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파파(viva papa)"를 외쳤던 날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있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16:19」
#1
그날 날씨가 흐렸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긴 4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알 턱이 없다. 아침 일찍 친구 호근이한테서 전화가 왔던 것만은 분명하다. 호근이의 말은 대충 이랬다. 오전 10시쯤 교황 바오로 2세가 금남로를 지나간다는 것과 교황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대답을 미적거리자, 녀석은 돈 주고도 보기 어려운 구경이라며 재촉했다. ‘가려면 혼자서 갈 것이지...’라고 중얼대며, 부스스한 얼굴로 금남로를 향해 걸어갔다.
금남로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바오로 2세라는 교황이란 얼마나 대단하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모였나 의아했다. 하긴, 그 틈에 나도 섞여 있으니 말해서 뭐하랴. 호근이는 자기 덕에 이런 보기 드문 구경을 하는 줄 알라며 으스댔다. 삼십 분 가량 지났을까? 뜻모를 함성이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있었다. 그 순간, 앞 사람 어깨 너머로 교황이 탄 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투명한 유리 안에서 손을 흔드는 교황의 뒷모습만 겨우 보았을 뿐이었다. 대략 2초쯤 될까말까? 우리 곁에 머물었던 함성도 안개 걷히듯 사라지고 있었다.
옆에서 감격해하던 아주머니께 그 외침의 정체에 대하여 물었다. 그녀는 “비바 파파”라는 소리였으며, ‘아버지 환영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냥 우리말로 ‘환영합니다’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외국말로 외치다니 생뚱맞아 보였다. 아무튼 우리는 실망했다. 교황은 겨우 2초. 그것도 뒷모습만 보여주고 사라졌다. 교황이 지나간 거리는 허망했다. 나는 옆에 있던 호근이를 흘겨보았다.
#2
몇 년이 흘렀다. 그사이 어쩌다 보니,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교회에서 찬양 예배는 체질에 맞지 않았다. 청년부 예배는 노래와 율동이 중요했다. 환희에 찬 교회 청년들의 표정과 율동을 볼 때마다 숫기 없던 나는 이곳을 떠나리라 결심했다. 그 다짐이 익어가던 어느 날, 하굣길에 집 근처 성당에 들어가 보았다. 텅 빈 성당은 어두웠지만 그냥 편안했다. 왠지 율동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곧바로 성당 사무실에다 입교 신청을 했다.
그해 봄 부활절 날 세례를 받았다. 여름이 다가올 무렵부터 본당 신부님은 교황께서 10월에 우리나라를 찾는다면서 준비를 잘하자고 미사 시간때 강조했다. 여의도 광장에서 열리는 <세계성체대회>때 미사 집전을 한다고 했다. 성당에서는 당일 새벽에 버스로 출발한다는 안내했다. 오 년 전, 2초간 등 뒤만 보았던 바오로 2세 교황을 이번에는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함께 신청한 여동생도 나도 그날을 기다렸다.
어느 새 가을이 되었고, <세계성체대회>의 날이 밝았다. 정장을 하고선 여동생과 함께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다. 설레는 마음으로 성당에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그날 새벽 공기와 여의도에 집결하던 그 많던 버스의 출렁이던 불빛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여의도 광장은 가을 햇살로 가득 찼다. 젊다는 이유로 내게 성당 깃발이 주어졌다. 그렇게 깃발을 들고 선두에 서서 배정받은 구역으로 걸었는데, 인파에 깔려 죽을 수 있다는 말을 실감 했다.
참가자들은 다들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가을 햇살을 받아내고 있었다. 행사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일어나, 선창자의 구호에 따라서 “비바 파파”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60만이 동시에 외치는 함성은 장관이었다. 바오로 2세와 사제단이 제단에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고대 로마 원로원의 입장같았다. 고대하던 교황은 볼 수 있었지만, 너무 먼 탓에 손톱보다 작게 보였다. 교황이 있음을 그저 윤곽으로 짐작할 따름이었다.
#3
한번은 뒷모습을, 또 한번은 손톱보다 작은 모습만 보았던 교황 바오로 2세가 선종했다. 후임자 베네딕도 교황도 고령을 이유로 아름답게 퇴임했다. 2013년 3월 바티칸에서는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개최되었다. 며칠 후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는 교황을 탄생을 알리는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새 교황은 ‘호세 마리오 베르골리오’ 아르헨티나 예수회 소속 추기경이었다. 신임 교황 명은 ‘프란치스코’였다.
교황으로 취임 전 어느 주교가 그에게 물었다고 한다. “호세 마리오 베르골리오...당신은 누구입니까?”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한동안 침묵을 하더니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나는 주님 앞에 죄인일 따름입니다”라고. 절대자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교황이라니, 하늘이 선한 목자를 점지해 주셨다.
#4
2018년 8월 초, 무더운 날. 순교자 시성식을 위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다고 했다. 이번만은 교황을 가까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참가 신청했다. 이번 동행인은 아내 글라라다. 성당에서는 기차를 대절해서 시성식에 참가한다고 했다. 당일 새벽 두 시에 참가자들이 모였다. 기차를 탔고, 지하철을 이용했고, 광화문으로 행진하듯 걸었다. 행사의 주 무대는 광화문 광장이었다. 배정된 우리 구역은 행사장과는 꽤나 먼 서울시청 광장이었다.
서울광장에서 교황을 기다리는데 졸음이 밀려왔다. 세종로에는 취재 차량이 가득했고, 허공에는 헬기 소리가 요란했다. 광화문 광장에 있던 세월호 단식 현장에도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교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번쩍이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빛과 함께 교황이 나타났다. 다들 일어나 “비바 파파”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개조한 소울 자가용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교황을 태운 차량은 광화문을 서서히 돌고 있었다. 수녀님들이 사춘기 여고생들처럼 환호하며 차량 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비록 시청 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통했지만 말이다. 뒷모습과 손톱 크기 정도로 볼 때와는 비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대형 화면 속 교황을 태운 차량이 어디선가 멈추었다. 세월호 단식 천막 앞이었다. 차에서 내린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식 중이던 세월호 아버지의 손을 잡더니 뜨겁게 포옹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와!”하는 소리와 “비바 파파”라는 함성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순교자 시성식을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4박 5일 동안의 교황 방한을 두고 8월의 크리스마스라 했다. 그동안 교황을 보러 갈 때마다 함께했던 인생의 벗들이 떠올려본다. 오래전부터 몸이 아픈 호근이와 서울의 무서운 아파트 값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동생, 갱년기의 강을 버겁게 건너고 있는 아내 글라라. 교황님, 주님께 이들을 기억해달라고 기도해 주십시오. 부탁 좀 드릴게요. 고마워요 “비바 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