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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Mar 08. 2024

스승의 사자후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한때 그를 위선자라 여겼다. 60년대부터 수십 년간 한국 문단의 거두로 굴림했던 문화 권력자. 독재정권 시절, 숱한 지식인들이 고초를 당할 때도 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그저 이름난 대학의 교수로 근무하면서 남다른 글빨(?)로 시대를 풍미하는, 그런 지식인쯤으로 여겼다. 그런 탓에 그의 저서라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만 읽었을 뿐이며, 그나마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이화여대 이어령 교수다. 몇 해 전, 그의 투병 소식과 함께 대담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나왔다. 책 제목에 끌린 탓이었나?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와 책을 펼쳐보니 서문에 드러난 작가의 필력에 눈이 갔다. 며칠간 읽으면서 서서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어설픈 선입견으로 그의 진면목을 몰랐구나 싶었다. 그리고 지금 내 서재에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장서로 꽂혀있다.    

 


 생사의 경계에서 이어령 교수의 사자후를 담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떠올렸다. 루게릭병 환자 모리 교수와 제자인 미치 앨봄 간의 대화가 담고 있는 책이다. 부제는 살아 있는 이를 위한 열네 번의 수업이다. 화요일마다 달려오는 제자에게 스승은 인생의 속살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그것은 췌장암의 고통 속에서도 매주 인터뷰에 응했던 이어령 교수의 모습과도 겹친다.  

    

  지식인의 됨됨이는 언행일치에서 드러난다. 제아무리 이름난 학자요, 성직자라 하더라도 정작 죽음의 강을 건널 때면 무너진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는 췌장암의 고통 중에도 메멘토 모리.'를 줄곧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모리 교수처럼 말이다. 작가 김지수는 서문 끝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가치를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애잔한 질문에 대한 어른다운 답이다.”라고.

     

 스승”.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빈번히 나오는 단어다. 스승이란 제자의 영혼을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자리다. 물론 제자도 스승에게 아낌없는 헌신을 바쳐야 한다. 그러니 쉽게 스승이란 말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스승과 선생과 강사가 뒤범벅인 시대. 언어의 혼탁함이 진짜와 가짜를 혼동케 한다.   

   

 스승이 없는 인생은 비루하다. 작가는 스승을 가리켜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이라고 했다. 어떤 지인은 스승을 만나는 복이 인생의 으뜸이라고 했고, 수피 성자 바야지드 바스타미은 스승이 없는 자의 스승은 사탄이다라고까지 극언한다. 가끔 학생들에게 명문 대학의 기준을 묻곤 한다. 답은 다양하다. 취업, 전통, 대학 재정 등. 대답이 잠잠해지면 내가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을 말한다. 그것은 도서관의 분위기와 스승의 여부다. 굳이 하나만 택하라면 단연 스승이다. 참스승이 계신 곳이 좋은 배움터다.     

 스승과 제자는 배움으로 이어진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삼키면서도 제자들에게 영혼 불멸을 가르쳤고, 예수도 제자들의 배반까지 껴안고서 십자가에 매달렸다. 독배와 십자가, 그것은 제자에 대한 스승의 사랑이다. 인터뷰를 마친 이어령 교수는 옷이 땀에 젖고 눈은 감겨 있었다고 나와 있다. 김지수 작가는 그의 시한부 삶이 그의 입술 끝에 매달려 전력 질주하는 것 같았다.”며 경이로워했다. 배움은 그렇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배움이란 진선미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령 교수는 의식주가 리빙(living), 진선미는 라이프(life) 이라며 둘의 경계선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진선미를 아는 자만이 진정한 배움의 기쁨을 알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진선미를 아는 사람은 밥을 굶어도 웃는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배움 전도사였다.     


 이어령 교수의 지적 여정은 광활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탐구력,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고 있는다. 가령 디지로그에 대한 설명은 심플했고, 양자 물리학에 대한 이해도는 수준급이었다. 인문학자임에도 자연과학과의 연결고리를 끊임없이 찾았던 그는 통섭의 선구자요, 유연한 사고력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그의 농축된 통찰력은 청춘이었다. “우리는 빛이 되지 못한 물질의 찌꺼기. 그 몸을 가지고 사는 거라네.” 탁월한 그의 사유에 무릎이 쳐진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인터뷰의 가치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대화가 그려내는 미학이었다. 인터뷰는 단순히 묻고 답하는 것 이상의 영혼이 교감이었다. 어쩌면 문학의 영역까지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그와의 대화를 라스트 댄스라 했다. 오가는 대화 가운데 윤동주 시인의 눈이 오는 지도(地圖)를 인용하거나, 인터뷰 중간의 어색한 멈춤을 가리켜 천사가 지나가는 때라는 표현은 아름다웠다.   

  


  이어령 교수가 딸 이민아 목사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마음이 애잔해졌다. 그는 딸을 가리켜 깨물어 가장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다. 그의 딸은 이혼과 아들의 죽음, 거듭된 투병을 치르면서도 불꽃같은 영성을 증거 했다. 그는 딸에게 늘 엄격하기만 했고 사랑 표현에 서툴렀던 자신에 대하여 탄식하고 있었다.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덥고 나서, 이민아 목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도서관 목록창에 검색해 보니 그녀의 간증집 몇 권이 있었다. 곧 읽어야 할 책이다.     


 서울 평창동에는 이어령 교수의 학문 세계가 정리되어 있는 <영인문학관>이 있다. 그의 치열했던 탐구와 폭넓은 학문을 음미할 수 있는 공간이다. 20222월에 세상을 떠난 이어령 교수. 이렇게나마 그의 지성과 영성을 엿볼 수 있다니 고마운 일이다.      


 때가 되면 평창동 <영인문학관>에 가볼 작정이다. 뒤늦게나마 이어령 교수의 치열했던 지적 세계를 마음에 담고 싶다. 제자 된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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