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급칸은 재빠르게 건너뛰고, 복도를 따라 룸으로 되어있는 칸도 지나쳐 간다. 자리표가 없는 일반칸에는 사람들이 많다. 세 자리를 발견하고는 드디어 걸음을 멈춘다.
정문으로 올라가니 쇠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다른 쪽 매표소는 열려있다는데 어딘지를 모르겠다.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서인지, 어린 손주들을 데리고 올라오시는 두 노부부에게 문이 닫혀 있다고 알려드린다. 나는타국에서 마주치는 노인들께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엄마, 아버지 같아서다. 할아버지는 이 쪽 숲공원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친절을 금방 되갚아 주신다.
산길은 진흙이다. 문득, 러시아의 탱크가 우크라이나의 진흙구덩이에 빠져 옴짝달싹을 못했다던 기사가 떠오른다. 겨우내 눈에 덮이고 얼어있던 땅들이 녹아서, 흘러내린다. 신발에 묻은 진흙을 적당히 털어내려 애써보지만, 밑창 깊숙이 박혀있다.
가파른 석회암 절벽 위의 성(城)은, 꼭 시멘트를 발라놓은 듯 매끈하다. 한 마리 염소가 풀을 뜯고 있다.오랜 세월, 지배받았던 마을은 지금은 성의 유명세를 향유하고 있는 것 같다. 투어리스트 인포가 있고, 여행객들이 있고, 기념품가게가 있다.
아이들은 힘들다고 투덜투덜한다. 사실은 나도 신발이 잘못됐는지 발등이 아파져 온다.
다음날은 수영장으로 가기로 했다.
며칠 전, 수영용품을 꺼내 뒤적거려 보니 아이들 수영복은 그새 작아져 있다. 그런데기분은 뿌듯하다.수영장에서 큰 애 친구 아빠와 마주쳤다. 동양인은 우리밖에 없어서 눈에 띄었을 거다. 그래도 예전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된다. 수영장의 작은 식당에서는 오히려 나에게만 음식쟁반을 직접 전달해 줬다. 내가 잘 모를까 봐, 배려해 준 거였다.
매일 시내 픽업만 하다, 1시간의 굽은 산길을 운전하느라 정신이 없다. 익숙지 않은 언덕길에서는 자동차도 힘이 빠져 속도가 느려지고, 다른 차들은 수시로 나를 추월해 간다. 그리고 태양이 너무나 강렬하다. 선글라스를 끼고도 장렬하게 가라앉는 태양과 마주한 운전은 꼭 사막 속을 헤매는 것만 같다. 자꾸만 흐릿해지는 도로선에 두 눈을 부릅뜨게 된다.
나는 어느새 십 대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 같다. 엄마 앞에서는 큰 소리를 쳐도, 밖으로 데리고 나와보니아이들은 아직도 많이 어리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자꾸만 작은 용기를 내게 해 주는 이 아이들과 나는,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 싶다. 지속적이면서도 발전하는 관계로,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는, 어느 지점으로 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다.