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9년 차.
어쩌다 보니 전업주부가 되었다. 주부가 되려고 한 건 아닌데, 그렇게 되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의 역할에 집중하며 살았지만 아이가 크니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시간도 생기고 있다. 난 나만의 시간엔 글을 읽거나 글을 써본다. 그 시간은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내가 되는 시간이다. 엄마인 것도 아내인 것도 물론 좋지만,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자꾸 지워져 버리는 것 같은 나를 글로 다시 새긴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미니멀라이프도 나를 나로 만들어준다. 특별할 것 없는 살림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생활 방식은 나를 이만큼 사랑하고 내 공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결혼 전 자취하던 시절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가구를 옮기며 변화를 추구했던 나는 여전히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다. 결혼 전,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했던 그 시절처럼 지금도 자주 가구를 옮기고 내게 필요한 물건만 남기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미니멀하게 살아왔기에 미니멀리스트라 자부할 수 있었지만, 엄마가 되고나서는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특히 육아용품들에 관해서는 그랬다. 처음 육아를 하며 어떤 게 좋은지 몰라서 정보의 홍수 속에 허덕이다가 정신 차려보면 수많은 육아용품들로 둘러싸인 집을 마주했다. 남들에게 좋으면 나에게도 좋을 거야 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구매한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주 손이 가지 않았던 물건도 얼마나 많았는지! 심지어 사용도 못하고 새것 그대로 비워진 물건도 있었다. 내 물건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냉철한 결정을 잘해왔는데, 아이 물건들은 그게 어려웠다. 내 아이가 쓰는 거니까 이왕이면 좋은 걸로.. 혹은 육아를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쉽게 물건을 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점점 내 아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고 내 양육방식, 아이의 성격, 행동방식에 따라 우리에게 맞는 물건만 들이고 시기가 지난 물건은 과감하게 비우게 되면서 나는 다시 예전의 내 모습을 찾아가게 되었다. 나는 나의 취향과 필요는 알았지만, 내 아이는 처음이기에 잘 몰라서 겪었던 혼란이었다.
스스로를 잘 알게 되면 필요한 물건이 좀 더 명확해진다.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의 구분이 크게 어렵지 않다.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서 결정이 더 수월하다. 인생은 결국 나 스스로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나도 지금의 나는 계속 처음 마주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계속 알아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좀 더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을 찾게 되고 그런 것들을 계속 찾다 보면 그게 취향이 되는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도 같은 맥락이다. 내 취향이 녹아들어 간 나만의 일상을 담아내는 미니멀라이프라면 충분히 나를 위로하는 인생이 된다. 물건이 많다고 해서 미니멀라이프가 아니라든가, 물건만 없다고 해서 미니멀라이프는 아니다.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는 자기 자신을 잘 알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물건이 뭔지,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 뭔지, 자신의 일상을 가장 편하게 해주는 공간 배치가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절대 물건을 허투루 들이지 않는다.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쓰임에 신중하고 취향에 신중하기 때문이다.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면서 나는 좀 더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취향을, 내 꿈을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미니멀라이프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나답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