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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호 Dec 22. 2024

그냥, 아멘

『이름 없는 순례자』, - 가톨릭 출판사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다.” 불현듯 <코헬렛>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는 하느님의 섭리가 임하는 때를 뜻한다. 고대 희랍에서는 카이로스라고 했다. 겨울의 길목에서 만났던 이름 없는 순례자』는 주님의 섭리를 묵상케 .     


 이름 없는 순례자는 십 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당시에도 내면의 울림이 큰 탓에 끊임없는 기도’, ‘예수기도’, ‘<자애록>’와 같은 단어가 뇌리에서 맴돌곤 했다. 하여, 다시 읽어 보리라. 마음에 담아두었다. 인연이 언제 닿을지 모르지만. 그저 책과 재회하게 될 카이로스의 계절을 기다렸다.

 

 얼마 전, 어느 교우님으로부터 단순 서약식 축하 선물을 받았다. 집에 가서 포장을 풀어보니 뜻밖에 이름 없는 순례자. 기쁜 마음으로 이리저리 책을 넘겨보았는데 새로운 개정판이었다. 표지 바탕에는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는 순례자의 이야기라는 부제 위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그려져 있다. 의기소침하게 걷고 있던 클래오파에게 현현하신 예수님. 어쩌면 이름 없는 순례자와의 재회는 또 다른 엠마오로 향하는 길이랴 싶었다.    


 이름 없는 순례자는 동방교회의 대표적인 영적도서다. 그런 이유로 칼 파도스의 요한, 그레고리오 팔라마스, 요사팟 등 낯선 성인명이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다. 카잔, 모스크바. 타타르, 크림반도, 키예프 등. 현재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지명도 나온다. 한때는 같은 형제였던 정교회. 같은 묵주를 사용하고(정교회는 실로 만들어진 묵주) 비슷한 제의와 전통을 느낄 수 있어서 친근했다.    

 

 문득, 아토스산의 수도원과 수도승들이 떠올려본다. 사진에서 보았던 그곳은 산에 둘러싸여 절대고독의 땅. 평생을 기도와 노동으로 보낸다는 그곳 수도승들의 삶은 애잔하다. 오직 하느님만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주님을 열망하며 한 생을 보내는 수도승들. 전쟁과 기아, 환경 파괴가 일상인 아수라 세상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음은 저들의 기도 때문이리라.    

 

 이름 없는 순례자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순례와 기도이다. 이 두 단어는 존재의 근본적인 물음과도 닿는다. 교회에서 인간의 삶을 지상의 나그네라고 한다. 이는 순례자란 의미와도 같다. 순례자든 나그네든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이란 의미다. ‘인생은 나그넷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하숙생>의 노랫말이 떠 오른다.     

 수피시인 루미는 삶이란 여인숙이라고 읊었다. , 기쁨, 슬픔, 좌절, 약간의 깨달음 등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인생이란 뜻이다. 여인숙으로 비유되는 삶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 것일까? 그것은 완덕. 곧 사랑의 여정을 깨닫는 것은 아닐까. 달리 말하면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아가는 것이니, 우리는 사랑을 배우는 영적 순례자이다.     


 사랑과 기도는 완덕의 양면이다. 또한 안개처럼 잡히지는 않는 고난의 길이다. 기도에는 묵주기도, 주님의 기도, 삼종기도, 성무일도, 묵상과 관상 등 많은 방법이 있지만 갈피를 잡기란 쉽지 않다. 이에 이름 없는 순례자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예수 기도는 기도의 나침판이 될 만하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생각을 다해서 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으로, 언제나 하느님 생각에 잠겨 기도하는 것입니다.”(23)      


 이름 없는 순례자는 예수 기도를 이렇게 일러 준다. “저는 의식적으로 제 심장을 들여다보면서 숨을 들이쉬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님하고 외치고는 숨을 그대로 가슴에 머물게 했으며, 잠시 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면서 숨을 내쉬었습니다.”(82). 잠시 책을 덮고서 따라 해 본다. 호흡이 깊어진다.    

 

 성령이 이끄는 신성한 단어를 호흡에 맞춰 반복하라는 말이다. 동양의 만트라수행과 닮아 보인다. 하지만 예수 기도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영적 분위기에만 집중하는 명상과는 구별되는 지점이다. 예수 기도는 심장으로 하는 기도였다. 잠이 든 순간에도 쉼 없이 피를 뿜어내는 심장. 그렇게 우리를 살려내고 있는 심장. 하느님도 그러하시다. 과연 주님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심장이시다.   

  


 나는 35년 전 부활절 때 세례를 받았다. 스스로 찾았던 신앙이었기에 감격은 컸다. 영세명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아리마태아 요셉 성인으로 정했다. 세례식 날, 대부님은 내게 <예수 이름으로 바치는 기도>라는 소책자를 선물로 주었는데 예수 기도를 알려주는 책이었다.      


 순례자는 예수 기도는 숨을 들이쉬고, 가슴에 머물게 하고 내뱉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라고 했다. 어느 눈 맑은 이가 하느님은 틈에 계신다고 했다. 먹고, 마시고, 일하고, 걷고, 앉는 모든 순간의 틈에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분주한 시간을 보내다가 설핏 올려다보는 푸른 하늘. 산책길에 만나는 풀꽃. 거기에 하느님이 계신다. 이렇게 잠시 호흡을 늦추고서 하느님을 의식하는 것. 이것이 끊임없는 기도의 비밀이다.      


 몇 해 전, 재속 가르멜 수도회 문을 두드렸다. 주보에서 재속회원 모집을 알리는 공지 사항을 보았는데, 그 무렵 신앙의 메마름으로 고심했던 터라 눈에 번쩍 띄었다. 카이로스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모임 첫날, 수도원 근처에서 강변의 피어나는 물안개를 바라보며 성모님께 기도를 드렸다. 드들강과 푸르른 솔숲이 포근하게 나를 껴안아 주었다. 2021년 봄, 코로나가 막바지 고비를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지상의 순례자들이다. 피조물로서 주어진 삶을 마무리하는 그날까지 기도하는 순례자가 되어 살아보련다. 책을 덮고서 아빌라 데레사 성녀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냥 아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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