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과연 편리하기만 한 가전제품인가?
나는 손빨래를 기피했다.
손이 거칠어지고, 손목이 시큰시큰 아플까 봐 예방차원에서 손빨래를 하지 않았다. 옷은 전부 세탁기에 의존해서 세탁을 했다. 세탁기가 없었다면 내 삶은 엄청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세탁기의 존재에 감사했다.
비가 연이어 한참 내리던 시기였다. 비를 핑계로 세탁하지 않고 하나 둘 쌓인 옷들은 빨래 바구니에 다 들어가지 못해서 넘쳐났다. 마치 빨래 바구니가 옷들을 토해내고 있는 형상이었다. 이렇게 산더미가 되어가는 빨래더미를 보고 있으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이걸 언제 다 빨고, 건조하고, 또 정리하나! (건조기를 사용해도 옷을 꺼내서 개는 일은 전부 직접해야 하는 일이다.)
세 식구 각자의 옷을 매일 한 번씩 세탁을 하니 이틀만 세탁하지 않아도 빨래바구니가 가득 찬다. 그렇다고 매일 세탁하기엔 빨래 양이 애매할 때도 많다. '겨우 이 정도 양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기엔 좀 아깝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차곡차곡 일부러 빨래를 모은다. 그러다 시기를 놓치면 빨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버린다. 그러면 또 옷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 이 놈의 옷들을 다 갖다 버려야지! 하면서.
그러다 우연히 손빨래를 시작했다. 나는 밤에 달리기를 하는 편인데 달리기를 하고 다음날 바로 입을 수 있게 운동복을 손으로 가볍게 세탁해서 말렸다. 운동복은 빨리 건조되는 소재라 다음날 저녁이면 완벽하게 건조되기에 전날 입었던 옷을 다음날 다시 입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른 옷들은?
속옷 종류도 금방 마른다. 얇은 티셔츠 종류도 금방 마른다. 그렇다면 속옷과 티셔츠 정도는 샤워한 다음 욕조에 다 넣어서 비눗물에 발로 밟아 가볍게 세탁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하나하나 헹구기엔 버겁기도 해서 가볍게 헹궈준 다음 소량을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헹굼과 탈수 모드만 사용한다. 헹굼 탈수 모드는 단 19분. 조물조물 세탁해서 세탁기에 넣고 헹구고 탈수하면 30분이 채 되지 않는다. 적은 양의 빨래도 부담 없이 끝.
속옷만 세탁할 경우엔 그냥 손빨래로 마무리까지 한다. 방에 널어둬도 금방 마른다. 이렇게 살았더니 세탁바구니가 늘 가볍다. 손빨래가 버거운 수건과 외출복 몇 벌만 세탁기로 세탁하면 된다. 더 이상 넘쳐나는 빨래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그날 입은 옷의 때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깨끗하게 지운다.
아이도 손빨래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목욕하고 마무리로 그날입은 자신의 속옷과 티셔츠를 발로 밟아 세탁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작게나마 집안일에 동참하는 일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을 심어준다.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책임감도 느끼게 해 주고, 재미도 느끼게 해 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든 일을 가전기기에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해왔다면, 하나씩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보자. 내 일상을 내 힘으로 일궈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삶이 즐거워진다.
하루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손빨래가 어찌나 기다려지는지! 그날의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손빨래로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다. 손빨래 덕분에 하루의 끝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