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스트의 오래된 물건
당신의 집에 도둑이 들어 모든 물건들이 사라진다면?
물건에 애정을 담지 말자는 게 내 삶의 모토이다.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천재지변이나 화재, 도난 등으로 말이다. 애정을 듬뿍 담은 물건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면 그로 인한 충격은 얼마나 클까. 한동안은 절망에 빠져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사라지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물건은 물건일 뿐이라는 마인드로 사는 게 이롭다. 하지만 누군가는 애정이 담긴 물건을 소중히 다루며 사용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 또한 공감하는 바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곁에 두고 사용하면 그만큼 행복해지는 것도 사실이니까. 좋아하는 것만 적당히 소유해서 심신의 안정과 여유를 갖는 삶을 사는 게 미니멀라이프의 본질이기도 하지만, 물건에 과한 애착을 가지는 것은 해롭기도 하다.
어디 물건뿐이랴, 인간관계에서도 과한 애착은 집착이 되고 사이가 더 멀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적당한 애정과 사라지거나 멀어져도 괜찮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지내기.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물건이 아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될 수 있게 매일 행복을 쌓아본다.
아침에 일어나서 물 한잔을 마시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책은 언제 어디서든 구할 수 있으니까) 가벼운 식사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괜찮은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고 무념무상으로 때로는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 숨 가쁘게 뛰고 복잡한 생각을 간단하게 글로 적어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결이 맞는 사람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는 소소한 행복들.
행복은 금방 사라질 물건에는 담기지 않는다. 잠깐 나를 기쁘게 할 수는 있지만 그건 행복이라 말하기 어렵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두 손 가득 퍼담아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 같은 것들이다. 사라질 것을 알기에 적당한 마음으로 적당한 애정을 담는 연습, 그 연습들을 통해서 단단한 나를 만들어간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도 괜찮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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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0년이 넘도록 여름마다 내 발을 뽀송하게 지켜준 헌터부츠. 얼마 전에 드디어 구멍이 나버렸다. 구멍하나 때문에 새 부츠를 사긴 아까워서 튜브용 스티커를 붙였다. 몇 년은 또 잘 신을 수 있을 것 같다. 애정을 가장한 절약정신으로 수명을 좀 더 늘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