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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말로 다 하리, 마르디히말_03

다시 네팔_05

by 김단단

트래킹 4일차 (2025.1. 19)


일출을 보고 내려와 아침 식사를 하고 하산을 준비한다.

뷰포인트에서 신나게 달려 내려오던 나를 보고 가이드들은 지프 타는 곳까지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거라 한다.

듣기로는 목적지 '시딩' 까지 끝도 없는 죽음의 계단이 이어진다고 했는데 가이드들은 물론이고 P 역시 '별 거 아니다' 라고 안심 시킨다.

그러나... 드디어 등산 내공 20년인 P 가 남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후다닥, 날다람쥐처럼 잘도 내려가는데 나는 장딴지와 허벅지에 마비가 오듯 뻑뻑해진다.

일정 중 친해진 20대 중국 대학생들도 무릎을 잡고 우는 소리를 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적게나마 위로가 된다.

정말 해도해도 너무 하는... 가도가도 끝이 없는 '지옥의 계단' 이다.

나는 고행하는 수행자의 마음으로 겨우 한 발 한 발을 내딛어 보지만 이건 고행이 아니라 그냥 고문이다.

'뭐든 다 불테니 제발 헬기 좀 불러다오!'

이름도 '시딩', 범상치 않더니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데 마을이 보이고 당나귀가 어슬렁거린다.

저기라도 올라탈까, 진심으로 갈등하는 사이...지프 포인트가 저 멀리 보인다. 근 5시간 만이다.

자의 3할, 타의 7할이었지만 나는 '결국 해내는 사람' 이 되었고 그렇게 '속성' 마르디히말 트레킹은 무사히 끝이 났다.

멀리서만 보던 안나푸르나 산군들, 특히 마차푸차레가 바로 눈 앞에 대령된 듯 펼쳐진 모습은 이 모든 고행 혹은 고문을 감당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 외에도 압도적으로 쏟아지던 밤하늘의 별들, 오가며 만나고 헤어졌던 트래커들의 미소와 인사, 산을 오르며 오갔던 여러 생각들... 이 모든 걸 종합해 내 가슴은 남은 한 줄은

'자연의 위대함' 이라는 단순명료한 명제다.


모든 인간이 '미물' 임을, 모든 세상사, 생로병사도 '별 거 아님' 을 자연 앞에서 고백하는 귀한 시간으로 남았다.


에필로그 (2025.1.20)


P는 내일 카트만두로 돌아가 1박을 하고 귀국한다.

우리는 뒤풀이로 포카라 핫플, 와인바에서 근사한 저녁을 한다.

맛있는 음식과 부드러운 와인이 들어가니 '미물' 들의 '별 거 아닌' 수다가 깊어진다.

술도 마셨겠다, 우리는 서로를 '추앙한다.'

서로를 향한 진심 어린 칭찬은 곧 '왜 우리가 혼자여야 하는가?' 를 위한 밑밥이다.

하지만 우리가 혼자였으니까 만났지. 아니 어쩌면 혼자였으니까 그 산에 올랐지.

모든 것엔 다 이유가 있으리라... 라고 위로해 보며 완벽한 마무리를 한다.

P는 떠날 것이고 나는 머무를 것이고 우리는 또 각자 서울과 밀양, 또 그 어딘가에서 가끔씩 뷰포인트에서 나눠먹던 믹스 커피를 생각하며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할 것이다. 끝.


Fresh Elements Restaruant and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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