 도착해 짐을 푼다.
세번 째 밤, 산은 더 가까워졌고 밤은 더 추워졌다.
트래킹 4일차 (2025. 1. 19)
지난 밤 가이드 '타타' 와 '서빈' 은 몇 번 씩 당부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뷰포인트 (4450m) 에 올라가 일출을 보고 내려와 아침을 먹고 하산할 거야.
새벽 4시, 잊지 마. 꼭 일어나야 해!"
'일출 같은 거 애국가 나올 때 많이 봤는데... P만 다녀오라고 할까?'
혹시 내 기척이 없으면 날 두고 다녀오라고 몇 번이나 눈치를 줬지만 P와 두 가이드는 '짤없이' 단합하여 그럴 수 없다며 밀어붙인다.
새벽 3시반, 다행히 눈이 떠져 나설 차비를 한다.
뷰포인트까지는 2시간... 해드랜턴 따위야 가져올 리 없었던 나는 달빛에 의지해 산을 오른다.
우리 말고도 일출을 보러 가는 이들과 마주치지만 낮과는 달리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벅찬 것... 그런데 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생겨버렸다.
바로 손가락이 꽁꽁 얼어 극강의 통증이 오기 시작한 것!
등산장갑을 꼈지만 해가 뜨지 않은 4000m 이상의 산에서는 방한용 장갑 없이는 견딜 수 없는 추위인 것이다.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이지만 어중간하게 와버려 돌아갈 수도 없다.
세상 살이가 늘 그렇듯, 방법이 없을 땐 '그냥 가는 거' 다.
이제는 발가락까지 아파오지만 수가 없으니 그저 걷는다.
정상에서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그 희망으로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마침내 도착! 어느 새 주위가 밝아졌고 해 뜰 무렵이 되었다.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천막 안에 피운 장작불을 보니 올림픽 금메달 딴 거 보다 더 감격이다.
설거지 따윈 개나 줘버릴 산꼭대기 천막에서 누가 먹었을 지도 모를 컵에, 물은 아직 끓지 않아 미지근한 차였지만 그저 감지덕지다.
P가 챙겨온 에너지바를 먹으니 그야말로 하늘 아래서 먹는 천상의 맛!
거기다 커피를 끊었다는 그녀가 왜 때문인지 모르게 챙겨 온 믹스커피까지??
순발력 하나는 남다른 나는 뜨거운 물을 사서 믹스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할렐루야! 나무관세음보살!
내가 이러려고 손발 꽁꽁 얼어가며 여기 올라왔... 아니지, 일출 보려고 올라왔지. 맞지.
그렇게 해가 떠오르고, 생각한 대로, 아니 생각만큼 큰 감흥 없이 그런가보다 사진 몇 장을 남기고 내려온다.
해가 뜨자 손이 시렵지 않다. 따뜻하다. 감사하다.
신이 나서 뛰어 내려간다. 아찔한 협곡을 두고 달리는 기분, 짜릿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