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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Anne Feb 12. 2023

프라하 Prague


너른 거실창 아래, 햇볕에 목말랐던 초록화분들 옆에 앉아 나도 햇볕을 쪼인다. 그러다 그만 꾸벅꾸벅 졸고 만다.  얼어붙은 눈길운전에 벌벌 떨게 하면서도, 영하 18도의 찬 공기는 겨우내 머물러 있던 구름을 모조리 쫓아내 주었다.

한 달 전은 봄날같이 따뜻해서, 곧 봄이 오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때는 크리스마스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1월 6일은 Epiphany(주현절)로 올드 크리스마스라고 불리는 날이다. 이때를 마지막으로 따뜻했던 크리스마스의 불빛들은 사다리를 탄 작업자들에 의해 내려지고, 마켓의 나무 부스들은 해체되어 정리된다.



그날 프라하에 갔다.
운이 좋게도 1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끝나는 것도 보았다. 프라하 성, 구시가지, 시계탑, 카를교 그리고 블타바 강, 아무것도 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냥 걸었다. 몇 시간이고 걸었다.

프라하에 블타바 강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모든 수도에는 강이 있지만, 프라하엔 딱 건너가기 좋은 다리가 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 다리도 좋고, 저 다리도 좋다. 이 다리에서 카를교를 바라봐도 좋고, 저 다리에서는 연결된 섬으로 내려가도 좋다. 다리 중간에 있는 엘리베이터나 계단을 이용해 섬으로 간다. 아이스 스케이트장이 있고, 아이들 집라인이 있고, 강에서 올라온 카피바라(Capybara)가 사람들 곁에 와서 친숙하게 머무른다.

지나가는 군용 트럭 행렬이 끝이 없다. 일하다 말고 주방장들도 나와서 사진을 찍는다.
주현절 행사로 낙타를 탄 동방박사들이 지나간다.
셰익스피어 간판을 단 영어 서점에 들러 작은 아이와 책 두 권을 사 온다. 그러다 53유로가 결제된 문자메시지를 고 깜짝 놀란다. 용기를 내어 환불을 요청한다. < BAKING WITH KAFKA> 책만 갖고 나온다.  EU국가라도 Czech Koruna를 써서 계산하기가 영 불편하다.

그리고 또 걷는다.
길가에 서 있는 게시판에 어느 전시장 그림광고가 있다. 걸어서 20분 거리의 목적지가 생겼다. 기이한 그라피티 작가, 'Banksy 뱅크시'이다. 세계의 여러 도시에 그라피티를 남기고 가는, 아무도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그가 유명해지자, 어느 공원에서 자기 작품들을 싼값에 팔았다고 한다. 6시간 동안 겨우 세 명의 사람만이 구매해 갔다. 한 미술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낙찰이 되자, 액자에 미리 장치해 둔 분쇄기로 그림을 파괴한 일화도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 한 소녀가 풍선을 놓친다. 더구나 그 풍선은 빨간색 하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중요한 뭔가를 놓치고 있는 사람은 비단 그 아이만은 아닐 것이다. 어른인 나도 그러고 있지 않나? 생각하다, 슬퍼진다.


Balloon Girl, 2002


몇 년 전, 작은 아이 생일 선물로 회전목마를 산 시장에 다다른다. 1232년에 문을 연 하벨시장이다.
오래된 방앗간을 개조한 캄파박물관 옆의 설치미술, '아기들'은 우리 아이들이 쓰다듬고 기어올라가기 좋아하는 곳이다.
남편은 매 정각이 되려고 할 때마다 재촉한다. 지금이라고, 빨리 천문시계탑으로 가야 한다고. 하지만, 하루동안 언젠가는 정각이 되기 전에 그곳에 도착하지 않을까? 시간이 넘치면 근처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기다리면 되지 않을까?

어두워져 호텔로 돌아가는 길, 생맥줏집이 여럿 있다. 필스널 우르겔이나 코젤을 한잔 마시고 싶다. 하지만, 게임을 해야 하는 아이들이 "몸에 안 좋아", " 취하면 안 좋아" 등의 말을 해 대면서 제법 힘을 준다. 그래, 꼭 프라하가 아니라도 슬로바키아에서 마셔도 되지. 인근의 도시를 여행하는 건, 약간의 여유 함께 해서 좋다. 대신 구멍가게에서 캔맥주를 사서 간다.

종일 걸어 다녀도 괜찮은 도시가 있다.
걸으면 걸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져, 지친 다리는 아예 생각을 놓아버린다.
그저 걸을 수만 있다면,

스쳐가는 바람에 블타바 강물 냄새만 배어있다면.
반질반질한 돌길은 많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어, 부드럽기만 하다.

레트나 공원에서 계속 앉아있으려고 하는 나를, 남편과 아이들은 내버려 두고 가버린다. 하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나는 안다. 계속 걸어도 걷고 싶어 할 거라는 걸. 끝이 없을 거라는 걸.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다. 적당한 아쉬움이 무언가를 더 채워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처럼  따뜻했고, 겨울같이 산뜻했던 1월의 프라하였다. 마음에 바람이 잔뜩 들어와 있다. 아까 봤던 빨간 하트 풍선을 향해, 살짝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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