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별이 졌다네 /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 별은 그저 별 일 뿐이야 /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 오늘도 별이 진다네 / 아름다운 나의 별 하나 / 별이 지면 하늘도 슬퍼 / 이렇게 비만 내리는 거야 / 나의 가슴속에 젖어오는 / 그대 그리움만이 / 이 밤도 저 비되어 / 나를 또 울리고 / 아름다웠던 우리 옛일을 생각해 보면 / 나의 애타는 사랑 돌아올 것 같은데…”
창밖 빗소리가 요란하다. 제주도 부근에서 숨을 고르던 장마전선이 북진을 시작한 모양이다. 덕분에 한동안 높은 습도에 시달릴 거다. 이윽고 빗방울을 흩뿌린 먹구름이 힘을 잃을 때면 태양의 열기가 지상에 쏟아질 것이다.
도심 포도(鋪道)마저 흐물거리는폭염의 절정. 그럴 때면‘도시여 안녕!’을 외치거나 엘튼 존의 <Goodbye Yellow Brick Road>를 들으면서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찾아 떠나겠지. 바야흐로 피서(避暑)의 계절. 한 달가량 바캉스를 즐긴다는 파리지앵은 아니더라도 청량한 공기와 함께 보내는 망중한은 세상 사는 맛이다.
시공마저 휴식에 들어간 바다와 계곡. 몸의 열기는 부드러운 바람이 책임을 질 것이고,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지친 영혼들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 이럴 때 시원한 노래가 곁에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니,여기 나의 여름 노래,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이 있다. 이 곡은<Summer wine>과 같은 팝송이 감당할 수 없는 우리의 감성으로 가득하다.
태양이 물러난 여름밤은 별들의 차지다. 바다는 겨울에도 나름 운치가 있고 산은 사계절 모두 빛나지만, 여름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으뜸이다. 도시의 밤은 인공 빛에 밀려 ‘별’ 볼일이 없지만, 계곡이나 해변에서 올려다본 어둠 속 별은 얼마나 찬란하던가. 마치 깊은 어둠을 밝히는 영롱한 밀러 볼이 아니던가.
중학생 시절 완도의 별밤이 그랬다. 박정희가 죽고,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했던 1980년. 나는 열대야로 뒤척이는 무더운 저녁이면 친구들을 만났다. 야밤의 고정 멤버는 상우, 재민, 경수였다. 접선 시간은 저녁 열 시 그 언저리였다. 다들 작은 가방 하나씩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냄비와 라면, 버너와 장어 낚시 도구, 렌터, 라디오가 들어 있었다.
우리의 심야 작업은 이랬다. 우선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작은 고깃배를 물색한다. 이것은 상우 몫이었다. 녀석은 노를 잘 저었을 뿐만 아니라 작은 고깃배고 곧잘 풀었고 잘 묵었다. 그렇게 적당한 배가 선정되면 정박한 줄을 풀고 작은 배를 타고서 바다로 나갔다.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렸고 일렁이는 물결에는 플랑크톤의 발광하고 있었다.
구슬을 닮았다 하여 주도(珠島)라 불리는 무인도 앞이 우리의 작업 장소였다. 상우의 노젓기가 멈추면 우리는바닷장어를 잡기 위해서 낚시 줄을 드리웠다. 릴낚시가 아닌 맨손 낚시였다. 미끼는 자연산 지렁이. 하굣길에 친구들과 미리 갯벌에서 마련해 놓았다. 밤은 깊어가는데 손은 줄의 움직임에 따라 예민해졌고, 귀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에 집중했다.
라디오 주파수는 다양했는데 심지어 북한 방송과 일본 방송까지 잡혔다. 지금도 생각난다. 스피커에서 나오던 일본 가요 <블루라이트 요코하마>와 “남조선 전두환 도당은~”으로 시작되는 거친 북의 아나운서가 목소리가. 어린 강태공들이 잡아 올린 꿈틀대는 장어와 한판을 벌일 때면 경수의 냄비에서 라면이 끓기 시작했다.
정적뿐인 밤바다를 우리의 조곤 대는 소리와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음가 채우고 있었다. 불과 작업 두 세시만에 낚아 올린 장어는 십여 마리를 헤아렸다. 그중 한두 마리는 즉석에서 속을 따고 바닷물에 씻어낸 다음 보글보글 끓고 있는 라면 속으로 투입시켰다.새벽에 먹는 장어 라면이라니... 마지막 남은 국물을 들이켜면포식의 기쁨이 묵직하게 밀려왔다. 어두운 허공의 별똥별도 부러운 듯 사선을 긋고 있었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는 그 시절의 장면을 소환시킨다. 이들의 다른 노래들도 옛 시절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여행스케치의 노래는 마음을 착하게 만든다. 공자가 시경을 가리켜사무사(思無邪)했는데, 삿됨이 없는 선율과 노랫말. 여행스케치의 곡들이 딱 그랬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가 수록된 1집에 참여한 보컬이 무려 11명인데, 1989년 서울 음반이 주최한 백마가요제 참가했던 인연들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순수한 포크 그룹이다. 인기보다 메시지 전달보다 그저 노래를 좋아했던 맑은 하모니들이었다.
여행스케치는 앨범 발표 때마다 멤버 교체가 있었다. 하지만 변치 않은 두 기둥이 있었으니 수원대 음악동아리 선후배였던 조병석과 남준봉이다. 더불어 여성 보컬 이선아와 윤사라까지 포함된 조합이야말로 여행스케치의 완전체였다. 여행스케치의 인기곡을 헤아려본다.별이 진다네(1집) / 초등학교 동창회 가던 날(3집) / 옛 친구에게(3집) /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4집) / 운명(4집) / 왠지 느낌이 좋아(8집) / 기분 좋은 상상(9집)등이 있다.
여행스케치의 좌장 조병석은 훗날 큰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당한 끝에 불운을 떨치고자 이름을 ‘루카’로 개명했다. 지금껏 든든하게 여행스케치를 지켜온 루카와 남준봉. 이제이들도 이순의 경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의 화음은 언제 들어도 착하다. 여기에 윤사라와 이선아의 소리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는 앙상블을 이룬다.
청춘의 계절로 소환하는 여행스케치의 음악은 무더운 날의 선물이다. 혹시 이번 여름에 마땅한 도피처를 아직 마련하지 못했더라도 실망하지 마시길.이들의 <별이 진다네>과 <기분 좋은 상상>을 듣다 보면 한철의 폭염도 그럭저럭 참아 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고요? 일단 들어보시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